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유니버스의 2023년 첫 번째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가 공식 예고편을 공개했다. 내부 정비를 새로 하고 제임스 건과 피터 사프란을 새로운 공동 대표로 선임한 워너브러더스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영화이자, 4년 만에 돌아온 <샤잠!> 시리즈의 속편이다.
시리즈의 첫 편인 <샤잠!>이 그리 성공적인 흥행성과(약 3억 6천만 달러)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와 일명 '코믹스 키드'를 겨냥한 요소들 그리고 원작에 비교적 충실했던 스토리라인에 힘입어 북미 흥행은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를 거두었으므로 자연스럽게 2편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아역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햇수가 지날수록 기존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리스크 아닌 리스크가 있었으므로 나름 시급했기도 하다.
솔직히 대단히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DC 유니버스 운영진이 교체되면서 리부트가 결정됐고, 저스티스 리그에서 가장 주축이 되는 캐릭터인 슈퍼맨도 교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웨인 존슨을 기용하며 기대작으로 꼽혔던 (샤잠과 인연이 깊은) <블랙 아담>이 예상만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불안함의 원인 중 하나다.
물론 <샤잠!>은 저스티스 리그와 크게 연관되지 않았고, 빌리 뱃슨의 성장 스토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별개로 동일한 라인업을 가져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불안불안한 상황 속에 <샤잠! 신들의 분노>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샤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년 빌리 뱃슨은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문제아 소년이다. 이번에 배정받은 위탁가정에는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여럿 있고, 양부모 역시 좋은 사람들이지만 빌리 뱃슨은 진짜 부모님을 만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 때문에 쉽사리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방을 같이 쓰는 소아마비 소년 프레디를 위해, 그를 괴롭히는 놈들을 골탕 먹일 수 있을 만큼 정의로운 면모도 갖고 있다.
이런 면모를 알아본 마법사 샤잠은 빌리 뱃슨에게 샤잠의 힘을 주게 되는데, 빌리는 아직 어리고 서툰 소년이지만 히어로로서의 자질을 마법사 샤잠에게 인정받은 셈이다. 이런 경과로 솔로몬의 지혜(S), 허큘리스의 힘(H), 아틀라스의 체력(A), 제우스의 권능(Z), 아킬레스의 용기(A), 머큐리의 스피드(M)까지 총 여섯 가지 슈퍼파워(SHAZAM)를 얻게 된 소년 빌리 뱃슨이 닥터 시바나의 음모에 맞선다. 후반부 위험에 처한 빌리는 위탁가정에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샤잠의 힘을 나누어 주고, 이 과정에서 위탁가정의 부모와 형제들과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 바로 전편의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영화는 '샤잠'의 이야기지만 이제 샤잠 패밀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다. 이번 영화 예고편에서는 '샤잠 패밀리' 6명이 함께 등장해 새로운 적에 맞서는 내용이 전개되는데, 아무래도 현대인보다는 신화 속 인물처럼 보이는 자가 빌리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데다가 패밀리 중 한 명은 변신이 풀려 쓰러지기까지 한다. 궁지에 몰린 듯한 샤잠은 힘을 도로 가져가라는 말을 할 정도인데,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나타났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샤잠을 한방에 날려 버린 이 여성은 헤스페라이며, 예고편 후반에서 강력한 액션을 선보이며 드래곤까지 소환하는 캐릭터는 칼립소다. 헤스페라와 칼립소 둘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인데, 아틀라스의 딸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DC 코믹스 원작에 등장한 적은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다. 이들은 샤잠의 부러진 지팡이를 손에 쥔 순간 무엇인지 모를 힘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올림포스 신들의 힘이 고작 어린 아이들에게 간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힘을 되찾기 위해 샤잠 패밀리를 찾아온다.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의 거신으로 티탄 신족의 한 사람이며 제우스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패배해 그 형벌로 하늘을 받들며 살아간다.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제우스조차 아틀라스의 힘을 완전히 이겨내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메두사의 머리를 본 후 돌이 되어 거신은 산이 되었고, 그것이 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으로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돌이 된 몸이 산으로 남을 정도이니 전설 속 아틀라스는 정말 어마어마한 거신이었던 듯. 이런 아틀라스에게는 자식이 꽤 많은데, 거의 30여 명에 달하는 자식들 중 헤스페라와 칼립소가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헤스페라 역은 무려 50년의 배우 경력을 가진 영국의 원로 배우 헬렌 미렌이 맡았으며 칼립소는 중국계 할리우드 배우로 <상하이 눈>과 <미녀 삼총사> 등에서 활약했던 루시 리우가 맡았다. 여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인 '안테아' 역할을 레이첼 제글러가 연기한다.
