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운트 판례 (Paramount Decree, 1948)로 할리우드의 빅 5 스튜디오 (폭스, 파라마운트, MGM, RKO, 워너 브라더스)를 포함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더 이상 극장 소유를 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에서 제작, 배급, 상영을 모두 장악하는 스튜디오의 활동이 독과점의 행태라고 판단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텔레비전과의 경쟁은 더욱 과열되었고, 극장 밖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레저 활동 등이 유행하면서 할리우드는 전례에 없던 불황과 마주해야 했다. 예전과 같이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들을 고용한 고예산 스튜디오 영화들을 제작할 수 없게 된 할리우드는 젊은 감독과 제작자에 의한 저예산 프로젝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 당시 태어난 영화들은 주제와 스타일, 캐릭터와 표현 양식에 있어 혁명에 가까운 시도들을 보여주었다. 후에 평론가들과 영화학자들은 이들에게 ‘뉴 할리우드 시네마’라는 호칭을 붙여주었고 할리우드의 내리막에서 잉태된 이 영화들은 역설적이게도 미국 영화 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뛰어난 작품들로 평가받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아서 펜, 1967)를 필두로 <졸업>(마이크 니콜스, 1967), <미드나잇 카우보이>(존 슐레진저, 1969) 등은 기존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규격품에서 벗어난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대표작들이다.
‘뉴 할리우드 시네마’를 정의하는 가장 큰 경향이라면 새로운 감독군의 등장이다. 아서 펜, 마이크 니콜스, 데니스 하퍼 등은 당시 20, 30대의 젊은 감독들로 존 포드나 빌리 와일더가 이끌던 황금기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나 유럽의 작가주의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씨네필이자 감독들이었다. 이들의 영화는 반들반들하게 윤색된 미국의 모습이 아닌, 베트남전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닉슨의 워터게이트 이후 희망과 신뢰를 박탈당한 디스토피아적 미국을 문학적이고도 세련되게 그리는데 그 공통점이 있다. 60년대 말에 시작된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신화는 197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니콜스와 하퍼 등이 뉴 할리우드의 초석을 다진 1세대라면, 70년대에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폴락, 시드니 루멧 등의 2세대 감독들이 배출된다. 특히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1972년은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작가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딜리버런스>(존 부어맨), <왓츠 업, 닥?>(피터 보그다노비치) <더 겟어웨이>(샘 페킨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등이 모두 1972년에 공개된 작품들이다.
“(세상에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면) 영향력이 컸던 몇몇의 영화들, 그리고 <대부>가 있다”(There are influential films, and then there’s The Godfather)고 BFI 가 언급하듯, <대부>의 등장은 영화사적인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신인이었던 코폴라와 알 파치노는 <대부>의 성공으로 스타를 넘어선 영화산업의 중추가 되었고, <러브 스토리>(아서 힐러, 1970) 이후에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파라마운트에게는 다시 한번 할리우드의 중심을 탈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부>는 ‘마피아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으며 이후 수많은 주인공의 표본이 될 ‘안티 히어로’의 원형을 제시했다. 파라마운트 플러스에서 제작한 10부작 드라마, <오퍼: '대부' 비하인드 스토리>(마이클 톨킨, 2022, 이하 ‘오퍼’)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 <대부>의 제작기를 극화한 드라마다.
영화, <대부>의 시초는 마리오 푸조의 장편소설, ‘더 갓파더’다. 아버지, 비토 콜리오네의 뒤를 이어 마이클 콜리오네가 진정한 콜리오네 조직의 대부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더 갓파더’는 1969년에 출판되어 67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퍼>는 이제 데뷔를 마친 신인 프로듀서, 알버트 루디(마일즈 텔러)의 시점에서 그가 푸조의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판권을 해결하고, 파라마운트로부터 투자를 받는 등 모든 것이 순항인 듯하지만 <대부> 프로젝트의 가장 큰 위기는 실제 마피아 조직을 이끄는 ‘콜롬보’(지오바니 리비시)로부터 영화제작에 대한 협박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마피아 패밀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되면 실제 마피아 조직과 이태리 이민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했기에 영화의 제작은 실제로 콜롬보 뿐만 아니라 프랭크 시나트라와 시의원 마리오 비아기 등의 영향력 있는 이탈리안들에게 보이콧을 당했다.
드라마는 루디가 타고난 수완으로 마피아 두목인 콜롬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다른 반대 세력의 요구조건들을 타협해가며 가까스로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마피아와의 갈등이 해결되면 제작비를 둘러싼 스튜디오와의 전쟁이, 제작비가 해결되면 캐스팅이 조율이 안되는 등 실제 <대부>의 제작과정에서 일어났던 모든 갈등과 사건이 드라마 속에 재현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하이라이트는 실제 영화제작에 참여했던 중요 인물들의 재현, 혹은 이들의 말투나 외모의 싱크로율이다. 특히 <대부>의 주연 배우인 말론 브란도를 연기한 저스틴 챔버스는 브란도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독특한 발음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매튜 구드가 연기하는 파라마운트의 사장, 로버트 에반스 역시 구드의 최고 연기라고 단언하고 싶을 정도의 에너지와 리얼리티를 전달한다.
아마도 가장 의아한 캐스팅은 알 파치노를 연기한 앤서니 이폴리토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알 파치노는 이제 막 연극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였고, 당시 그의 어린 나이(30세)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외모인 데다가 카리스마가 부족한 배우라는 이유로 파라마운트가 마이클역으로 끝내 거부했던 후보였다. 코폴라와 루디는 지난한 싸움 끝에 스튜디오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알 파치노를 데려온다. 그러나 파치노는 드라마에서 보여지듯 촬영 중에도 늘 나약하고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알 파치노의 (우리가 몰랐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 <오퍼>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신인배우, 앤서니 이폴리토를 알 파치노의 역으로 캐스팅하지만 이폴리토는 당시 알 파치노 보다도 훨씬 더 어린 데다가(23세), 여린 외모와는 달리 섬찟한 눈빛으로 스탭들을 압도하는 파치노의 강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폴리토는 쳥년 마이클이 대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부>의 서사에서 소년에만 머물러 있다가 퇴장하는 실패한 캐스팅이다.
드라마의 시선이 감독 코폴라가 아닌 프로듀서 루디의 관점에서 그려지는 만큼 <오퍼>에서 코폴라의 역할은 다소 작거나 수동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아직도 <대부>를 코폴라의 마술로 인지하고 있는 수많은 팬과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생소하거나 부당한 해석으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퍼>는 흥미롭고 값지다. 1970년대 새로운 재능과 인재들로 들끓었던 할리우드, 그리고 이들과의 협업에서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던 올드 스튜디오 중역들의 이야기를 <오퍼>는 <대부>라는 걸작의 탄생을 통해 보여준다. <오퍼>는 단순히 영화 <대부>의 탄생기를 넘어,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기록이자, 코폴라, 파치노를 포함해 <대부>가 배출해 낸 수많은 전설들의 서막을 그린 ‘프리퀄’이기도 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