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는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아버지이자 영화감독인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의 인생과 그들의 작품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타이거 킹> (2020), <짐 앤 앤디> (2017), <배드 비건> (2022) 등으로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인으로 등극한 크리스 스미스와 다우니 부자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Sr> 다큐멘터리, 출처 IMDB]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이하 ‘주니어’)는 <아이언 맨> 시리즈 이후로 할리우드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군림하는 메가 스타가 되었다. 아버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이하 ‘다우니’) 역시 1960, 70년대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아들의 유명세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는 메이저 극장으로 배급되는 형태가 아닌 독립영화를 모두 묶어 칭하는 컨셉이었다. 따라서 근거지도 할리우드가 위치한 LA가 아닌 다른 도시 중심으로 발전했다. 극중 다우니가 캘리포니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는 것과 같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평생 (몇 편의 영화 제작기간을 제외하고는) 뉴욕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어디를 찍어도 늘 새로운 이미지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덧붙이는데 다우니를 포함한 많은 언더그라운드 시네마 출신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60년대에 들어 민권운동과 베트남 반전운동 등 혁명의 기운이 거세지면서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는 반 문화 운동 (counter-culture movement) 중 하나로 자리를 잡으며 본래의 뜻에서 조금 더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형태의 영화들로 탈바꿈했다. 다우니 역시 당시 사회적 변화에 강한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중 한명으로 주로 사회풍자와 비판의 수위가 높은 저예산 코미디영화들을 만들었다. 그 중 <퍼트니 스워프> (1969)는 백인 중심의 광고회사에서 한 명 뿐인 흑인이 회사의 대표로 선출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는 풍자 코미디다. 이 영화를 통해 다우니는 할리우드와 대기업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비판한다. 전반적으로 높은 표현 수위와 신문사들마다 보이콧을 내릴 만큼 큰 논란을 불러 온 영화 포스터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이후, 2016년 미국 의회 도서관에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임명되어 소장되었다. 영화감독이자 다우니의 예찬자이기도한 폴 토마스 앤더슨 역시 자신의 작품, <부기 나이츠>에서 ‘벅 스워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퍼트니 스워프>에 대한 오마쥬를 표현했다.

[<퍼트니 스워프>개봉 포스터: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시카고 트리뷴이 포스터를 싣지 않자 "신문사의 자체검열이 개탄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우니의 독특한 커리어는 아들 주니어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버지의 또 다른 풍자 코미디, <파운드> (1970)를 통해 5살의 나이로 데뷔했다. <파운드>는 다우니가 쓴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더 커머펀스> (The Comeuppance, 받아 마땅한 벌) 를 기반으로 한 장편영화로 개들이 주인공인 풍자극이다. 개들은 모두 사람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가장 어린 강아지 역을 맡았다. 다우니의 작품활동은 2000년대 까지 지속되었으며 이 시간 동안 그가 만든 작품은 20여개에 달한다.

다큐멘터리 <Sr.>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버지에게 둘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하며 시작된다. 아버지의 독특한 세계관과 연출스타일을 좋아했던 주니어가 아버지가 파킨슨 병을 선고받자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기를 권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아버지의 손으로 완성되지 못하지만 이 영화는 전적으로 다우니 부자의 대화, 추억, 그리고 이들의 작품들로 채워진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하고 담담한 부자의 일상, 혹은 그들의 통화들은 살갑고 따뜻하지만, 영화의 중반에서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마침내 각자의 ‘바닥’에 대해 털어놓는다. 다우니는 1987년 <레스 댄 제로> 를 만들면서 마약에 중독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마약과 창의력이 동일시되던 그 시대”에서는 그 역시 또렷한 정신을 버리고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영화는 다행히 (혹은 간신히) 완성되었지만 다우니는 한동안을 중독자로 지냈고, 상당수의 그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이자 주니어의 친모인, 앨시 포드 역시 이 시기에 그를 떠났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레스 댄 제로> (1987)]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버지보다 더 극심한 마약 중독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의 중독은 연일 타블로이드를 장식했을 정도로 큰 가십이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그는 재활병원을 들락날락하며 총기소지, 음주운전, 마약소지 등 크고 작은 사고의 주범으로 활약했다. 할리우드의 그 누구도 그가 재활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 <고티카> (2004, 마티유 카소비츠) 에서의 조연을 시작으로 주니어는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4년 후 그는 <아이언 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화 <Sr.>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순간 중 가장 감동적인 지점은 다우니와 주니어가 서로의 중독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지점이다. 다우니가 중독으로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절, 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마약 복용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니어가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마약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다우니 역시 지켜 봐왔던 것이다. 이들의 놀라운 점은 각자가 한번도 (중독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에 조차) 서로를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늘 전화를 하고, 대화를 이어 나갔으며 한번도 서로에게 절망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부자]

<Sr.>의 차분하고도 감각적인 톤을 고려하면 이 작품의 연출인 크리스 스미스의 조합이 다소 의외로 느껴진다. <타이거 킹>이나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2019)를 포함해 그가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했던 다큐시리즈들은 화제성과 선정성,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상품에 가까운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스미스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부자 (父子)의 인생 역전 만큼이나 큰 이행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Sr.>는 이름난 부자의 마약 극복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시네마에서 잉태된 아티스트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연대와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뉴욕의 누추한 뒷골목 곳곳을 카메라를 들고 쏘다니던 다우니 시니어의 뒷모습은 할리우드의 자진검열과 스튜디오의 글로시한 이미지를 거부했던 언더그라운드 영화 그 자체와 닮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