해외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오자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아이러니를 잘 그렸다. 최근 국내에서 공개한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모범가족> 역시 그렇다. 제목부터 냉소적인 반어가 돋보이는 이 작품, 과연 한국의 <브레이킹 배드> 같은 웰메이드 드라마로 다가올 수 있을까? 리뷰를 통해 드라마의 장/단점을 살펴본다.
넷플릭스 드라마 <모범가족>은?
모든 것을 잃은 가장이 검은 돈을 만났을 때
<모범가족>은 우연히 사건 현장에서 거액의 돈을 훔친 한 가장이 오히려 범죄조직의 계략에 빠져 마약을 배달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스릴 넘치게 담아낸다. 동하(정우)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수술비를 자신의 교수 임용을 위한 뇌물로 바쳤지만, 그만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그렇게 자책하다 우연히 벌어진 교통사고에서 두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동하는 이에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차 안의 거액의 돈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그 돈은 마약 조직 거래에 필요한 검은 돈. 이때부터 조직의 이인자 광철(박희순)이 돈을 훔쳐 간 동하를 추격하면서 두 사람의 원치 않은 악연이 시작된다.
정우가 <응답하라 1994>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궁지에 몰린 가장 동하 역을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여기에 <마이 네임> <남한산성> <마녀>의 박희순이 보는 것만으로도 살 떨리는 조직의 이인자 광철 역으로 출연해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동하의 아내 은주 역을 맡은 윤진서도 오랜만에 작품을 통해 만나 반가우며, <비밀의 숲 2>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박지연이 경찰 주현 역을 맡아 시청자의 시선을 대신한다.
범죄 스릴러와 가족 드라마의 묘한 공존
이 작품의 핵심 재미는 제목만큼이나 양립하기 힘든 범죄 스릴러와 가족 드라마의 묘한 공존이다. 초반에는 50억 원을 빼돌린 동하(정우)를 어떻게 마약 조직의 2인자 광철(박희순)이 찾아내는지 흥미롭게 그린다. 여기에 두 사람을 숨죽여 관찰하는 경찰과 또 다른 마약 범죄조직이 나타나는 등 각자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집단의 마찰이 작품의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이후 동하를 찾은 광철이 그에게 마약 배달을 시키면서 드라마는 또 다른 얼굴을 내민다. 자신의 범죄 사실 때문에 동하와 가족들의 갈등이 최고조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내 은주(윤진서)와는 매일 다투고, 사춘기를 맞은 딸 연우(신은수)는 엇나가기 시작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수술 일정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동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변수가 발생한다. 동하를 협박하는 광철이 그의 가족 문제를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해결하기 때문이다. 동하가 가족 문제에서 벗어나야 마약 배달을 온전히 할 수 있기에. 동하가 범죄를 저지를수록 가족의 갈등은 점점 줄어든다. 이처럼 드라마는 제목의 아이러니한 재미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범죄 스릴러를 지켜보면서도 가족 드라마를 보는 듯한 묘한 기시감을 건넨다.
동하가 답답할수록 정우의 연기가 더 빛난다
어깨의 무거운 짐을 든 가장 ‘동하’를 연기한 정우의 존재감이 무척 인상적이다. 광철의 협박에 공포에 질린 채 마약 배달을 하면서도, 가족을 지켜야 하는 동하의 절박한 심정을 필터링 없이 실감나게 보여준다. 특히 1화에서 자신의 실수 때문에 아들의 수술비를 날리고 자책할 때 보여준 눈물과 표정 연기는, 의도된 퍼포먼스가 아니라 배우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느껴질 정도다. 이외에도 드라마의 내용보다 정우의 얼굴이 더 또렷한 순간이 꽤 있다. 때때로 동하의 어이없는 행동에 답답할 때가 많다. 훔친 돈을 들고 혼자 무작정 돈 세탁하는 곳에 간다든지, 마약 배달을 할 때 빚어지는 실수 등은 헛웃음만 짓게 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벼랑에 몰린 캐릭터를 자신의 연기력으로 녹아낸 정우의 놀라운 모습 덕분에 짜증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더 다가온다.
조직의 부도목 광철 역을 맡은 박희순 역시 서늘한 카리스마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는 동하를 꼭두각시로 내세워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광철 역을 맡아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사실 박희순이 맡은 광철 역은 이전에 그가 맡았던 <마이네임>의 최무진과 비슷하다. ‘또 같은 레파토리인가?’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박희순은 이 같은 부정적인 시선을 묵직한 연기로 그려내며, 오히려 시청자와 광철의 거리감을 줄여준다. 광철은 고아로 자랐는데, 가족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 동하를 보며 흔들리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어 이야기를 또 다른 갈래로 뻗게 한다. 이 밖에 동하의 아내 은주 역의 윤진서와, 마약 조직의 보스 용수 역의 최무성, 광철과 대립하는 또 다른 조직의 뉴 페이스 강준 역의 김성오 역시 자신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이들이 서로 엮이고 얽히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몇 가지 아쉬운 점
다만 <모범가족>도 아쉬운 점이 더러 있다. 초반에 크게 벌였던 판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다고 할까? 특히 동하 가족, 광철의 조직만큼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경찰 쪽 에피소드가 메인 스토리에 잘 밀착되지 않는다. 마약팀장 강주현(박지연)이 이끄는 경찰들은 동하와 광철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두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를 간과하면서 마약을 내주는 상선을 잡기 위해 계속 숨을 고르는데, 이 과정이 너무 길고 늘어진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경찰의 행동에 답답할 정도다. 나중 경찰 내부의 검은 커넥션과 반전이 밝혀져 꽤 놀라움을 전하지만, 이미 모든 판이 정리되는 시점에 펼쳐지는 연출이라 큰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중반부부터 이야기가 루즈한 점도 아쉽다. 초반 광철이 어떻게 동하를 찾아내는지 그 과정을 오밀조밀하게 보여준 드라마는 이후 동하의 마약배달 에피소드를 너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의 구조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등장하지만, 중간 에피소드를 보지 않고 후반만 봐도 전체 스토리 라인이 파악될 만큼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좀 더 타이트하게 에피소드를 줄여서 캐릭터의 심리 변화와 극중 이벤트를 효과적으로 그렸다면, 드라마가 더 인상적으로 보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모범가족>은 제목이 유발하는 호기심 속에 상당한 몰입감과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담아내며 긴 러닝타임을 책임진다. 범죄 스릴러의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도 가족의 문제를 의미 있게 비추며 진정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근사한 장르 드라마라기 보다 거칠고 잔인하지만, 오히려 가슴 먹먹한 홈 드라마를 본 기분이다. 가족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동하는 절박한 마음에 현실이라는 지옥에서도 희망의 마지막 조각을 놓치지 않으며, 이들의 위기는 시즌 2를 기약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멀리 떨어지지 마라”라는 동하 아버지 득수의 대사가 이 작품이 전하려는 진심으로 다가온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