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궁금증보다 묘하게 싸늘하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끔찍한 순간을 밀도 높은 스릴러로 표현한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2월 17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국내에서도 소개된 소설 원작의 동명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애초 극장 개봉 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코로나의 여파와 여러 가지 이유로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하게 됐다.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 바로 연상되듯이 평범한 회사원이 스마트폰을 분실하고 난 뒤 기분 나쁜 일들이 벌어지면서 일상이 파괴되고 범죄의 표적이 되는 과정을 스릴 넘치게 그린다. 제목 그대로 단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뿐인데 말이다.
<한공주> <앵커> 등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천우희와 <비상선언> 이후 다시 한번 빌런 역을 맡은 임시완의 출연으로 영화는 큰 기대감을 받아왔다. 여기에 작품마다 씬스틸러급 존재감을 보여주는 김희원의 서포트는 영화의 힘을 더할 예정이다.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세 사람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장르적 매력은 기대에 비하면 많이 약했다. 명색이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긴장감이 부족하고 기다리던 반전은 맥 빠지는 수준으로 다가와 아쉬움을 자아낸다.
그래서일까? 원작을 보지 않은 본 에디터는 속편까지 제작되었다는 일본 영화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원작을 확인해 보니 2018년에 개봉한 동명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결과 한국 버전은 양국 간의 문화 차이로 각색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두 작품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차이가 있을까? 같은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두 영화의 방향은 분명 달랐다. 여러 가지 포인트로 각 버전을 비교하면서 한국판의 장단점을 리뷰로 풀어본다.
일찍 공개된 범인의 정체, 김 빠진 스릴러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원작과 가장 많이 달라진 큰 뼈대를 살펴보자. 각색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져 실망감을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두 작품은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남자친구가 스마트폰을 택시에 두고 내려 범인의 손에 들어가지만, 한국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술자리 후 버스에 놓고 내린다. 얼핏 보면 별다른 점이 없지만 일본 버전은 자신이 아닌 지인의 실수로 인해 범죄의 타깃이 된다는 점에서 더 큰 공포를 자아낸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범인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일본 버전에서는 범인이 후반부까지 밝혀지지 않아 관객의 추리를 유도한다면, 한국 버전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인지 노출하며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범죄자를 일찍 공개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다. 반면 관객들에게 그 이상의 반전과 긴장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자극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실망으로 다가온다. 영화 초반부터 노출된 범인은 오히려 전체적인 긴장감을 빠지게 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 역시 밋밋해서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일본 버전처럼 범인의 정체를 끝까지 궁금하게 했다면 좀 더 아슬아슬한 스릴러가 되지 않았을까?
평면적이지만 현실을 대변하는 캐릭터
줄거리에 소개된 것처럼 두 영화는 등장인물도 다르다. 원작의 주인공은 자살한 룸메이트로 살게 되는 과거를 지닌 인물로 영화 후반부에 이 사연이 밝혀진다. 여기에 범인이 검은 긴 머리의 여성에게 집착하게 되는 서사를 가졌는데, 그 부분이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배경을 관객에게 납득시킨다.
아쉽게도 한국판의 주인공은 영화적 장치를 풍성하게 할 요소가 부족하다. 주인공과 함께 이야기를 끌어가는 빌런 역시 강력한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캐릭터의 사연을 제한적으로 드러내 보는 이와 등장인물의 거리감을 더욱 멀게 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평면적인 캐릭터임에도 천우희와 임시완의 연기는 훌륭했다는 것. 천우희는 주인공 나미의 불안한 심리를 공감 가게 그려냈고, 임시완은 연쇄살인마 우영의 차가운 모습을 효과적으로 연기했다. 일본 버전의 오버 가득한 연기보다 한국 배우들의 극에 녹아든 일상적인 모습이 더 보기 편했다.
여기에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도 돋보였다.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요즘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면서, 두 젊은 캐릭터의 사연으로 취업 문제, 세대 갈등 등 사회적인 문제점도 꼬집는다. 여기에 인간소외, 대인관계 약화 등과 같은 정보화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 역시 놓치지 않는다.
현실적인 공포를 강조한 연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첫 장편 상업영화를 연출한 김태준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원작과는 다른 부분을 강조한다. 일본 버전이 스마트폰을 통한 연쇄살인 범죄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한국 버전은 좀 더 개인적인 측면에 비중을 둔다. 스마트폰 분실로 인해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일상이 위협받는 부분 등을 부각해 좀 더 현실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원작에서 스마트폰은 범인이 주인공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범인의 가장 잔인한 범행도구로 바뀐다. 그런 까닭에 범인이 주인공의 스마트폰을 간단히 복제하여 무방비 상태의 메신저나 SNS를 악용하여 개인의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무너뜨린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최악의 상황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 관객들에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섬뜩함을 계속해서 내보인다.
당신의 스마트폰은 괜찮은가요?
전체적으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원작과 비교하여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더 나은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현대인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기 이야기처럼 쉽게 빠져들 듯하다. 뉴스로 접했던 스마트폰 해킹 같은 일들이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순간은 극중 이야기로만 그치면 좋겠다. 단, 내 스마트폰은 이상한 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쳐다보게 하는 후유증은 영화가 책임지지 않는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 아무 데나 놔둔 휴대폰도 다시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작품은 휴대폰 분실이라는 작은 사건을 통해 현대 사회의 치명적인 사각지대를 경고하는 지도 모르겠다. 제목 그대로 스마트폰을 단지 잃어버렸을 뿐인데 말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