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회 베를린 영화제가 오는 2월 16일 개막을 앞두고 주요 초청작들을 공개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비롯한 라두 주데 감독, 두기봉 감독, 카를라 시몬 감독, 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 등 심사위원진들이 선별하게 될 경쟁부문 후보작들 등 올해의 화제작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
쉬 컴 투 미
She Came to Me
레베카 밀러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은 레베카 밀러의 <쉬 컴 투 미>다. 아버지인 극작가 아서 밀러에 관한 다큐멘터리 <아서 밀러: 라이터>(2017) 이후 6년 만의 신작. 새 오페라 공개를 앞둔 작곡가 스티븐(피터 딩클리지)이 슬럼프를 맞고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고, 아내 파트리샤(앤 해서웨이)의 명령을 받아 영감을 찾아 떠난다. 2017년 스티브 카렐, 에이미 슈머, 니콜 키드먼의 캐스팅으로 제작될 계획이었으나 오랫동안 미뤄져 피터 딩클리지, 앤 해서웨이, 메리사 토메이 주연으로 완성됐다. 웨스 앤더슨, 기예르모 델 토로, 그레타 거윅 등의 총애를 받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음악을 맡았다.
북두칠성
Le grand chariot
필립 가렐
프랑스의 거장 필립 가렐은 주로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가 러브콜을 보냈는데, <눈물의 소금>(2020)에 이어 신작 <북두칠성>도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댓 썸머>(2011) 이후 흑백 이미지를 고집하다가 오랜만에 컬러로 촬영한 <북두칠성>은 연인이 아닌 가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유랑 인형 극단을 운영하는 가족, 아버지가 공연 중에 숨을 거두고 남은 이들이 생전에 그가 남긴 유산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2005년 작 <평범한 연인들>에 아들 루이스 가렐을 기용한 걸 시작으로 꾸준히 루이스와 딸 에스더 가렐을 배우로 내세운 필립 가렐은, 그들의 동생 레나 가렐까지 캐스팅 해 아버지를 떠나보낸 <북두칠성>의 삼남매를 그렸다. 필립 가렐은 세 남매가 각자 38세, 30세, 22세가 된 걸 맞아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계획했다고.
레드 스카이
Roter Himmel
크리스티안 페촐트
독일을 대표하는 영화제인 만큼 경쟁부문에서 독일 감독들의 신작이 여럿 눈에 띈다. 가장 뜨거운 작품은 단연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새 영화 <레드 스카이>. 페촐트의 영화는 2005년 작 <유령>(2005)부터 (<피닉스>를 제외한) 모든 장편이 베를린 경쟁부문을 통해 처음 소개된 바 있다. <피닉스>(2014) <트랜짓>(2018) <운디네>(2020) 등 근작들이 대부분 사랑으로 이뤄진 두 남녀 사이의 이야기였던 데 반해, <레드 스카이>의 주인공은 무더운 한여름에 발트해로 여행을 떠난 네 친구다. 잊지 못할 휴가를 기대하고 떠났지만, 그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니나 호스에 이어 <트랜짓>부터 페촐트와 작업을 시작하고 <운디네>로 베를린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파울라 베어가 다시 한번 주연을 맡았다. 한국에 꾸준히 페촐트의 작품을 소개해 온 엠엔엠인터내셔널을 통해 수입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스
Past Lives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스> 주연을 맡은 배우 그레타 리 & 유태오
한국계 캐나다 감독 셀린 송의 장편 데뷔작. 초등학교 동창인 노라(그레타 리)와 해성(유태오)은 서로 사랑하지만 노라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헤어지게 된다. 12년 후 뉴욕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노라는 해성과 SNS를 통해 연락이 닿지만, 그들이 만나기까지는 다시 또 오랜 시간이 흐른다. 미국의 A24와 킬러 필름스, 한국의 CJ ENM이 공동제작 한 <패스트 라이브>는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데 이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극작가로 경력을 쌓고 첫 영화 연출작 <패스트 라이브스>를 발표해 선댄스에서 많은 호평을 받은 셀린 송은 <넘버 3>(1997)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주인공 노라처럼 셀린 송 역시 실제로 초등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뉴욕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스즈메의 문단속
すずめの戸締
신카이 마코토
최근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자국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신카이 마코토의 새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또한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경쟁부문에 초청된 건 2002년 황금곰상을 수상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21년 만이다. 큐슈의 한적한 마을에 사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하는 소타를 만나게 되고, 그를 도와 폐허에서 발견하는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하는 걸 돕게 된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화려한 그래픽으로 구현한 일본 곳곳의 재난 이미지들이 아주 사실적이어서 호평을 받는 한편 대중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는 논란도 잇따랐다. 오는 3월 8일 한국 개봉 예정.
물안에서
홍상수
홍상수와 베를린 영화제의 연은 꽤나 깊다. 2008년 <밤과 낮>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들이 경쟁을 비롯 다양한 부문에 초청됐고, 특히 최근 3년 사이 <도망친 여자>(2020) <인트로덕션>(2021) <소설가의 영화>(2022)가 연달아 경쟁부문에 초청돼 모두 수상했다. 이번 신작 <물안에서>는 경쟁 부문이 아닌, 혁신적인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인카운터스’ 부문에 초청됐다. 홍상수 영화 중 가장 짧은 러닝타임인 61분의 <물안에서>는 배우를 지망하던 남자가 자신의 창조성을 확인하겠다며 같은 학교를 다닌 두 사람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어떤 여자를 만나는 과정을 담았다. 홍상수 근작에 자주 출연해 온 신석호와 하성국 그리고 이번에 처음 홍상수와 작업하는 배우 김승윤이 주연을 맡았고, ‘제작실장’의 직함을 단 김민희 역시 작은 역할로 카메라 앞에 섰다.
파사쥬
Passages
아이라 잭스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된 <파사쥬> 역시 선댄스에서 처음 선보인 후 베를린에 상영되는 작품이다. 15년의 세월을 함께 한 두 남성 커플 사이에 한 여자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관계를 그린다. 각자 다른 국적의 배우진이 흥미롭다. <트랜짓> <거대한 자유>(2021) 등 근래 빛나는 독일영화들의 얼굴이었던 프란츠 로고스키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와 ’007’ 시리즈 등의 영국배우 벤 위쇼가 토마스와 마틴 커플을, 프랑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로 단숨에 전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두 남자에게 스며든 여자 아가타를 연기했다. 폴 버호벤, 클레버 멘돈사 필류, 나다브 라피드 등 명장들의 작품을 제작한 사이드 벤 사이드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