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벗어나려 애를 써보아도 끝내 굴레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래서 스스로 더욱더 폭력적인 관계들이 있다. 이런 관계가 자아내는 상처는 유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피를 흘리고 멍이 들고, 심지어는 어딘가 부러져야지만 주변인들에게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사실 이 외상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축적된 내상의 과포화 상태다. 마음에 멍울이 지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무릎을 꿇고 빌게만 만드는 시간이 쌓아 올린 것이다. 도대체 어떤 관계가 이런 상태로 사람을 만들 수 있냐고 묻는다면, 여러분들도 이미 다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가족이라는 존재다.
가족이란 이름이 만든 내상
같은 속옷을 입고 한집에 살고 있지만, 어머니 수경 (양말복 분)과 딸 이정 (임지호 분) 사이에는 아득히 먼 위계가 느껴진다. 이정이 생리통을 앓으면서 속옷에 묻은 생리혈 빨래를 하는 화장실에 수경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영화의 초반부. 이정은 화를 내지도 놀라지도 않은 채 묵묵히 빨래를 하고, 수경은 태연히 빨래 중인 속옷을 입고 자신이 운영하는 건강원으로 향한다. 이정은 심한 생리통에 타이레놀을 수경에게 부탁하지만, 수경은 자신의 애인 종열 (양흥주 분)과 술자리를 갖느라 여념이 없다. 당연히 타이레놀 따위는 사 오지 않은 그날 밤.
이 짧은 저녁 시간을 담는 영화의 초반부는 이정과 수경이 느끼는 가족이란 감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벌컥 여는 문에 놀라지도 못한 채 고개를 떨궈버리는 이정의 무력한 순응. 딸의 빨래를 뺏어서 입는 일이 너무나 당연해진 수경의 태도. 생리통을 앓는 딸의 안부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애인 종열의 건강을 위해 복분자주를 챙기는 수경. 끝내 수경이 사 오지 않은 타이레놀에도 무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는 이정. 이정은 순응하고 두려워하며 무력하게 수경을 바라보고, 수경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정의 존재를 지우고 태연스럽게 자기 삶을 영위한다.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속 두 모녀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음에도 지나치게 수직적인 위치에 서로 놓여있다.
이미 드러난 상처는 지나온 시간의 증거다
남들이 다 보는 마트에서 수경과 이정은 서로 다툰다. 수경은 안하무인의 태도로 성을 내며 마트를 가로지르느라, 지나가던 아이의 풍선도 터뜨려버렸다. 이를 수습하듯 이정은 입을 앙다문 채로 그녀의 뒤를 쫓아간다. 차에 올라탄 수경은 분을 못 이겨 이정을 폭행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이정은 차 문을 박차고 나가 수경을 째려본다. 분이 덜 풀린 수경은 ‘죽어버려’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쾅. 벌건 대낮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어머니는 딸을 차로 쳤다. 믿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정은 덤덤하게 사건의 정황과 어머니의 고의성을 보험사에 주장한다. 분노에 차 있지만, 당황하거나 충격을 받기보단 그저 예측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두 모녀의 관계가 만천하에 알려지는 사건이었지만, 이정에게는 그저 지난 20년간 축적된 어머니의 분노와 폭력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너무나도 뻔뻔하게 차량의 급발진을 주장하는 수경의 모습을 보니, 지나온 시간의 일부라는 표현이 더 확고해진다. 수십 년에 걸친 수경의 욕설과 폭행들을 먹고 자라온 이정의 모습은 늘 소극적이고, 불안정했으니깐. 학창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회사에 다니는 지금까지, 그녀는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늘 침묵해야 했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영겁의 세월에 걸친 수경이란 세상은 이정을 고립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어느 하나 제대로 하기엔 두려워하는 존재로 자라게 했다.
이정은 이제 수경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급발진을 주장하거나, 멋대로 합의서에 서명을 날조하는 등, 수경은 수면 위로 올라온 이 사건을 덮으려 하지만, 이정은 변호사를 직접 찾아가서 증거를 제출하고 결국 수경을 법정에 세운다. 블랙박스 속 등장한 수경의 ‘죽여버려’라는 말은 그녀의 고의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자료였으며, 더불어 어릴 적 이정이 수경에게 썼던 편지 속 잦은 폭력에 대한 언급 역시 이정의 손을 들기에 좋은 증거였다. 하지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그렇게 이정은 수경에게서 벗어났고, 완벽하게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했으며, 수경은 그렇게 철저히 징벌받는다는 방식의 전개로 흘러갈 생각이 없는 영화다. 재판 장면이 끝날 무렵, 영화는 러닝타임의 반도 채 돌지 않았다. 차라리, 영화는 두 모녀가 왜 이 먼 길을 헤매 폭력과 증오로 점철된 관계를 이어 나가야만 했는지에 대한 관계의 작동방식에 집중한다.
