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이라 불릴만하다

완벽이란 뭘까

한국 무협만화 <열혈강호>는 무협 장르답게 고수들의 싸움에서 내공의 크기가 전투의 기본으로 그려진다. 그 근본은 결국 승패를 결정한다. 그러면 내공을 단련한 자만이 승리를 거머쥘까? <열혈강호>의 세계관 남쪽에 위치한 남만의 산적들은 내공을 따로 단련하지 않는다. 외공, 즉 외부의 커다란 근육과 체술에 의존해 전투한다. 그들과 맞붙게 된 여주인공 담화린은 자신의 내공이 더 강하니 손쉽게 이기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그녀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스승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외공이 그 정도로 발달되면 자연스레 내공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운용할 줄 모를 뿐, 내공이 없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고수가 되기 위한 길은 내공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내공조차도 그것을 발휘할 외공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되려 자멸하기도 한다. 강함이라는 것의 정의에 한 가지 답만 있는 건 아닌 것이다.

중3 때 담화린을 보고 반했다네.


예측과 엉뚱한 결과

<피지컬 100>에서 육체로 무언가를 증명할 참가자들 중에는 유명인들도 있었다. 격투가 추성훈, 유투브에서 유명한 피트니스 계열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 심지어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윤성빈 등등 그 수준이 상당했다. 특히나 1:1의 상황에서 절대로 질 것 같지 않은 레슬링 헤비급 국가대표 출신 남경진 선수나 육체의 모든 능력치에서 상위에 랭크된 스켈레톤 황제 윤성빈 선수는 처음부터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남경진 선수는 두 번째 퀘스트였던 모래 나르기 미션에서 장은실의 팀에게 졌다. 남경진의 팀은 힘과 파워가 넘쳐나고, 근지구력이나 정신력 면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 멤버의 구성이었으나 팀원들의 밸런스라는 시너지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약체라 꼽힌 팀에게 패했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완력이 강한 팀(사람)이 결코 제일 강하다는 뜻은 아니구나.

ㅇ.. 약체라고 했잖아..


사실상의 클라이맥스

100kg의 돌을 언덕 위로 밀어올리는 왕복을 끝없이 해야 하는 준결승전 퀘스트 '시지프스의 형벌'에서 맞붙은 4인은 보디빌더 마선호, 격투가 추성훈, 우승후보이자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 그리고 경륜 선수 정해민이었다. 가장 먼저 탈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멤버는 아무래도 최연장자인 추성훈이었다. 그러나 보디빌더였던 마선호가 가장 먼저 탈락했다.

보디빌더는 언뜻 보기엔 강력해 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운동에서 추구하는 것은 최대한의 근비대와 최소한의 체지방량이지, 이렇게 근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 정도 몸을 만드려면 이미 상당한 근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되려 K-1 무대의 3분, UFC의 5분 라운드 시간을 소화하기 위해 근지구력과 정신력을 키운 추성훈이 더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다. 아쉽게도 보디빌딩이 가져가야 할 집중력이란 1분을 넘지 못한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보디빌딩은 육체의 심미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옷을 입을 때 실용이 아니라 멋을 고려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운동 또한 그렇다.(사진 출처=잡포스트)

그리고 우승후보

두 번째로 추성훈이 탈락하고, 이제 윤성빈과 정해민이 맞붙었다. 윤성빈은 시종일관 앞서 나가는 수행능력을 선보였다. 만약 이 경쟁이 돌덩이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팔씨름이었다면 볼 것도 없이 윤종빈이 승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지프스의 형벌 종목은 언덕을 올라야 하고, 여기엔 팔이 아니라 고관절의 유연성과 엉덩이와 햄스트링의 협응이 가장 중요했다. 완력 자체가 좋았던 윤성빈은 팔과 상체 위주로 밀며 우세한 스타트를 보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몸을 써야 하고 신체에서 햄스트링을 가장 가혹하게 사용하는 경륜선수의 특성상 정해민쪽이 좀 더 지혜로운 인체적 호응을 보여줬다. 스켈레톤 종목의 특성상 40~50초가량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썰매를 컨트롤해야 하는 근력과 근지구력 및 순발력을 갖추어야 했기에 윤성빈 선수가 가진 신체적 기량은 엄청났다. 그러나 그 기량과 현재 임하는 종목에 가장 알맞은 대응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윤선수처럼 상체를 세우면 하체의 개입이 비교적 힘들어진다.


모두 각자의 미를 지니고 있다

피지컬 100 1,2화가 스트리밍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인공적' 운동으로 만든 일명 '뻥근육'이 아닌 실전으로 형성된 근육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3대 운동 700~800을 찍는 파워리프터나, 거대한 광배근으로 차렷 자세도 힘든 보디빌더들이 우르르 탈락하는 모습에 비난을 보냈으며 산악구조대원이 절벽에 매달려 인명을 구하며 얻은 근육을 생활, 혹은 실전 근육이라 부르며 치켜세우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나 이는 큰 오해에서 기인한 일방적 생각이다. 산악구조원은 순식간에 큰 힘을 내는 것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매달리거나 산을 올라야 한다. 즉, 순간적인 근력보다는 긴 시간 짐을 짊어지고 움직여야 하는 근지구력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니 오래 매달리기에 당연히 뛰어난 것이다. 자기 영역에서 두드러지려면 필요한 것은 각자 다르다. 만약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 조난자가 무거운 바위에 깔려있는 경우에도 근지구력만 좋은 사람만이 필요할까? 이럴 땐 근력이 강한 파워리프터나 보디빌더가 유리할 것이다. 물론 이들이 낼 수 있는 순간적 힘의 지속시간이라는 것이 10~20초 내외로 짧기 때문에 거기까지 이동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지만 말이다.

남경진 선수는 배우 주걸륜과 닮은 꼴이라 중화권에서 인기 급상승 중이다.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

위 질문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은 '완벽한 피지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을 내놓으며 귀결됐다. 한국인의 특성상 그래서 무엇을 하면 오직 최고의 유일한 피지컬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에 대한 정답을 기대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조물주의 뜻에 위배된다. 물론 우승을 차지한 크로스핏터는 모든 요소에 두루 강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 운동이나 거기에 속한 운동러들이 완벽한 몸을 지녔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남만의 산적들처럼, 각자의 능력은 여러 가지 분파적 능력과 맞닿아 있다. 이것은 모든 것에 유능한 것보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빛날 수 있다면 다른 지류에서 또한 빛날 바탕이 된다는 제작진의 메세지일게다. 아마 그들 또한 완벽한 육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 탄 버스가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멋진 곳에 데려다주는 것처럼 굉장한 순간을 뽑아냈다. 참가자들이 육신과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호흡뿐인 순간을 포착한 것은 분명,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