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선두를 지키는 와중, 영화음악을 만든 밴드 래드윔프스(RADWIMPS)의 프론트맨 노다 요지로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이 첫 방문은 아니다. 여러모로 한국과는 인연이 남다르다. 래드윔프스의 첫 해외 공연을 2014년 한국에서 처음 진행했고, 재작년엔 주연을 맡은 영화 <화장실의 피에타>가 상영된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영국에서 어학연수 중에 만난 한국인 친구가 래드윔프스의 음악을 추천해줘서 그들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여섯 차례의 무대인사를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난 노다 요지로에게 <너의 이름은.>에 관한 이모저모를 물었다.
※ 영화 결말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노다 요지로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협업은 일사천리로 성사됐다. 평소 노다와 면식이 있었던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공이 컸다. 처음 만난 자리. 신카이 감독은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긴장했지만, 래드윔프스의 노래 ‘둘의 이야기’(ふたりごと) 속 노랫말 “나는 목성인이고 너는 화성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겨우 옆의 별일 뿐이잖아, 일생 단 한번의 (타임)워프를 여기에 쓰겠어”를 언급하면서, 신카이 자신이 작품 속에서 그리는 세상과 래드윔프스의 가사, 세계관이 통하는 게 있다고 그에게 음악을 청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주인공의 인연이 전 우주를 통해서 연결돼 있다는 <너의 이름은.>의 중추적인 테마를 떠올려본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노다 역시 둘 사이에 통하는 게 있음을 직감했고, 시나리오 초안에 담긴 두 주인공의 감정과 복잡한 이야기 구조에 매료돼 머지않아 음악감독 직을 수락했다.
“만남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한
‘연결’(무스비結び)을 중시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아, 이 사람이구나!'
확인하고 싶어지지 않나.
그걸 확인하려는 과정 속에서
시련이 주어지게 돼 있다.
그 시련이 바로 ‘거리’인 것 같다.
아주 큰 세상에서 우리가 돌고돌아 엇갈리면서도
결국 만나게 되는 강한 힘,
그걸 믿는 것이 (신카이 감독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 노다 요지로
신카이 마코토와 래드윔프스 멤버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대담에서 "소리와 음성만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림은 소리가 주는 감동을 지지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며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소리'라고 밝힌 바 있다. 대개의 영화음악 작업이 영상이 모두 완성된 뒤 그걸 보면서 작업한 음악을 더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너의 이름은.>의 작업은 기획 단계부터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노다가 만든 음악에 맞춰 영상을 조율해나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노다는 시나리오와 낙서 같은 스케치에 의지해 한 곡 한 곡 작업을 이어갔다. 전적으로 래드윔프스의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방향이다.
제작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노다 요지로는 1년6개월을 <너의 이름은.>의 음악을 만드는 데에 투자해야 했다. 총 26곡(신카이 감독은 이미 어느 부분에 음악을 넣어야 할지 정해놓았던 셈)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청에, 지금껏 래드윔프스의 모든 노래를 혼자 작곡한 노다는 처음으로 밴드 멤버들에게 작곡을 청하기도 했다. "매우 친절하되 양보할 수 없는 것에는 한없이 완고한" 신카이 감독은 써도 좋겠다고 컨펌을 내려 이후 꼬박 2달 동안 만든 곡을 단칼에 무산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한편, 신카이의 의도가 아닌 노다의 뜻이 관철된 경우도 있었다. 타키에 몸에 들어간 미츠하가 도쿄의 풍경을 봤을 때 흐르는 '처음 본, 도쿄'(はじめての、東京)가 바로 그것. 신카이는 강한 멜로디가 있는 곡을 원했지만, 노다는 가벼운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곡을 넣겠다고 고집해, 현재 우리가 영화 속에서 들은 형태로 완성됐다.
가장 오래 작업한 곡은 '스파클'(スパークル)이다. 타키와 미츠하가 아주 잠시 서로 마주한 후, 행성 충돌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9분간의 클라이막스에 깔리는 대곡이다. 워낙 긴 대목이고 그 안의 분위기나 감정에 변화가 많아서 노다는 여기에 다른 곡과 '스파클', 두 곡을 넣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신카이 감독은 9분 동안 '스파클' 한 곡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루핑되는 듯한 피아노, 그 위를 수놓는 변화무쌍한 멜로디들 사이를 잇는 기나긴 간주가 배치된 지금의 버전이 됐다. 이 한 곡을 쓰기 위해 다른 10곡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신카이의 결단과 노다의 집념이 담긴 이 결과물은 <너의 이름은.>이 선사하는 가장 큰 전율을 가능케 했다. "디테일하게 구현된 하늘에 혜성이 떨어지는"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는 노다는 지난 11월 발매된 래드윔프스의 새 앨범 <人間開花>에 '스파클'(과 '前前前世')의 오리지널 버전을 수록했다. <너의 이름은.> OST 커버 역시 바로 그 신의 이미지에서 따왔다.
<너의 이름은.> OST 커버
워낙 사운드에 민감한 신카이 감독은 음악의 러닝타임에 맞추기 위해 애초 구상했던 신의 길이를 늘리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처음 본, 도쿄', '스파클'이 흐르던 신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 신의 경우, 신카이 감독은 노랫말을 보면서 화면을 구상하고 싶어 엔딩곡 '아무것도 아니야'(なんでもないや)가 완성되기 전까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또한 음악을 강조하기 위해 미리 녹음된 인물들의 대사를 날려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타키의 목소리를 연기한 카미키 류노스케와 대화를 하는데 '거기서 녹음했던 대사들 다 없어졌네요' 했다. 대신 그 부분에 노래 가사가 들어갔다고. '내가 진짜 이 장면 더빙 열심히 했는데...' 하며 아쉬워 하는데 '아, 성우들도 그렇게 날아가는 경우가 있구나' 생각했다.(웃음)"
<너의 이름은.>의 거대한 흥행으로 신카이 마코토가 엄연히 '메이저'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노다 요지로가 이끄는 래드윔프스 역시 국민적인 록밴드로 자리매김했다. <너의 이름은.> OST는 22만 장이 팔렸고, 지난 12월31일엔 결성 이래 처음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모이는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기도 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홍콩과 타이에서도 음원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그는 "어느 날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한테 노래 좀 불러줘, 그러더라. 지금까지 우리 음악은 중고등학생 이상이 들었는데, <너의 이름은.> 음악을 통해서 가정에 침투했구나 싶었다.(웃음) 하지만 우리가 늘 그런 밴드일 순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 영화를 계기로 더 자유롭게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래드윔프스는 올해 안에 내한공연을 통해 <너의 이름은.> 속 노래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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