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드디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개막한다. 5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BIFF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간소화됐던 시기를 털어내듯, 화려한 라인업과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영화제의 꽃은 무엇인가. 역시 관객들을 만족시켜줄 영화가 아니겠는가. 올해도 입소문 난 영화들, 기대작들을 가져와 매진 행렬을 만든 BIFF 상영작들을 몇 편 소개한다.
<슬픔의 삼각형>
Point.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화제라면 '월드 프리미어'(전세계 최초 공개)나 개봉 안 할 것 같은 영화를 쫓는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대외적으로 방문객을 끌어모으는 건 사실 이미 검증된 영화를 미리 만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슬픔의 삼각형>처럼.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가 대대로 이변이 많은 영화제긴 하지만, <헤어질 결심>의 그랑프리가 점쳐지던 상황에서 <슬픔의 삼각형>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아무래도 한국 관객들에겐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루벤 외스틀룬드는 2017년 <더 스퀘어>로도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더 스퀘어>는 이후 평단과 대중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진 못했다. 이번 <슬픔의 삼각형>은 <더 스퀘어>과 유사한 상황으로 흘러갈지, 아니면 보다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상위 호환'인지 BIFF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세계 부호들이 탑승한 크루즈가 좌초하면서 무인도에 당도하게 되고, 유일하게 낚시를 할 줄 아는 청소부가 점차 권력의 중심에 서는 과정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너와 나>
Point. 매우이자 '감독' 조현철의 장편 데뷔작
매해 한국 독립 영화 화제작이 적어도 한 편 이상 나오는 BIFF. 영화제가 개막되고 관객들의 반응을 봐야 올해의 화제작을 가늠되겠지만, 개막 전 한국 영화 최고의 화제작은 <너와 나>가 아닐까 싶다. <너와 나>는 산체스(<호텔 델루나>), 조석봉(<D.P.>)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배우 조현철의 장편 연출 데뷔작. 여기까지만 듣고 '배우의 연출 데뷔작이라 화제인 거냐' 하지 말자. 조현철은 배우 이전에 영화 연출을 먼저 했고, 단편 영화로 여러 차례 수상도 한 베테랑 감독이다. 그가 이번에 연출한 <너와 나>는 절친한 친구 세미와 하은의 일상들을 스크린에 옮기며 상실의 드라마를 활기로 채운다. 영화 음악을 오혁이 맡은 것도 독특한 포인트 중 하나. 조현철 본인도 티케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는 일화처럼 4회 상영 중 3회가 매진이고 1회차만이 자리가 살짝 있는 정도다. 최근 수상소감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조현철의 사려 깊음이 깃든 <너와 나>,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야자수와 전선>
Point. 선댄스 영화제 3관왕, 연이은 호평
영화제마다 팬덤이 있다면, 지금은 이 영화제의 팬덤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은 선댄스 영화제. 최근 세계 3대 영화제나 아카데미 대신 '좋은 영화'의 지표를 선댄스로 삼는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최근 독립 영화, 예술 영화쪽에서 훌륭한 타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BIFF에서 상영하는 <야자수와 전선>도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을 받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신이 2018년 만들었던 동명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제이미 덱 감독의 <야자수와 전선>은 위태로운 생활을 거듭하던 10대 여성이 자신을 도와준 30대 남성에게 빠져드는 이야기다. 일견 운명적 사랑, 혹은 '키다리 아저씨'를 떠올리는 스토리지만 영화는 이 과정에서 그루밍 대상이 되는 여성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어떻게 보면 이 남여의 관계를 통해 영화는 그동안 매체들이 순진하게 묘사한 '도움의 손길'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지 경고마저 던지는 듯하다. 해외 평가들을 보면 이 영화의 태도나 메시지에 동의하든 아니든 제이미 덱이란 신예 감독과 릴리 맥키너니라는 신성을 만나는 재미는 확실해보인다.
<노바디즈 히어로>
Point. 파격의 대가 알랭 기로디, 이번에도 파격
배우나 감독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기작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영화제의 법칙. 독특한 설정과 장르적 결합으로 유명한 알랭 기로디의 <노바디즈 히어로>는 3회차 상영 모두 매진됐다. 이번 신작도 시놉시스만 봐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 남자가 한 여성에게 구애하다가 갑자기 도시에 테러가 일어나고 오해가 겹치면서 또 다른 인물이 휘말리고… BIFF에서 붙인 태그들(죄/폭력·사랑/연애/로맨스·음악/춤·코미디/유머/블랙코미디/풍자·인권/노동/사회)을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힘, 그런 독특함이 알랭 기로디를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관객이든 궁금증을 자극하는 듯하다. 다른 국가에선 이전 영화들보다 혹평이 많은 편인데, 한국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지도 궁금해지는 부분.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Point. 일본 연예계가 주목하고 있는 선남선녀 배우들의 멜로
영화제라고 현실에 매스를 대 민낯을 드러내거나 예술혼에 불타는 영화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훌륭한 상업영화도 그해 영화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늘 밤>)가 그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보통 3천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 상영 회차는 매진되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밤>은 종종 취소표가 발생해도 바로 매진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소라닌>, <양지의 그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등을 연출한 미키 타카히로라는 이름이 일단 믿음직한 데다 (일명 '천년남돌'로 불리는) 미치에다 슌스케와 후쿠모토 리코라는 선남선녀 배우 조합까지. 딱딱하고 무거운 영화가 아니라 같이 온 사람과 함께 볼 몽글몽글한 영화를 찾던 관객들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오늘 밤>은 이사키 미치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매일 기억이 사라지는 마오리와 그런 마오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루의 사랑을 그린다. 어쩌면 뻔하게 보일 수 있는데 원작 소설이 받은 극찬을 생각하면 예상 외의 전개가 있을 테고, 거기에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멜로 감성이라면 충분히 믿고 볼 수 있겠다.
그 외 매진을 거듭하는 영화들은 익숙한 감독, 배우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많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와 티모시 샬라메가 재회한 <본즈 앤 올>,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이후 7년 만에 신작을 들고 온 알레한드호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훌륭한 극작가이자 감독 마틴 맥도나의 <이니셰린의 밴시>, 언제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매섭게 그리는 크리스티안 문쥬의 <R.M.N.>, 노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가 거장 로베르 브레송에게 보내는 헌정 영화 <EO>, 노아 바움백과 아담 드라이버가 <결혼 이야기>에 이어 합심한 <화이트 노이즈> 등등. 인기작을 나열한다면 끝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인기작의 좌석은 끝이 있다. 설령 상기의 인기작을 못 보더라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자. 이만큼의 인기라면 언젠가 극장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작은 위로를 덧붙이자면 영화제의 재미는 역시 그냥 고른 영화가 마음에 진하게 남을 때인 것 같다. 그러니 BIFF에서는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나만의 인생 영화를 찾아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영화 스틸=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