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요 내용이 포함된 글입니다.
'장래희망'은 보편적으로 갖고 싶은 직업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며, 기본적으로 낭만을 내포한다. 가능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거나 멋져 보이는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꼽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나는 회사원이 될래요'라고 하는 아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회사원'의 이미지는 유사하다. 매일 흰 셔츠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빌딩 숲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뱉어지는 사람들은 재미없고, 심심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 같다. 또 그보다는 록스타, 메이저 리거, 할리우드 배우 같은 화려한 삶이 '희망'이라는 단어에 더 적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릴 적 품었던 다양한 장래희망들은 대개 끝까지 살아남지 못한다. '꿈의 직업'에 허락된 자리가 몇 개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건 꿈을 꾸기 시작한 시기보다 조금 나중이다. '회사원의 평범한 삶'이란 것을 얻고 영위하는 데 드는 노력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평범한 삶의 대단함을 알게 될 즈음엔 화려한 삶 이면의 고충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장래희망이란 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그 실체를 알고 난 후의 좌절을 동반한다. 그건 장래희망으로서의 직업이라는 이미지의 배신이다. '장래희망'이 '갖고 싶은 직업'의 다른 말인 사회에서는 실체보다 이미지가 중요하다. 노동의 의미보다는 이를 통해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경제적 자유를 부각하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형태든 직업을 얻은 후의 삶은 매우 관성적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무엇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인생관을 이식당한 직업인들은 자연스럽게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정해진 듯한 수순을 밟는다. 이 비슷해진 삶들을 구별하는 건 '소비'다. 더 나은 집, 차, 가구, 의복과 잡화는 직업을 얻은 후 또 다른 삶의 목표가 된다. 그리고 조장 당한 소비에는 정신적 공허함이 따라 붙는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은 보험회사의 자동차 리콜 심사관이다. 이는 차량 자체의 결함 탓에 벌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전국의 사고를 분석해서 리콜 여부를 결정하는 직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참혹한 사고 현장을 보는 동안 그는 불면증에 걸렸다. 유일한 낙은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한 이케아 가구들로 도심의 48평 짜리 아파트를 채우는 것. 흔한 공산품에 조립가구지만 이케아로 가득 찬 집을 보면 멋진 소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6개월 째 낫지 않는 그의 불면증을 거짓말처럼 치료한 건 각종 심리 상담 모임이다. 그는 말기 암 환자나 기생충 감염자 등 건강 상의 문제로 삶의 일부를 상실한 이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감정적 치유를 얻는 모임을 찾아 다닌다. 그가 환자 행세를 한 적은 없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참가자들은 알아서 그를 위로했다. 그는 자신보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획득한 안도감과 거짓으로 얻어낸 위로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모든 희망을 버리자 자유가 찾아왔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과 관계 없는 환자들의 모임을 찾아다니는 여자 말라 싱어(헬레나 본햄 카터)를 발견한 순간부터 다시 불면증을 앓게 된다. 결국 말라와 요일별로 반반씩 참석 모임을 나눠 마주치지 않기로 합의한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른 출장길에서 비누 장사를 한다는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와 만난다. 타일러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였다. 잘생긴 외모와 자유로워 보이는 라이프 스타일, 마초적인 성격까지 그랬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일회용 친구' 중에서도 그의 기억에 가장 남은 인물이었다.
얼마 후, 그는 출장 탓에 부재중이던 아파트가 폭발해 전소되는 사고를 맞게 된다. 허탈함에 사로잡힌 그가 연락한 건 말라, 그리고 타일러였다. 타일러는 그에게 술을 사 주고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된다고 말하며, 집에 가기 전에 이유 없이 자신을 때려 달라고 요구한다. 처음엔 그럴 수 없다고 버티던 그는 결국 타일러에게 주먹을 날리고, 한참 치고 받은 후엔 근원 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도심의 문명과는 동떨어진 듯한 타일러의 집에서, 그는 한 달 사이 TV 생각도 나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진다. 두 사람은 아무런 이유 없이 1대1로 서로를 때리는 '파이트 클럽'을 세우는데, 수많은 남자들이 이리로 몰려든다. 그와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쓰레기를 사고 혐오하는 직장에 다녀야만 하는 '영적 대공황'에 시달리던 남자들이다.
파이트 클럽이 점점 커지자 추종자들이 생겼고, 타일러는 이들에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일부러 지라'는 등의 숙제를 낸다. 추종자들이 기묘한 지시를 두 말 없이 따르며 정신적 만족을 얻는 과정에서, 파이트 클럽은 자본주의와 소비 문화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테러집단으로 변한다. 이들은 "직업과 예금 잔고와 차가 당신을 정의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진리가 되길 바라며 금융과 관련한 건물들을 모두 폭파할 계획을 세운다.
파이트 클럽의 변질에 그와 타일러는 반목하고, 타일러는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그는 타일러의 테러를 막으러 다닐 때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을 쫓는 듯한 허무함과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다. 결국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실명이 언급되지 않았던 '그'는 타일러가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인격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그는 타일러 더든이었고 타일러 더든은 그였다. 환자들의 모임에서 얕은 치유를 얻으려 했던 그의 인격이 자기 파괴에 천착하는 타일러의 인격에게 제압당한 것이었다.
타일러의 반달리즘은 자본주의에 대한 항거 보다는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어 느끼는 불만에 기인한 폭력이었다. 채무 기록을 없애기 위해 신용카드 회사를 파괴하는 행위가 경제 평등과 연결될 리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진 이미지들을 소비하고 체화해야 평범을 획득할 수 있는 세상에서, 많은 현대인이 타일러 같은 인격을 품고 살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동은 생계 유지라는 제1목적 만큼 소비를 통한 자기 표현을 위해 강제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리셋을 위한 파괴가 혁명이 아닌 어리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건 소비 사회가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고도화한 탓이다.
상술했던 이유로 현대인에게는 소비자로서의 자아가 가장 크다. 멀리 잡아도 이번 세기 안에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누구나 가슴 속에 타일러 하나 쯤은 품고 사는, 소외가 만연한 현대에서 내가 온전히 나의 주인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불매'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비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과잉 소비를 없애고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건 가장 온건하고 효과 좋은 비폭력 운동이다. 성형외과에서 지방 흡입 후 버려진 폐지방들을 훔쳐다가 비누를 만들어 백화점에 납품하는, <파이트 클럽>의 음침한 소비 사회 조롱이나 그저 때려 부수고 협박하는 직접적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영화는 '모든 걸 잃어야', 혹은 '밑바닥을 찍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하며 자기 귓방망이를 스스로 갈긴다. 그러나 이게 소외를 극복하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 소비주의에 대한 소극적 불매는 폭력 없는 선순환의 첫 걸음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라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