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운 시간, 잠을 청해보지만 잊고 싶은 직장에서의 말실수, 배려 없는 상사의 업무지시, 내일 있을 프레젠테이션 수정 사항 따위가 떠올라 '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되뇌며 머리를 비우려 노력해 보지만 여의치 않아, 곧 '해파리 수면법' 따위를 유튜브에 검색하다가, 웬일인지 연관 동영상에 뜬 입 짧은 햇님의 먹방을 본 후, 마무리 의식처럼 패션 인플루언서의 SNS를 염탐한 뒤 해결되지 않은 고민을 끌어안고 잠드는 일상이 반복될 때, 걱정이 너무 많은 것이 건강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뛰어야 한다.
뛰어야 할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달리기를 통해 경험하는 몰입의 순간들, 이 작은 성취의 기쁨들이 모여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해준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그리고 달리기는 산뜻하다. 신발 한 켤레만 있으면 어디서든, 어느 때나 시작 가능하다. 무엇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독일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 등 다양한 의미에서 성공한 유명인들이 달리기를 예찬하는 것을 보니 뛰기, 그것은 ‘러너스 하이’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가을이다. 장마, 폭염, 폭설 기간을 빼면 1년 중 달리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9월에서 11월이 그 귀한 3개월이다.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달리기. 그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 볼 수밖에 없다. ‘갓생’사는 운동 유튜버 영상을 보며 오늘도 ‘눈’으로 운동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 잠자고 있는 운동화 끈을 조여줄, 달리기 뽐뿌 오는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아워 바디(2019)
감독: 한가람
멈추고 싶은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아워 바디(2019)
8년간 행정고시를 준비해온 자영(최희서)은 연이은 낙방으로 결국 시험을 포기한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에서 달리기를 하는 현주(안지혜)라는 여자를 만난다. 현주의 모습에 매료된 자영은 달리기를 시작하고 둘은 친구가 된다. 번번이 떨어지는 시험에 몸과 마음이 지쳤던 자영은 달리기를 통해 서서히 건강을 되찾고 친구가 소개해 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턴으로 채용된다. 잘만 하면 정직원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줄거리만 보면 달리면 건강도 얻고, 친구도 얻고, 취업의 길도 열린다는, '운동하는 여자에게 비로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정도의 건전한 의미를 설파하는 것 같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건강하지 않은 정신이 운동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때 생기는 뒤틀림을 묘사한다.
<아워 바디>는 어떤 감정이나 의미로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사람구실(공무원이나 정규직이 되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압해온 30대 여성이 주체적으로 시작한 유일한 행동인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다는 '해방'의 메시지로 이해하고, 다른 이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주인공의 몸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의 몸을 통해 타자의 욕망을 실험하고 수행하는, 그래서 <마이 바디>가 아닌 <아워 바디>라고 이름 지은 것이라 말한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아워 바디>는 심술궂은 영화라 평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교훈은 파괴되고 주인공의 욕망은 실현되지 않으며, 이들이 가는 길은 배배 꼬여있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는 달리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욕망을 향해 있는지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욕망의 사각을 비추고 그 지점에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달리기를 통해 지향하는 몸의 변화, 그리고 변화될 몸을 둘러싼 욕망을 솔직하게 마주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는 영화다.
천국의 아이들(1997)
감독: 마지드 마지디
엄마의 심부름을 갔던 초등학생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고치러 갔다가 실수로 그것을 잃어버린다.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솔직히 말하기엔 가난한 부모님께 부담을 주는 것을 아는 남매는 이 일을 비밀로 하고 한 운동화를 서로 돌려신는다. 동생은 오전 반, 오빠는 오후 반. 부모님께 들키지 않고, 학교에도 지각하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슬아슬한 바통터치를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 알리는 지역에서 열리는 마라톤의 3등 상품이 운동화임을 알게 되고 참여를 결심한다. 알리는 3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중간에 넘어지는 등 혼란이 발생하며, 결국 '실수'로 1등을 하게 된다. 모두가 알리를 축하해 주지만, 정작 당사자는 동생에게 운동화를 선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눈물 흘린다.
