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을 떠나 모두 의미있는 작품들이었다.

팬데믹 내리막, 그리고 엔데믹의 시작

2022년 4월의 18일, 드디어 실외의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곧 4월 25일을 기해 실내 취식이 가능해졌다. 이제 친구, 연인 ,가족들과 극장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을 수 있게된 것이다. 코로나의 종식인 것일까? 물론 그렇진 않지만 적어도 이는 엔데믹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당시에 개봉 스타트를 끊은 블록버스터는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2 : 대혼돈의 멀티버스> (2022) 였다. 개봉날 71만 관객을 기록한 이 영화는 9월 29일 현재 588만 관객으로 국내 박스오피스 5위를 기록중이다. 그리고 뒤이어 한국영화인 <범죄도시2>가 2500여개의 관으로 크게 개봉하며 첫 날 관객 46만을 기록한다. 결국 <범죄도시2>는 1269만 관객을 기록하며 올해 1위, 역대 13위의 흥행을 기록한다.

6월에는 <탑건 : 매버릭>(2022)과 <헤어질 결심>(2022)이 개봉하며 각각 개봉날에 18만, 11만 관객을 기록했다. 시리즈의 이름값이나 스타 감독이 연출한 영화치고는 비교적 적어 보이는 관객수였다. 그러나 입소문에 힘입어 장기상영에 돌입하며 각각 816만, 188만 관객수를 기록하게 된다.

두 편의 재관람 횟수는.. 세다가 포기했다.

고무적인 흥행성적과 염려되는 개봉 스케줄

이를 지켜 본 대형 배급사인 CJ ENM, 롯데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4개 사는 각자의 텐트폴 영화를 1주 간격으로 개봉 스케쥴을 확정한다. 모두 200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들이었다. 2위를 해서는 안되는 작품들이 2주의 간격도 지니지 못한채 폭격처럼 개봉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이미 개봉시기가 미뤄진 이유가 컸지만, 그렇다 해도 출혈을 예상하지 못하는 일정은 아닌 것이다.

7월 20일에 개봉한 <외계+인 1부>(2022)은 유명 감독의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153만이라는 비교적 아쉬운 스코어를 보여줬다. 이후 8월 10일까지 <한산> (2022), <비상선언> (2022), <헌트>(2022)등의 대형영화가 공개됐다. 그리고 각자 725만, 205만, 434만명의 관객동원을 보여줬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른바 '빅4' 영화를 봤지만 산업적인 면에서 많은 관객이 동원됐다기엔 좀 안타까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장르 코미디의 강세

여름 텐트폴 무비의 광풍이 지나간 후, 8월 24일에는 코미디 영화인 <육사오>(2022)가 개봉하며 <헌트>를 제치고 1위까지 올라가면서 195만 관객을 기록한다. 뒤를 이어 (액션)코미디 영화인 <공조2> (2022)가 9월 7일 추석 시즌에 혼자 개봉하며 594만 관객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9월 28일에는 <정직한 후보2> (2022)와 <인생은 아름다워>(2022)가 공개되며 각각1,3위를 기록하면서 코미디 대세론을 이어간다.

역대급 빈집털이에 성공한 명절영화. 개봉시기는 하늘이 내린다더니.

패러다임의 변화

코로나로 인한 개봉형태를 들여다보면, 기존 흥행과는 조금은 상이하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스타 흥행 감독이라 불리는 최동훈, 한재림 감독의 신작이 생각 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 했으며, 흥행 10위 안에서 <마녀2>(2022) <미니언즈2> (2022) <쥬라기 월드:도미니언> (2022) 등등 <헌트>를 제외하면 모두 속편이나 시리즈물인 것을 알 수 있다.

<외계+인 1부>는 멀티 캐스팅을 앞세우며, 심지어 세계관에서도 멀티버스의 형태를 띄며 타임라인을 왔다갔다하며 복잡한 이야기의 타래를 풀어낸다. 그러나 2부작의 이야기에 너무 큰 자신감을 가진 탓일까? 주말관객 20만을 겨우 넘기며 한 주만에 <한산>에게 1위를 뺏겨버린다. 심지어는 <탑건:매버릭>과 <미니언즈2>에 밀리며 4위를 기록한다.