까마득한 선배들인 루시 리우와 헬렌 미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역인 마리아 역할로 골든글로브 뮤지컬 및 코미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은 배우 레이첼 제글러에게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인데. 안테아는 헤스페라와 칼립소와는 달리 빌리 뱃슨과 다소 친밀한 관계인 것 같아 보인다. 안테아 역시 아틀라스의 딸로 알려져 있지만, 아마도 안테아의 중간자적 입장이 스토리 전개에 있어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샤잠! 신들의 분노>에서 다루게 될 내용은, '샤잠' 빌리 뱃슨과 샤잠 패밀리가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는, 좀 더 완성된 성장 스토리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새롭게 등장할 아틀라스의 딸들과의 전투 외에도 히어로 무비이자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해, 혹은 시리즈를 제대로 마무리 짓기 위한(……음) 장치는 필요하다.
슈퍼히어로 무비에서 어떤 히어로 캐릭터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과 나누며 '진짜 이야기'를 제대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확실한 기원과 당위성이 필요하다. 거기에 빌리 뱃슨처럼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없는 상태인 어린 소년이 갑자기 강력한 슈퍼파워를 얻게 되었다면, 예고편에서 소아과 의사(...대체 왜)에게 상담할 때 한 말처럼 고민하게 되는 것도 제법 자연스럽다.
슈퍼맨처럼 날 때부터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난 크립토인도 아니고, 배트맨처럼 강력한 재력과 힘을 가진 것도 아니며, 플래시처럼 시간을 거스를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를 가진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빌리 뱃슨의 말을 듣고 있자니 참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법사 샤잠은 빌리에게 몇천 년 동안이나 찾아 헤맨 힘의 주인이 바로 빌리이며, 빌리를 선택한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이야기할 뿐이니 이제 그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건 빌리 뱃슨과 샤잠 패밀리 뿐이다. 즉, 앞서 언급했던 히어로가 될 자격이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적을 상대하기 위해 6명이 모두 함께 다시 어떤 시험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새롭게 각성한 샤잠 패밀리가 다시금 자신들이 힘을 가질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고 혼란에 빠진 세계를 구해내는 것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가 될 것 같다.
그러니 <샤잠! 신들의 분노>는 제법 히어로 무비로서의 서사적인 준비를 했다고도 할 수 있겠고, 영화의 볼거리 측면에서도 나름 준비가 된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개봉 연기의 속내에는 <아바타: 물의 길>과의 대결을 피하기 위한 심산이 없지 않았겠으나… 아무래도 오랫동안 전 세계 최대 흥행작이었던 <아바타>의 속편과 대결하기에 샤잠은 좀 아쉬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1억 달러 수준으로, 히어로 블록버스터 무비라기에는 상대적으로 저예산이었던 전편 <샤잠!>은 현실적인 문제로(아마도) 화려하고 스케일 큰 액션씬이 등장하지는 못했는데, 이에 대한 한풀이인지 <샤잠! 신들의 분노> 예고편에서 공개된 일부 액션씬은 말 그대로 히어로 블록버스터 무비에 걸맞은 화려한 CG와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 무려 드래곤까지 등장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잠! 신들의 분노>는 여전히 불안불안한 구석이 있다. 애초에 전편이 엄청난 흥행 성공을 기록한 작품도 아니었거니와, 국내에서는 코로나 이전의 히어로 무비 붐이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대세였던 MCU에 치이고 밀려 안타까운 성적을 기록한(국내에선 대략 65만 관객을 모았다) 전례가 있으니 이번 작품도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고서야 부족한 인지도를 넘어서기는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난국은 난국이다. DC 유니버스에 제임스 건이 CEO로 취임해 '꽤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제 오랫동안 히어로 무비의 강력한 팬층으로 있어 주었던 대중 관객들은 거대한 유니버스의 한 부분인 영화를 보는 데 좀 지쳐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히어로 무비로서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선보이지 않으면 어지간한 소재와 서사가 거의 다 다루어져 원숙해진 이 장르에서 관객이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주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도 한몫을 한다.
샤잠 원작 코믹스가 그랬듯이 좀 더 어린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어린 히어로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DC 유니버스의 알 수 없는 향방과 더불어 언제 하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샤잠! 신들의 분노>가 보란 듯이 성공해서 이제 DCU의 시대가 되었음을 고해 주기를 바라본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