동생은 슬퍼하는 알리를 보고 위로해 주듯이 씩 웃고, 알리는 고된 달리기로 다친 발을 연못에 담근다. 연못의 금붕어들은 알리의 발을 보듬어준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남매의 속 깊은 이야기는 모르지만 새 신발을 사 오며 영화는 끝이 난다.
보통 마라톤에 참가하면 참가 기념품이 주어진다. 주로 티셔츠와 간단한 먹거리로 구성되는데, 지역에서 주관하는 마라톤 경기의 상품은 조금 색다르다. 예를 들어 부안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서는 부안에서 자란 오디로 만든 와인을, 김제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서는 김제평야의 대표 상품 쌀을 증정하는 식이다. 코로나가 한창 일 때 참가한 한 대회에서는 적은 참가 인원 덕분에 순위 권 안에 들어 무려 젓갈 세트를 부상으로 받는 행운도 누렸다. 이때부터였나? 사람이 적어 경쟁자는 없지만, 관대한 지방정부의 후원으로 질 좋은 지역 특산품을 제공하는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닌 것이.
'달리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머리를 비우고 달리다 보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라는 간교한 간증을 종종 하던 나였지만 사실 이때의 나를 뛰게 했던 건 팔 할이 지역 특산품이었다. 그래서 남들은 <천국의 아이들>을 보며 '알리'와 '자라' 남매의 순진무구한 동심에 감동하며 눈물 흘릴 때, 나는 같은 마라토너로서 '더 빨리, 원하는 상품 받아야지'라며 조금은 불순한 의도로 '알리'를 응원한다.
물질적 보상은 우리를 달리게 추동한다. 알리를 보라. 상품에 대한 절실함이 그를 1등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하지만 달리기의 진짜 묘미는 신발이나 젓갈 때문에 시작했을지라도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내어준다는데 있다. ‘알리’는 ‘실수’로 1등을 해버린 달리기를 통해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3등 수상에 실패한 자신을 향한 동생의 미소를 보며 깊은 우애의 감정 또한 경험한다.
지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탁 트인 김제 평야를 달리면 호연지기의 뜻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상품인 막 도정한 쌀로 지은 밥은 ‘햇반’과는 차원이 다른 달콤함이 넘친다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느낀다. 마주 뛰는, 이름도 소속도 모르는 완벽한 타인이 나를 향해 외치는 격려의 말에 극내향형인간인 나도 이때만큼은 '파이팅'하고 조건 없는 응원으로 화답한다. 이렇게 달리기는 몰랐던 나를 깨우고, 그것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영화는 끝났지만 날카로운 첫 뜀박질의 추억을 잊지 못한 '알리'가 어디선가 시린 무릎 부여잡고 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이유다.
<천국의 아이들>은 영화 강국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가운데 하나인 마지드 마지디의 대표작으로, 2001년 개봉 당시 한국 박스오피스 1위까지 오른 전설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알리'와 그의 곁에서 맴도는 금붕어를 통해 슬픈 결말 안에 행복한 결말을 담아낸 마지막 엔딩 신은 상징 예술의 정수로 꼽힌다. 명작은 언제 보아도 새롭다. 오늘 <천국의 아이들>을 보며 '알리'를 응원하고, 나에게도 달릴 이유 하나쯤 부여해 어디든 뛰어보는 건 어떨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류의 명언에는 '건강하지 않은 육체에 건강하지 않은 정신이 깃든다'라는 오만함과 차별적 의미 또한 내포될 수 있기에,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삶에 동참해 보세요'라고 해맑은 무례함으로 강권할 생각은 없다.
그저 최근 달리기로 인해 경험한 짜릿한 순간을 공유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며칠 전 오전 8시 55분, 버스에서 내려 단련된 다리를 굴려 사무실로 내달리니 8시 59분. 정시 출근에 성공했다! 이전의 나였으면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이미 정시 출근은 포기하고 지각의 이유를 먼저 생각했을 터였다. 이렇게 달리기는 포기와 도전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완주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육을 단련시켜, 일단 도전하게 만든다. 1그램의 근손실도 용납할 수 없기에 오늘도 나는 운동화를 챙겨 출근한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