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코더가 작동하자 오래전 영상이 재생된다. 그 어느 여름, 아빠는 딸을 찍었고 딸은 아빠를 찍었다. 빛바랜 화면에서도 튀르키예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다. 열한 살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다가도 유년과 서둘러 작별하려는 듯 입을 꾹 다문다. 야간 버스를 타고 달리는 저렴한 패키지여행에 엄마는 동행하지 않는다. 조숙한 소피는 상황을 금세 이해한다. 부모는 이혼했고 더는 아빠와 한집에 살 수 없다. 부부는 딸을 사이에 놓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데 이번 여름휴가는 아빠 몫. 캘럼(폴 메스칼)은 딸과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소피를 고향 스코틀랜드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서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매일 신나게 놀기로 그는 마음먹는다.
<애프터썬>은 소피와 캘럼이 튀르키예에서 나눈 시간을 공들여 담는다. 큰일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없다. 그들은 싸구려 호텔 뷔페에서 밥을 먹고, 관광객 대상의 우스꽝스러운 공연에 참석한다. 오전엔 수영장 선베드에 늘어져 있다가 오후엔 오락실과 바를 들락거린다. 영화는 적당히 게으르고 활기차게 휴가를 즐기는 부녀를 따라가며 세밀한 묘사를 자랑한다. 주목할 것은 사실 그 안에 담긴 시간이 현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튀르키예 여행은 마카레나 댄스가 한창 유행했던 이십 년 전 일, 이제 소피에게만 남은 기억의 조각이다. 영화는 캠코더에 저장된 영상을 순차적으로 재생하듯 과거를 꺼내 놓는다. 동시에 이 모든 이야기가 기억의 재창조라는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어른이 된 소피(실리아 롤슨-홀)에게 재차 찾아오는 환영이 바로 그 단서다.
카메라는 중간중간 밝고 아늑한 튀르키예를 벗어나 섬광등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으로 홀로 이동한다. 조명이 켜지면 어둠과 인파 사이에서 캘럼의 흰 얼굴이 유령처럼 떠오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헤매는 모습은 길을 잃은 아이 같기도 하다.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소피의 기억을 끌어안는다. 캠코더로 녹화한 기록 영상, 아빠와 단둘이 쌓은 경험,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 마주한 환상까지 포괄하여 캘럼을 다시 그린다. 여행지에서 소피가 잠들었을 때나 부녀가 한 공간에 머물지 않을 때, 캘럼은 화면 중앙을 차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대체로 포커스가 맞지 않는 후방에, 빛이 어렴풋하게 스며든 프레임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아빠라는 역할에서 이탈한 캘럼, 그건 소피가 상상해서 그려야 할 부분이라서다. 이야기의 주도권을 넘기듯 카메라는 초점을 은근하게 옮긴다. 캘럼이 소피를 낯선 곳으로 데려갔던 것처럼 영화는 소피를 통해 캘럼의 또 다른 얼굴을 붙잡으려 한다.
캘럼은 누구인가. 여행 내내 캠코더로 딸을 찍으면서도 화면 안으로 들어오라는 딸의 요청에 난감해하는 남자. 주변 사람들은 캘럼과 소피를 종종 남매로 오해한다. 캘럼은 열한 살 아이의 아빠가 되기엔 너무 젊다. 겨우 삼십 대에 진입한 그는 또래와 비교해도 덜 여문 얼굴을 가졌다. 딸이 잠든 밤, 그는 발코니로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혹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결하듯 허공에 팔다리를 뻗으며 허우적대고, 그 와중에 소피를 확인하느라 연신 등 뒤를 돌아본다. 카메라에 포착된 캘럼의 움직임은 불안하다. 잘생긴 외모에 건장한 체격이지만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해낼 만큼 강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위태롭다. 고향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고정된 직업 없이 부유한다. 거듭 태극권 동작을 취하고 호흡에 집중하지만, 마음속 풍랑을 잠재워 평온에 도달하는 데는 끝내 실패한다. 불완전한 수련, 입안에 털어넣는 술, 대답을 회피하는 태도. 그렇게 캘럼의 연약한 모습이 곳곳에 불길한 징조처럼 자리한다.
<애프터썬>은 기억과 감각이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안다. 파편이 된 기억을 그러모으며 한 사람을 복원해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몸을 일종의 공간처럼 활용한다. 소피의 몸은 비밀 상자 여러 개를 보관해둔 다락방이자 캘럼의 복잡다단한 내면으로 들어가는 복도다. 볕에 그은 피부는 따갑고 어깨와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는 아빠의 손길은 부드럽다. 소피는 이러한 촉각을 통해 물놀이를 재촉하던 아빠가 얼마나 유쾌했는지, 딸에게 어떻게 관심을 표현했는지 되새긴다. 신체를 접촉하면서 캘럼의 체온과 체취를 인식하고, 몸에 엉겨 붙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중에는 부정적이거나 모호한 감정도 있다. 소피는 몸을 매개로 타인과의 거리를 분별하기 시작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아빠가 제 몸을 만지는 것이 때때로 불편한 동시에, 다른 이의 몸과 성적 접촉에 호기심을 갖는다. 캘럼은 별안간 호신술을 가르쳐주겠다며 소피의 양팔을 힘주어 잡는다. 그가 “반드시 배워야 해”라면서 고집을 부릴 때 소피는 주눅 든 것처럼 보인다. 아빠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왠지 떠날 사람처럼 군다고 느껴서다. 캘럼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듯 초조하게 소피 주위를 맴돈다.
<애프터썬>이 감정을 축적하고 증폭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영화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캘럼은 더는 소피 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죽음을 언급하는 장면은 없지만 영화 전체가 그것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여행 마지막 밤, 캘럼은 소피를 내버려 두고 홀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그 다음날 부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별일 아니라며 넘어가려는 딸에게 캘럼은 힘주어 사과한다. “아니야, 중요해. 미안해.” 그는 줄곧 그랬을 것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용서를 구할지언정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리 다른 사람이 됐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영화 군데군데 웅크리고 있는 불길한 예감은 죽음이나 사고 같은 확정적 불행이 아니라, 상실과 애도를 짐작하게 하는 공백으로 남는다. 소피는 캘럼이 다쳤다는 사실을 눈치챌 만큼 자랐지만, 정확히 그의 어느 부분이 손상됐는지 파악하기엔 어리다. 다만, 소피는 캘럼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소피 역시 그러하다. 사랑은 누군가에 관해 말하고 말하지 않을 자격을 부여하며, 소피는 어느 순간 입을 다문 채 캘럼의 슬픔과 우울 곁에 잠시 머무른다. 영화는 그렇게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익숙한 것으로 채워 넣는 대신 빈칸으로 남겨둔다. 물결처럼 출렁이고 햇빛처럼 반짝이는 빈칸이다. 캘럼을 미지에 놓고 바라보기로 한 선택이 너무나 애틋해서, 부녀의 두 번째 여행은 영영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되는지도 모른다. <애프터썬>은 감독 샬롯 웰스의 데뷔작으로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폴 메스칼과 프랭키 코리오의 느슨하리만치 자유로운 호흡이 돋보이며, 엔딩에 삽입한 퀸의 ‘Under pressure’(언더 프레셔)를 포함해 1980~90년대를 상기시키는 음악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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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