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모두 스물을 갓 넘겼을까. 젊다기보다 어리다고 표현해야 할 얼굴엔 애티와 피로가 반씩 섞여 있다.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갓난아이 우림을 데리고 모델 하우스를 찾는다. 널찍하고 깨끗한 침대에서 우림이 곤히 잠든 사이, 고운은 “이런 집 살면 진짜 아무 걱정 없겠다”고 중얼거린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그런 집에 살 가능성이 없는 부부는 걱정거리를 한가득 달고 산다.
한결 옆에는 커다란 캐리어와 짐 가방이 두 개씩 놓여 있다. 집을 나온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집이 없어 떠도는 신세다. 한결은 밤낮없이 오토바이를 몰며 배달 일을 하고, 고운은 우림을 둘러업고서 전단을 붙이러 다닌다. 착실하게 벌고 아낀 돈으로, 둘은 이제 겨우 월세 보증금을 마련한 참이다. 계약을 마친 후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지만, 이사하기 전까지 머물 곳이 마땅치 않다. 결국 세 식구는 모델하우스를 빠져나와 찜질방으로 향한다.
이윽고 부부에게는 두 가지 불행이 연이어 닥친다. 먼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을 사기당한다. 고운은 계약한 집을 찾아가지만, 철거촌이 된 동네에서는 이미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집주인은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고, 담벼락마다 공가라는 붉은 글씨가 낙인처럼 선명하다. 경찰서에 신고 후,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온 고운은 멍한 표정으로 분유를 탄다. 그리고 잠시 뒤를 살피지 못한 그때, 우림이 사고로 종아리에 화상을 입고 만다. 집은 허공에 사라졌고, 아이의 병원비는 금세 불어난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고는 채 10만 원이 되지 않는다. 빈곤은 곧바로 이들 가족을 집어삼킨다. 찜질방은 아픈 아이를 보살피기엔 안전하지도, 쾌적하지도 않은 공간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고운이나 아버지 얼굴을 못 본지 오래된 한결이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리 이제 어디 가지?”라는 막막한 물음이 이들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한결은 고운과 우림을 어느 주택으로 데려간다. 당황한 고운에게 한결은 배달 일을 하다가 만난 할머니의 집이라고 소개한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분이며, 미국 여행을 떠난 사이에 자신에게 집을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의구심을 내비치던 고운은 차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난생 처음 갖는 집다운 집에서 남들처럼 편하게 먹고 자는 동안, 일상에는 웃음과 안정이 깃든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한결은 눈에 띄게 예민해진다. 2층에 위치한 할머니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고운을 다그치고, 옥상에 다녀온 밤에는 범죄 현장에서 지문 자국을 없애는 살인자처럼 수건으로 문 손잡이를 문지르기도 한다. 영화는 중간중간 플래시백을 사용하여 한결과 할머니가 교류했던 과거를 보여주면서, 한결이 간직한 비밀과 집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해나간다. 언젠가부터 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풍기고, 한결은 방문객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다. 의심스러운 정황을 재차 목격한 끝에, 고운은 약속을 어기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비밀이 탄로 나는 시점부터 영화는 또 다른 장에 접어든다. 진실을 밝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인물에게 선택이라는 과제를 안긴다. 고운은 2층에서 시신을 발견하고 경악하지만, 끝내 집을 떠나지 않는다. 한결은 어떻게든 고운을 설득하려 하나, 결국 방바닥에 눌어붙은 죽음의 흔적을 지워내는 일에 열중한다. 이제 그들은 최선을 다해 비극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죽음을 은폐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영영 불가능하겠다고 여겼던 삶을 거머쥐려 한다.
“누가 우리한테 관심 있는데? 안 들키면 돼.”라는 고운의 외침은 무관심한 세상을 야단치는 일갈처럼 들린다. 고운과 한결에게는 자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주거와 일자리 같은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자원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이며, 도움을 요청했을 때 선뜻 응하는 친구나 동료도 곁에 없다. 이때 사회는 두 청년에게 최소한의 안전망도 제공하지 못한다. 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를 관리 대상으로 설정한 복지 제도는 형식적 돌봄을 수행하는 데 머무르고, 할머니에게는 가족이나 이웃 등 커뮤니티가 부재한다. 사각지대에 내몰린 인물들은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꾸려나가는 일에 거듭 좌절을 겪는다. 무엇보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구제받을 길이 없을 때, 선과 악은 경계 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때 영화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신, 한결과 고운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다다르는 과정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홈리스>는 섬뜩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스터리 영화이자, 동시대 청년 세대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빈곤과 주거 문제를 탐구하는 사회 드라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다양한 주거 공간을 비춘다. 환하고 고급스러운 모델 하우스, 다세대가 거주하는 복도식 아파트, 낡은 목조 주택, 쪽방촌과 찜질방 등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집은 영화에서 가난과 풍요를 가시화한다.
집의 규모와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돈이고, 이는 사람답게 사는 삶을 종종 가로막는다. 예컨대 “보증금 없는 방”을 찾는 한결이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집은 곰팡이로 뒤덮인 반지하 셋방뿐이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무덤이나 관에 가까운 모양새다. 고운이 지적하듯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땅 밑처럼 보인다. 결국 어린 부부는 할머니의 집을 차지한다. 커튼을 달아서 창문을 전부 가리고, 낡은 벽지를 떼어낸 자리에 새 벽지를 붙인다. 불안한 평화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엔딩에서 세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는다. 한결과 고운은 이전처럼 웃거나 서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는다.
<홈리스>는 단편 <운수 좋은 날>(2013) <역귀>(2016) <엘리제를 위하여>(2018) 등을 연출하고, 다가오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째 장편 <물비늘>의 공개를 앞둔 임승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빈곤, 고독사, 주거, 노동 등 현대인이 맞닥뜨리는 사회 문제를 폭넓게 다루면서도,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는 집중력이 돋보인다. 장편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은 전봉석과 박정연 또한 주목할 만한 연기를 선보인다. 두 배우는 선하고 앳된 얼굴에 단단한 눈빛을 새기면서 인물들이 처한 딜레마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덕분에 한결과 고운은 일방적 질타와 동정에서 벗어나, 어디선가 마주할 법한 보통의 인물로 자리한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글 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