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만드는 게 뭘까요? 한 편의 영화를 '영화'라는 매체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을 겁니다. 누구는 스타라고 답할 수도 있고 누구는 카메라, 혹은 카메라의 사각 프레임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편집이야말로 영화의 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을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취사선택해서 촬영한 뒤에 그것을 원하는 순서대로 재구성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방법의 기본인데 그 중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지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아무튼 영화를 만들 때 필요한 구성요소 중에서 편집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있다면 이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플래시백'입니다.
플래시백의 사전적 정의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혹은 그 기법'을 이야기하는 용어입니다. 음, 무슨 뜻인지 쉽게 알 것 같다고요? 우리는 영화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하면 시간대가 다른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를 봅니다. 심지어 어떤 배우들은 한 편의 영화에서 분장만 약간 손을 본 뒤에 어린 시절과 어른 시절을 동시에 연기하기도 하지요.
그럼 영화를 보다가 과거 회상 장면이 등장하면 우린 무조건 "아, 플래시백이다!"라고 외쳐도 되는 것일까? 제가 이 용어에 대해서 다시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라라랜드> 때문입니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엔딩 장면의 플래시백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요.
스포일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라라랜드>의 엔딩은 플래시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회상을 뜻하는 플래시백의 반대말인 미래의 일을 먼저 보여주는 '플래시 포워드'도 아닙니다. 씨네21의 송경원 기자는 "상상의 플래시백"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왜 그 장면이 플래시백이 아닌지는 플래시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이유가 밝혀질 겁니다.
'플롯'을 먼저 알아야
플래시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플롯'입니다. 이 단어도 익숙합니다. 플롯이란 작품 안에서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스토리'가 사건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 자체를 이야기한다면 플롯은 이와는 조금 다르지요.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을 먼저 보여주면서 과거의 진실을 나중에 보여주는 영화도 있을 수 있고, 앞서 이야기한 플래시백처럼 영화가 진행되다가 중간에 갑자기 과거의 회상을 통해 전환이 이뤄질 때도 있을 것이고요. 이런 '구성'을 우리는 플롯이라고 합니다. 플래시백은 바로 이런 플롯의 특정 기법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앞서 말했던 '플래시 포워드' 역시 플롯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진 개념이죠.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제 간단하게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영화 속 플래시백을 예로 들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과거를 보여줄 때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플래시백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스토리를 다룬 매체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데요. 영화 역사에서 플래시백은 일종의 연출 기법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과거를 회상한다 하더라도 그냥 주인공이 하늘을 보며 "그땐 그랬지"라고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화면 전환을 통해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할지, 혹은 언제 어떤 순간에 과거로 이동할지를 결정하고 또 표현하는 모든 것이 플래시백을 활용한 연출 기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영화 역사에서 플래시백을 연출 기법 중 하나로 처음 활용한 사례는 루벤 마물리안 감독의 무성 영화 <시티 스트리트(City Streets)>(1931)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밖에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로라>,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배상>,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 등을 플래시백이 훌륭하게 쓰인 작품의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플래시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은 예전에 맥거핀 이야기를 하면서 예로 든 영화이기도 하죠.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은 죽기 전에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 때 과연 로즈버드가 무엇일까를 사람들은 추측하게 됩니다. 로즈버드의 정체를 되짚어보기 위한 회상이 바로 '플래시백'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어찌 보면 '구성'보다 '회상' 자체에 중점을 두고 만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를테면 영화 전체가 회상, 즉 플래시백으로 이뤄진 영화들의 경우를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겠네요. 대표적으로 <가위손>, <포레스트 검프>, <타이타닉>, <유주얼 서스펙트>, <노트북>,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작품이 플래시백을 재미있게 활용한 사례입니다. 그리고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의 플래시백으로 시작하는 픽사 애니메이션 <업>의 감동적인 첫 장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최근 한국영화를 예를 들어보면 <가려진 시간>이나 이제 막 개봉한 따끈따끈한 신작 <더 킹> 역시 플래시백을 재미있게 활용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와 달리, 영화 중간중간 복잡하게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요.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시민 케인>이 보여줬던 플래시백과는 조금 다른 '구성' 방식을 따릅니다. 이 영화는 '플래시백'이라는 구성을 통해서 현재의 영화 속 정치 상황과 주인공들의 복잡한 심리를 설명하지요. 관객들은 시간대가 다른 장면의 전환을 통해서 인물들이 저런 과거를 겪었고, 지금의 모습에 반영된 것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과거를 모르고 보는 것과 느낌이 다르겠죠? 사건의 구성만으로도 보는 관객들에게 의미를 달리 전달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활용한 예가 <히로시마 내 사랑>입니다. 조금 더 쉬운 예로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 같은 경우도 이미 '페이스북'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탄생이 이뤄진 지금에 와서 그 기원을 돌이켜보는 구성의 영화입니다.
플래시백을 이야기할 때 이 영화는 특히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역시 인물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적 기법으로 자리잡은 플래시백이라는 구성을 통해서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기법 자체가 어떤 감동의 요소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텐데요. 플래시백이 궁금하다 여기는 관객이 있다면 꼭 추천합니다. 도적, 무사 부부, 나뭇꾼 등 등장인물의 플래시백으로 영화가 이뤄지는데 누구의 회상이 진짜인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곧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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