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부터 25일(현지시간 기준)까지 열흘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올해 베를린에서는 작년에 이어 작품을 선보이는 홍상수 감독의 <물안에서>를 비롯해 한국 영화 총 4편이 상영되었다. 상영작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복순>(변성현), CJ와 A24가 공동제작한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 그리고 장편 데뷔작으로 베를린 포럼섹션에 초청은 받은 유형준 감독의 독립영화, <우리와 상관없이>를 포함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걸린 <우리와 상관없이> 포스터

그중 <우리와 상관없이>는 단연 눈에 띄는 영화다. 다른 영화들처럼 스타가 나온 영화도 아니고 연출자 또한 첫 장편으로 데뷔한 신인 감독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가볍지 않은 대사들과 설정, 그리고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로 베를린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영화는 지난 몇 년간 독립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고 있는 곽민규 배우의 참여로도 눈에 띈다. 베를린 현지에서 영화제에 방문 중인 곽민규 배우를 만나 영화제와 작품,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한 그의 다양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국제영화제에 처음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처음으로 베를린에 온 소감은?

처음이지만 매우 행복합니다. 예전에 <이장>(정승오, 2020)이라는 작품으로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촬영이 있어서 못왔었거든요. 정말 아쉬웠었는데… 영화과 학생 때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국제영화제는 국내 영화제에 갈 때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특히 관객들 반응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한데.

일단 해외 영화제에 간다고 하면 소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면 늘 설레고 궁금하죠. 해외 촬영은 국내 촬영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제가 독립영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 특히 독일 같은 경우 독일 로컬 영화는 어떤 것을 영화에 담아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여기 와서 배지(영화인에게 주는 영화제 신분증)를 받으니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관객 입장으로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여기 관객들은 어떤지 배우의 입장에서도 관찰을 했어요. 확실히 영화제 관객들이라 그런지 잘 웃어주고 굉장히 능동적인 것 같았어요. 질문의 수준도 매우 높았고요.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섹션 초청, <우리와 상관없이>,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린에서 어떤 영화들을 봤나요?

첫 작품으로 <She came to me>(이번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레베카 밀러, 2022)를 관람했는데 배우들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 특히 주연을 맡았던 마리사 토메이와 피터 딘클리지의 조합이요.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들도 챙겨봤어요. 홍상수 감독 영화는 날짜를 못 맞춰서 놓쳤지만 <길복순>이나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행히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작업한 영화와는 장르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굉장히 다른 영화라 아주 흥미로웠고,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느꼈을 정도로 그 애정이 느껴졌어요.

평소에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제가 독일에 와 있어서 그런지 정말 좋아했던 독일 영화, <토니 에드만>(마렌 아데, 2017)이 생각나네요. 일반적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그리는 듯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접근이 너무나도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제시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사실 이 영화 러닝타임이 길어요. 거의 3시간 가까이 되는데 영화의 힘이 어마어마해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뻔한 가르침(?)이 아니에요. 인물과 에피소드가 매우 독특하고 입체적으로 표현이 되죠. 좀 충격적인 설정도 있고요. 특히 아버지 캐릭터는 제가 추구하고 싶을 정도로 신선한 설정이었어요.

이번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중 기억에 남거나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나요?

독일 젊은이들이요. 확실히 문화가 다른 것 같았어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매우 진보적이고요.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젠더리스(Genderless)'를 추구하는 게 멋있었어요. 사회가 정의한 젠더롤을 거부하는 거죠. 남자가 (본인의 성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치마를 입고 다닌다든지,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닌다든지. 처음 봤을 때는 놀라웠는데 자꾸 보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환경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도 제게는 놀라웠던 지점이에요. 도시 어디를 가도 플라스틱과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요. 전반적으로 사회와 인간이 직면해야 할 문제와 이슈에 있어서 이곳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와 상관없이>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 중인 배우, 곽민규

늘 작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곽민규의 작년 한 해를 정의한다면?

일단 성공적으로 드라마 데뷔를 한 해예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작품인데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올라갔다고 들었어요. 제게는 매우 큰 사건이죠. 그리고 새로운 둥지를 만났고요(곽민규는 2022년 11월에 프레인TPC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조력자를 만났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해였어요. 물론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독립영화를 계속하겠지만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처음으로 가져본 해이기도 하고요.

현재 연기 10년 차인 배우로서의 곽민규는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지금이 변곡점인 것 같아요. 참여하는 작품의 스케일이 커졌죠. 그럼에도 독립영화에서 얻고 배웠던 것들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그게 굉장한 자양분이거든요.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야겠다는 용기가 생기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이제는 뭐든지 좀 과감히 해보고 싶어요. 현재가 나만의 우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터닝포인트인 것만큼은 확실해요.

이번에 베를린에 오게 한 영화, <우리와 상관없이>는 어떤 영화인지.

2021년에 1부를 촬영했고요, 그다음 6개월 후에 2부를 찍었어요. 총 5회차로 찍었던 초저예산 영화예요. 감독에게는 첫 장편 데뷔작이고요. 겉으로 봤을 때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안의 관계도를 묘사하는 우화 같은 영화인 것 같아요.

인터뷰 질문에 답변 중인 곽민규 배우

영화를 연출한 유형준 감독과는 어떤 인연이었나요?

'인디포럼'(국내 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 그때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에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서 다시 만났고,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영화에서는 무슨 역할을 맡았나요?

1인 3역이에요. 다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정선'이라는 역할과 화령의 아들, 화령의 딸의 남자친구로 등장을 하죠.

이번 영화에서의 연기 접근은 어땠는지.

사실 캐릭터를 해석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 경우엔 철저히 감독의 A.I.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게 감독이 원한 방향이기도 했고요. 예컨대 대사가 나오면 단 한 마디도 애드립이나 변주를 허락하지 않는. 그래서 이번엔 감독님의 주문대로 100% 임했어요.

베를린에서의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제 영화를 보고 누군가 웃어주면 가장 행복한데 여기서는 관객들이 잘 웃어주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좋았어요. 관객들의 질문들도 꽤 섬세하고 예민한 것들이라 감탄하기도 했고요.

베를린 영화제에서의 곽민규

앞으로 또 다른 영화제를 간다면 어느 영화제에 가보고 싶으세요?

기회가 된다면 선댄스 영화제에 가보고 싶어요. 신선한 작품을 많이 뽑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베를린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제3세계 영화들도 꽤 많고요. 전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상관없이>의 배우로서 나의 새로운 얼굴을 베를린에서 재발견한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죠. 그런 일이 선댄스에서도 일어나길 바라요.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요.

사실 제가 출연한 영화, <컨버세이션>(김덕중, 2022)이 현재 개봉 중이거든요. 출연배우들과 원래는 영화 홍보를 했어야 했는데 제가 베를린에 오게 되는 바람에 참여를 못하고 있죠.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 그 영화의 지방 홍보 투어에 투입이 될 것 같아요. 제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고 홍보도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작년에 제가 최창환 감독과 작업한 <수학영재, 형주>라는 작품이 있어요.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고요, 그리곤 늘 그렇듯 차기작을 위해서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야겠죠!(웃음) 현장에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거든요.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이번에 해외 영화제 나오면서 느끼게 된 건데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정말 신나는 일인데 아무래도 영어가 부족하다보니 한계를 느낀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돌아가면 영어 공부도 하고 일기도 좀 쓰고(웃음), 새로운 운동도 좀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여기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들이 리프레시된 것 같아요. 좋은 상상을 얻어 가는 것 같아요. 돌아가면 이것들을 좋은 것들로 치환해서 사용해야겠죠.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