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분은 우리 제국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이고 당신은 그걸 대표하는 얼굴이 되면 되는 거요.”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장 유명한 여성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초대 황후인 엘리자베트. <코르사주>는 인형처럼 앉아서 꽃같이 웃던 엘리자베트(비키 크립스)의 특별한 1년을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영화는 물에 잠긴 엘리자베트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40세 생일을 앞둔 그녀는 왕족의 규범과 세간의 시선에 짓눌린 듯 보인다.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몸무게를 재고 가느다란 허리를 만들기 위해 ‘코르사주(코르셋)’를 있는 힘껏 조이는 모습은 엘리자베트가 평생 외모 가꾸기에 집착했다는 일화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무게가 1kg이나 되는 머리카락을 땋아 올린 채 식사로 겨우 오렌지 한 조각을 먹는다. 생일 축사로 “영원히 아름답길” 따위의 이야기를 듣는 그야말로 왕가의 박제된 아이콘. 그러나 공식 석상에서 기절한 엘리자베트가 사촌 루트비히(마누엘 루비)에게 깔깔대며 기절하는 연기를 선보이는 대목에서 <코르사주>의 야심이 드러난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건 엘리자베트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다.

<코르사주>의 엘리자베트는 장식품처럼 마냥 조용한 여성은 아니다. 그녀는 남편 요제프 황제(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에게 화내고 이죽대는 아내이며, 자식들과 감정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는 이상한 어머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또 어떤 때는 슬픔에 깊게 잠겨 말조차 잃는다. 그녀는 줄곧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며 황후의 역할을 고민한다. 그런가 하면 코르셋을 더 세게 조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녀에게 역정을 내기도 한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훌쩍 먼 여행을 떠난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상태를 설명하며 재차 불안정하다는 표현을 쓴다. 황제는 그녀의 변덕과 분방한 기질이 제국에 명백한 해가 된다고 판단한다. 자식들도 어머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엘리자베트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과 친밀함을 갈구하며 취약한 면모를 노출한다. 승마 선생 베이(콜린 모건)와 루트비히의 애정에서 안식을 찾고, 옆 사람 어깨에 자주 기대며, 타인의 침대에 멋대로 눕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과 한 치의 빈틈없이 가까운 사이는 될 수 없다. 긴 여행을 끝내는 엘리자베트의 얼굴은 끝내 그 어디에도 자기 자리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그늘진다. 그녀는 외롭다. 그런데 영화는 그 여정에서 오히려 역동적이고 생생한 몸짓을 포착해낸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내 발 아래>(2019)를 선보이며 입지를 다진 마리 크로이처 감독은 배우 비키 크립스의 제안으로 엘리자베트 황후에 관한 서적을 뒤지며 영화의 틀을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 빈의 관광 상품 정도로 엘리자베트를 기억하고 있었으나 기록된 역사의 행간에 주목하며 황후의 새로운 초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데, 감독이 감지한 건 “작은 반항 행위”였다. “가능한 한 멀리 여행하고, 공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방도를 찾고, 식사 자리에서 먹기를 거부한” 엘리자베트의 행동에서 모든 기대로부터 이탈하려는 저항의 움직임을 본 것이다. 황후가 남긴 우울한 시와 정신병원을 후원했던 행보 사이의 상관관계 역시 유기적으로 해석했다. 특히 나이 든 후 공적 자리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는 엘리자베트의 일화가 이야기의 단단한 토대가 됐다. 역사 속 엘리자베트는 60세의 나이에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코르사주>는 그보다 앞선 시기에 그녀가 생사의 결정권을 쥐고 자기 방식대로 삶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영화는 1878년이라는 구체적 배경을 누차 부각하는 한편 허구적 요소 또한 적극 활용한다.

<코르사주>엔 엘리자베트의 운명 이외에도 몇 가지 의도된 고증 오류들이 있다. 감독에 의하면 이는 모두 면밀한 역사적 연구에 바탕을 둔 것으로, “멋지고 깔끔한 전기 영화”를 만드는 대신 내린 “예술적 결정”이다. 20세기 발라드곡인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As Tears Go By’가 하프로 연주되는 장면은 기묘하고도 아름답다. 궁정 내부를 비추는 카메라 한구석엔 현대식 청소 도구가 세워져 있다. 엘리자베트의 주치의는 당대엔 아직 이름 없던 마약인 헤로인을 처방한다. 이러한 오류들을 통해 엘리자베트는 현대 여성의 얼굴을 얻는다. 여기에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보여주는 춤까지 더해지면 엘리자베트는 19세기 유럽의 어느 제국이 아니라 오늘날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여성을 대변하려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팬텀 스레드>(폴 토마스 앤더슨, 2017)와 <베르히만 아일랜드>(미아 한센뢰베, 2021) 등에서 욕망하는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던 비키 크립스는 그러한 역할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배우다. 그는 사소한 손동작부터 승마와 펜싱 같은 격렬한 운동에 이르는 다양한 몸의 쓰임 또한 세심하게 표현하며 <코르사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코르사주>는 유명하고 불운했던 역사 속 여성의 삶을 독특하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2006),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파블로 라라인의 <스펜서>(2021) 등과 나란히 두고 볼만한 영화다. 세 영화보다 덜 화려하다는 점이 <코르사주>의 특징인데, 단지 소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곧 바스러질 것처럼 칠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금이 간 건축물들은 쇠락하는 제국의 운명을 닮았다. <코르사주>는 어둡고 눅눅한 시대극이다. 한편 영화엔 재현에 관한 고민 또한 담겨있다. 감독은 초기 영화 카메라를 발명한 루이 르 프린스(피느간 올드필드)를 등장인물로 불러온다. 물론 그가 엘리자베트와 만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카메라의 존재도 <코르사주> 식 오류의 일종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루이는 황후를 촬영하고 싶어 한다. 객관적인 건 없다며 사진에 적대감을 드러내던 엘리자베트는 “웃고 있기만 하면 무슨 말이든 해도 되는” 필름 촬영에서 이내 즐거움을 얻는다. 루이의 카메라는 황후의 이미지를 기록하지만 목소리까지 담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간극 덕분에 ‘활동사진’은 피사체에 자유를 선사할 수 있다. <코르사주>는 우리가 무언가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 간극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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