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얼굴이 먼저 익는 배우들이 있다. 보통 배우 경력이 긴 조연급 배우들이 대표적인데, 이 배우는 조금 다르다. 그의 얼굴은 누군가에게 '논란'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 '명작'을 떠올리게 한다. 2월 22일 개봉한 <서치 2>의 주인공 스톰 레이드다.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흔적을 쫓는 준 알렌 역을 맡은 그는 왜 이름보다 얼굴이 유독 깊게 남은 걸까. 그의 출연작을 중심으로 그 경로를 짚어본다.
문제의 시작, <시간의 주름>
먼저 앞서 말한 '논란'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2003년생 이 어린 배우에게 무슨 논란이 있겠느냐마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닌 그의 출연작이 문제였다. 스톰 레이드는 디즈니 실사 영화에 캐스팅되며 처음으로 블록버스터급 상업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시간의 주름>은 매들린 렝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시간의 틈으로 사라진 아빠를 찾아 나선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스톰 레이드가 그 소녀 멕 머리 역으로 캐스팅됐다.
소설 「시간의 주름」은 1963년 뉴베리상을 수상하고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인기와 평가 모두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그런 소설이 영화화되니, 그것도 디즈니라는 믿음직한 회사에서 제작하니 팬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그 기대감이 불만의 목소리로 변한 건 캐스팅 발표였다. '디즈니에서 만드는 SF 판타지'로서 화사한 이미지를 상상했을 사람들은 오프라 윈프리, 민디 케일링, 스톰 레이드로 이어진 출연진에 당황했다. 논란이 더욱 짙어진 건 멕 머리(스톰 레이드)의 아버지 알렉스 머리는 백인 크리스 파인이 내정되면서부터였다. 흑인 아이를 캐스팅하고 굳이 백인 배우를 아버지로 캐스팅할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물론 어머니 케이트 머리는 흑인 배우 구구 음바타로가 맡았다).
이런 연유로 <시간의 주름>은 개봉 전부터 꾸준히 비판을 받았고, 완성한 작품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디즈니의 미운 손가락이 됐다. 오죽하면 한국에서조차 개봉하지 못하고 VOD 시장으로 직행했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바 두버네이와 제작진에게 향했지, 각 배우들에게 향하진 않았다. 그러나 스톰 레이드 입장에선 상업 영화 주연 자리를 꿰찬 만큼 훌륭하게 소화하고 싶었을 텐데, 영화 외적 논란으로 얼굴을 알리게 된 안 좋은 사례가 되고 말았다.
성실하게 착실하게 쌓은 인지도
<시간의 주름>으로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맞지만, 그래도 영화를 꾸준히 챙겨 보는 사람에겐 그의 얼굴이 단순히 그것 때문에 익은 건 아닐 것이다. 스톰 레이드는 <노예 12년> 에밀리로 눈도장을 찍은 후 배우 활동을 쉬지 않고 이어갔다. 국내에도 개봉작, VOD 영화 등에서 주조연급으로 얼굴을 비춘 영화가 다수 있다.
가장 최근 작품을 살펴보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있다. 여기선 블러드스포트/로버트 듀브와(이드리스 엘바)의 딸 타일라 듀브와로 출연했다. 스마트워치를 훔친 것이 아니라 훔치다 걸린 걸로 타박하는 아빠에게 "엿 먹어요!"를 연발하다가 "당신 같은 사람이 내 아빠라는 게 제일 부끄러워요!"하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재판일이 다가오고 있고, 아만다 윌러에게 아빠라면 도와줄 거라고 들었다며 토로한다. 영화 속 출연은 이것으로 끝인데 블러드스포트의 동기이자 이드리스 엘바와의 'F-워드' 대결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장면을 남겼다.
다른 작품으로는 <인비저블맨>이 있다. 스톰 레이드는 경찰관 제임스(알디스 호지)의 딸 시드니를 연기한다. 주인공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가 안전을 위해 제임스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여럿 위험한 상황에 휩싸이게 된다. 세실리아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명인간에게 감시당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는 무고한 피해자 중 하나. 엘리자베스 모스의 열연에 묻혀서 그렇지, 스톰 레이드 또한 보이지 않는 존재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들에 피폐해지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드라마 <유포리아>에도 출연했는데, 루 베넷(젠데이아 콜먼)의 동생 지아 베넷이다. 어린 나이에 마약에 중독되면서 사고를 치는 언니와 달리 그래도 하이틴 영화에서 흔히 볼법한 평범한 10대 소녀이다. 언니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질식할 법한 장면을 목격한 게 평범한 일은 아니지만… 루 베넷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라 작중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엄마 레슬리(니카 킹)와 언니 루의 연결고리로 드라마 분위기를 환기하곤 한다.
2023년 <서치 2>와 <라스트 오브 어스>
<서치>가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고 시퀄 제작을 발표했을 때, 누가 존 조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서치>는 노트북과 인터넷을 통한 수사극으로 주변 인물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어 영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의 존재감이 꽤 중요하기 때문. 그 자리는 스톰 레이드에게 돌아갔다. 영화 연출을 맡은 니콜라스 D. 존슨과 윌 메릭은 존 조처럼 흡입력 있는 연기를 펼칠 젊은 배우로 스톰 레이드를 떠올렸다. 때마침 <인비저블맨>이 개봉했고, 두 사람은 그 영화를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 스톰 레이드 또한 <서치 2>에 관심을 보이면서 두 감독의 희망대로 주인공 준 역은 스톰 레이드가 맡게 됐다.
한국은 더 나중이 되겠지만, 미국 현지에선 스톰 레이드의 또 다른 캐릭터를 곧바로 출격 준비 중이다. 동명의 게임 원작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스톰 레이드가 라일리를 연기하기 때문. 라일리는 원작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DLC '레프트 비하인드'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엘리의 절친한 친구이다. 원작 게임에서 엘리와 라일리가 함께하는 순간은 작품 내내 거칠게 '어른인 척' 하는 엘리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장면이라서 이번 드라마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 듯하다. 벨라 램지와 스톰 레이드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사뭇 궁금하다.
두 작품 이후 스톰 레이드를 만날 수 있는 영화는 <더 넌 2>이다. 2018년 영화 <더 넌>의 속편으로 현재까지 어떤 내용이 그려질지 밝혀지지 않았다. 스톰 레이드가 맡은 배역도 미공개. 전작처럼 아이린 수녀는 타이사 파미가가 맡고, 연출은 코린 하디 대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연출한 마이클 차베즈가 한다. <인비저블맨>에 이어 보여줄 스톰 레이드의 공포 연기를 기대할 수 있겠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