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50주년을 맞는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리드킨, 1973)가 ‘디렉터스 컷’으로 재개봉된다. <엑소시스트>는 어린 소녀의 몸에 들어온 악마를 쫓기 위해 엑소시즘을 벌이게 되는 두 신부의 사투를 그린다. 이번 <‘엑소시스트:디렉터스 컷>은 2001년에 개봉 된 바 있으며 오리지널에서 삭제된 12분 분량의 장면과 음향을 복원한 버전이다.
유명 여배우 크리스(엘렌 버스틴)는 이혼 후 딸과 둘이 살아간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딸 리건(린다 블레어)에게 규명 불가한 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불안해진 크리스는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를 해보지만 딸에게 고통만 더할 뿐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한다. 결국 의사들조차 검사를 포기하고 크리스에게 ‘엑소시즘’을 권유한다. 크리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제이자 정신과박사인 카라스 신부 (제이슨 밀러)를 찾아간다. 처음엔 주저하지만 악령에게 사로잡힌 것이 명백해 보이는 리건을 보고 그는 모녀를 돕기로 한다. 카라스는 엑소시즘의 전문가인 메린 신부 (막스 폰 시도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둘은 목숨을 건 하룻밤의 엑소시즘을 시작한다.
<엑소시스트>는 1971년에 출간된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 제작에 앞서 소설은 이미 베스트 셀러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블래티는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하며 작품의 영역을 확장했다. 블래티와 감독인 윌리엄 프리드킨은 조금 더 잘 알려진 배우들을 캐스팅하길 원했으나 불발되었고 현재의 캐스팅으로 결정짓게 된다. 특히 11살 소녀 ‘리건’의 역할은 더더욱 섭외에 난항을 겪었는데 리건이 악마에 들리고 난 이후에 벌어지는 소녀의 기괴한 행동과 신성모독, 성적인 욕설이 그 이유였다. 스타의 부재와 카톨릭 교회가 반발할 만한 테마 등 영화는 여러가지 약점을 지닌 채 고작 24개의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마다 줄을 섰고 결국 4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엑소시스트>는 예상을 뒤엎은 흥행기록과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비평적 성취로도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엑소시스트>는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예컨대,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 일어났던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반전운동과 관련해서 작가 스티븐 킹은 <엑소시스트>가 ‘사회적 호러’라고 불릴 만한 장르를 개척했으며 악마에 들린 소녀, ‘리건’의 발작은 1970년대를 뒤흔들었던 사회적 부정 (social injustices) 에 대한 포효로 읽을 수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에이미 챔버스 역시 <엑소시스트>가 미국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악마를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불안한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물론 영화의 표현 수위가 높은 만큼, 그에 따른 비판적 평가도 피할수 없었다. 특히 평론가들은 리건이 막 2차 성징이시작되는 소녀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악마에 들린) 그녀가 쉴 새 없이 자위행위를 언급하고 여성성을 자극적인 수사로 비난하는 것을 여성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960, 70년대 할리우드의 변화를 명석하게 분석한 <Easy Riders, Raging Bulls: How the Sex-Drugs-and-Rock 'N Roll Generation Saved Hollywood>의 저자이자 문화평론가 피터 비스킨트는 (남자) 사제들에 둘러 쌓여 질서와 침묵을 강요 받는 리건의 모습은 가부장제의 건재함을 상징하고 아울러 페미니즘의 남성적 리액션을 은유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영화의 이러한 노골적인 반 페미니즘적 묘사가 존 부어먼이 프리드킨에 앞서 연출을 고사한 이유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은 호러영화지만 <엑소시스트>가 그 이상으로 다양한 시점의 해석과 이슈를 불러 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영화가 보여주는 파격적인 묘사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고 공개된 시점, 그리고 영화 곳곳에 심어 놓은 사회적인 레퍼런스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엑소시스트>가 개봉된 1973년은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미국 전역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인데다가 각 대학 캠퍼스의 베트남 반전 운동이 정점을 향해 가던 시기였다. 영화배우인 크리스가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영화 속에서 캠퍼스 내의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반전운동을 저지하려는 군인들에게 캠퍼스를 떠나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영화 속 설정으로만 보기에 의미심장하다.
또한 <엑소시스트>는 급증하는 의약품 혹은 지나친 의학치료에 대한 맹신을 비판한다. 학자들은 1970년대 민권운동, 워터게이트, 베트남 전 등으로 인한 사회적 급변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초래했고 그로 하여금 더 많은 의약품들을 소비하고 병원 치료에 의지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엑소시스트>에서 리건의 병을 알아내기 위해 등장하는 갖가지 끔찍한 검사들 –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면은 리건의 뇌 사진을 찍기 위해 목에 얇은 관을 삽입하고 관의 구멍에서 피가 튀는 장면이다 – 과 발음조차도 어려운 복용약들은 분명 제약회사와 병원치료의 권력화를 풍자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왔던 <엑소시스트>는 1973년의 1편을 필두로 1977년 <엑소시스트 2>, 1990년 <엑소시스트 3>, 2004년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 2005년에는 프리퀄인 <도미니언: 프리퀄 투 엑소시스트>의 개봉으로 이어지며 프랜차이즈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현재로서는 시리즈의 리부트 프로젝트가 논의 중이다.
많은 후손(?)들을 양산했지만 이제껏 <엑소시스트>의 1편의 완성도와 호러, 그리고 사회적 풍자를 능가하는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20년만에 재개봉되는 <엑소시스트: 디렉터스 컷>은 더더욱 기대가 된다. 1970년대의 미국사회를 전복했던 혁명들과 사건, 그리고 청년들의 외침이 <엑소시스트>를 향한 열광적인 컬트를 만들었다면 비극과 울분, 그리고 회한으로 침수당한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또 다른 <엑소시스트>의 감상을 만들어 질 것인가.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