왜 우리는 그래야만 했을까
수경 역시 되짚어보면 참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왔다. 이정과 수경의 세계엔 아버지는 없고, 수경은 이정의 성장기를 모두 책임져야 했던 유일한 존재였다. 수경은 건강원에서는 아줌마들의 험담을 감내해야 했고, 뒤에서 그녀가 혼자 키우는 여자기에 엄마 노릇 빵점이라는 험담을 들으면서도 내색할 수 없었다. 늦은 나이에 새로 시작한 종열과 의 연애가 주는 행복은 이따금 이정이 분노를 표출하며 보이는 이상행동으로 맘 편히 할 수도 없다. 그녀의 배를 걷으면 보이는 붉은 세로줄의 흉터는 수경이 이정을 출산한 뒤로 줄곧 그녀에게 짊어지운 커다란 짐처럼 느껴질 것이다. 표독하게 버텨야 하며, 사과하고 굽히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삶의 태도는 수경 스스로가 아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수경은 홀로 소주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정에게 이야기한다. 이정은 혼자 큰 게 아니라고. 이정을 키운 것은 본인이고, 수경은 그러기 위해 뼈 빠지게 노력했다고.
하지만 이정은 반박할 것이다. 그렇게 당신이 키운 존재가 지금의 나라고. 혼자 아무것도 못 하고, 사람과 교류하기도 두려워한 채, 사랑만을 바라고 있는 존재로 키운 것이 수경 당신이라고. 수경은 집 바깥에서 감당해야 했던 모든 표독한 말들을 담아두었다가 결국 이정에게 쏟아내고 만다. 세상에서 수경으로, 수경에서 이정으로. 모든 분노가 대물림되고 있을 때, 이정은 그 분노를 몽땅 받아내어 풀 곳 없이 끙끙 앓고 있다. 자신에게 떠밀려 온 이 독은 어디로 보내야 하냐는 이정의 일갈에 수경은 취한 채 뇌까린다. “너도 딸 하나 낳으라고” 이토록 서늘한 말이 프레임 위로 울려 퍼질 때, 우리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만 같았던 모녀의 관계가 사실 양육자와 피양육자 간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오는 폭력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두운 방에서 우린 서로 마주볼 수 있을까?
수경의 애인 종열처럼 이정에게도 가족이 아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녀의 회사에서 이정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소희 (정보람 분). 이정이 수경과 싸우고는 스스로 집을 떠난 첫날 밤, 이정은 그리 친하지 않은 소희의 집을 무작정 방문한다. 소희는 그런 이정을 자기 집에 재워주며, 그녀의 사정을 들어주었다. 그날 이후로 이정은 소희에게 급격하게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치, 수경이 종열에게 자신의 미래를 의탁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소희에게 이정은 부담으로 다가왔고 끝내 소희는 이정과의 연을 모두 끊어버린다. 여태 사랑받지 못했던 이정은 누군가의 호의를 애정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애정의 도착지는 집착이라는 점은 참 슬픈 일이다.
두 모녀 모두 가족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정은 소희의 호의를 오인해 애정결핍에 의한 집착을 보였고, 수경은 종열의 결혼제의에 새로운 ‘아이’를 맡아야 한다는 양육자의 두려움을 느끼곤 끝내 종열을 떠나고 만다. 그렇게 관계에 실패한 채 홀린 듯 두 모녀는 전쟁 같은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때마침, 수경과 이정 사이의 큰 상흔인 붉은색 모닝도 이정이 급발진을 경험하며 폐차된다. 갑작스러운 정전이 찾아오고, 두 모녀는 냉동고에 녹아내린 투게더를 나눠 먹으며 처음으로 으르렁거리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둘은 길고 긴 악연의 끝에서 서로를 품을 수 있을까?
새로운 속옷을 입으려면
김세인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결단코 오랜 기간에 쌓인 가족 간 폭력과 분쟁의 역사를 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한다는 말이나, 보이지 않아도 쌓아온 세월이 서로를 알아가게 한다는 알량한 결론을 거부한다. 이정이 드디어 짐을 싸고 그 둥지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이다. 수경에겐 그런 이정의 독립이 어떠한 의미였을까?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채 수경은 그저 물을 끓이고, 녹아버린 냉동 만두를 먹고, 서툰 리코더를 불며 불안정하게 그 집을 사수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정에겐 그 독립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수경이 수경의 삶을 사는 동안, 이정은 이정의 삶을 살지 못했다. 여태껏 자신의 컵 사이즈도 모른 채 어머니의 속옷을 입던 그녀가, 이제는 ‘새로운 속옷’을 입기 위해 자신의 치수를 알아야 한다. 이제 이정은 <다른 속옷을 입은 한 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