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하드> 포스터

〈다이 하드〉(1988)는 크리스마스 영화인가, 아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미국에선 〈다이 하드〉의 정체성을 두고 심심찮게 논쟁이 벌어진다. 개봉도 한여름 7월에 한 작품이 어디를 봐서 크리스마스 영화인가 싶지만, 영화 속 배경이 크리스마스 시즌인 걸 생각하면 단언하긴 쉽지 않다.

〈다이 하드〉를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까지 걸쳐져 있다는 점, 영화 내내 크리스마스 농담이 등장한다는 점을 근거로 꼽는다. 반면 〈다이 하드〉가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유로 ‘〈다이 하드〉는 크리스마스가 배경인 액션 스릴러일 뿐 크리스마스 영화는 아니’라고 말한다. 추석에 개봉하면 추석 영화라고 정의 내린 끝에 성룡을 명절마다 보는 큰 형 정도로 여기고 살았던 한국 관객들에겐 좀 이상하게 들릴 논쟁이지만, 미국에서는 나름 유서 깊은 논쟁이라고 한다.

<다이 하드>

글쎄, 〈다이 하드〉에 크리스마스 정신이 없나?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우선 크리스마스 정신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할 것 같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종교적 층위와 비종교적 층위로 나눠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충실한 독실한 신자들에게 크리스마스란 인류의 원죄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태어난 아기 예수의 탄신일이다. 아기 예수는 권세 높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라 평범한 목수와 그 아내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태어났고, 유대의 왕이 태어난다는 예언을 들은 헤롯왕의 유아 살해라는 참화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의 첫 잠자리는 공들여 만든 요람이 아니라, 소와 말이 여물을 먹는 구유통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를 묵상할 때, 구세주가 가장 위험한 시기, 가장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곳으로 내려온 의미를 묵상한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한 ‘사람의 아들’이 사실 가장 존귀한 존재였음을 생각하며, 세상의 돈과 권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다이 하드>는 흔히 말하는 '크리스마스 영화'와는 다르긴 하다(왼쪽부터 <나 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크리스마스 연대기>)

비종교적 층위에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정신도 사실 여기에서 나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선물을 나누는 것, 나아가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크리스마스의 설렘 같은 것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란 떨어져 있던 이들과 다시 한번 마음으로 연결되는 기회이며, 가족을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즌이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공인된 ‘크리스마스 영화’들, 그러니까 〈나 홀로 집에〉(1990)나 〈러브 액츄얼리〉(2003). 이 코너에서 다뤘던 〈멋진 인생〉(1946), 〈엘프〉(2003) 같은 작품들을 생각해봐도 자명하지 않나? ‘크리스마스 영화’가 그리는 크리스마스는, 어떠한 위기로 인해 멀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서로를 용서하고 보듬으며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절이다.

<다이 하드> (왼쪽부터) 존 맥클레인, 홀리 지나로, 파월 경사

다시 〈다이 하드〉로 돌아가보자. 뉴욕 형사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 때문에 오랫동안 별거하고 있었던 아내 홀리(보니 베델리아)와 재회하기 위해 LA로 날아온다. 하지만 존의 눈엔 아내 홀리가 자신의 성씨 ‘맥클레인’ 대신 원래 성씨 ‘지나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게 영 거슬린다. ‘유부녀를 고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일본계 회사 나카토미 코퍼레이션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홀리의 해명도 영 탐탁지 않다. 기껏 다시 만나도 이렇게 멀어진 거리만 새삼 다시 확인하던 이 부부는, 나카토미 플라자에 다국적 테러리스트 그룹이 쳐들어오는 위기 앞에서 다시 서로와 끈끈해진다. 사이가 안 좋아 서로 떨어져 있던 가족이 명절을 맞아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가까워지는 이야기, 이게 크리스마스 정신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종교적 층위로 봐도 그렇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존 맥클레인 또한 액션 영웅이지만, 〈람보2〉(1985)의 존 람보(실베스타 스텔론)나 〈코만도〉(1985)의 존 매트릭스(아놀드 슈워제네거) 등의 근육질 액션 영웅들이 시대를 풍미했던 80년대의 기준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직업인이다. 영화 내적으로도 존은 가장 초라한 존재다. 잘 나가는 대기업 엘리트들로 가득한 나카토미 플라자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존은 혼자 가장 초라한 존재다. 아무도 뉴욕에서 날아온 형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홀리의 동료 직원 앨리스(하트 보크너)는 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존의 존재를 알면서도 홀리에게 수작을 건다. LA 경찰은 한직으로 밀려난 파월 경사(레지널드 벨존슨) 한 명을 빼고 나면 그 누구도 존을 믿지 않으며, 나카토미 플라자를 장악한 테러리스트들은 존을 찾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다이 하드>

그런 푸대접과 고난의 와중에, 존은 보잘 것 없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먼지 자욱한 환기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가고 발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혀가며 테러리스트들과 싸운다. 동방박사만이 예수의 임금됨을 알아보고 멀리서 온 것처럼, 존을 알아보고 돕는 건 파월 경사 하나 뿐이다. 오직 아내와 인질들을 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가장 초라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가장 큰 영웅이었음을 크리스마스 새벽에 증명해내는 이야기. 이게 〈다이 하드〉의 본질이다.

우리는 〈다이 하드〉를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아무리 멀어져 있고 사이가 소원해진 사이라 하더라도, 크리스마스에 만큼은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다가감으로써 다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돈과 권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것. 그렇게 본다면, 종교적인 층위로 따져보나 비종교적인 층위로 따져보나, 〈다이 하드〉는 본질적으로 크리스마스 영화가 맞다. 비록 개봉은 1988년 7월 한여름에 했고, 누드와 마약과 총탄이 화면 위를 날아다녀서 온 가족이 함께 볼만한 작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미심쩍으며, 주인공이 툭하면 욕설을 내뱉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이고, 우린 가장 초라한 몰골로 나카토미 플라자에 와서 모두를 구해낸 존 맥클레인을 생각하며 크리스마스 정신을 기릴 것이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