<비상선언> 또한 주연급 스타배우들의 멀티 캐스팅을 앞세우며 지상과 땅의 두 무대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견해를 옹호하는 시선과 이야기가 늘어지며 신파적 요소를 보이는 코드 때문에 sns상에서 부정적인 후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래서인지 개봉 첫날 1위였던 성적은 바로 다음 날 <한산>에게 자리를 뺏기고 만다. 몇 개월간 공들인 마케팅이 바이럴의 요소에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비상선언>측은 사적이익을 목적으로 한 악의적 평가를 조성한 정황을 발견하고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전작에 비해 아쉬운 건 사실이나, 이 정도 흥행은 억울해 보인다.

이것은 7월을 맞이하며 코로나 이후 벌써 세번째 오른 영화 티켓값과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편당 7~8천원 시절에는 일단 영화를 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했다면, 주말관람 1만 5천 원 시대에는 사전 검증이 완료된 컨텐츠만 찾게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호기심보다는 익숙한 것을 더 찾게 한다. 속편 일변도의 극장상황과 결코 괴리되지 않는 요소인 것이다.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점령한 군사와 형사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은 소년범죄의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교화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그러나 사회의 분위기는 반대로 간다.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자는 청원이 나오고 있으며, 한 여론조사에서는 교권을 위해 체벌을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에 66%가 찬성을 하기도 했다. 경제의 실질은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에 6개월의 무역적자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몰락에 가까워 졌는데, 정부는 불안해 말라는 발표만 한다. IMF를 겪어 거덜에 대한 기시감이 남다른 한국인의 입장에선 사회적 불안을 느낄 수도 있는 처지인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긴 했지만 숨통이 완전히 트인것은 아니다.

이러한 혼란함을 보여주는 청사진이 박스오피스의 1~4위의 성적표가 아닐까 한다. <범죄도시>, <탑건:매버릭>, <한산>, <공조2>등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형사이거나 군에 몸 담으며 우리를 수호한다. 이는 우연인 걸까? 그 어떤 무게보다 히어로의 약동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은 앞서 소개한 아쉬운 성적의 블록버스터들과는 달리, 단선적인 이야기 라인에 형사와 군인이 우리를 지켜내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들의 마케팅을 접하는 순간, 주인공이 임무에 성공하게 될 것임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 편은 역사가 스포다) 현실의 복잡함을 이미 느끼고 있는 상태인데, 극장에서 까지 두뇌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이에 익숙히 잘 알고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어우.. 보기만 해도 든든해

장르 코미디 강세 : 강렬한 메세지보단 단순하고 명쾌함을 찾는 심리

그러한 장치를 잘 가져가는 장르는 단연 코미디다. <육사오>는 로또를 향한, 이념을 넘어서는 열망을 보여주며 연신 웃겨댄다. 안전하면 재미없고, 경계를 거스르면 윤리적이지 않은 것이 코미디의 딜레마다. 그런데 <육사오>는 웃음을 가져가면서도 따스하고 곧은 시선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좋은 코미디 영화다. 이런식으로 강렬한 메세지 보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것을 찾느라 코미디 코드가 강한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공조2>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추석 극장가에서 <헌트>는 줄곧 3위를 차지했지만 연휴 마지막 날에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인 <도시로 간 까투리 가족>(2022)에 밀려 4위를 기록한다. 웰메이드 장르영화를 찾는 필요는 물론 많지만, 이것만큼이나 가벼운 톤의 컨텐츠 또한 수요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명절용 가족영화의 부족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 승인하신 분.. 왜 그랬어요..?

영화계가 가야할 길은 작은 승리의 반복

이순신 장군님은 <한산>에서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은 그 압도적 승리를 목도하고 침체기에 빠졌던 개봉시장이 술렁였던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영화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작은 승리의 반복이다. 타인과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는 면에서 극장관람은 결코 사그라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활성화되려면 어떤 면을 더 강하게 키워야 할지 컨텐츠의 제작자들이 전방위적으로 고민할 문제가 됐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