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다른 나라 말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창작에 가깝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 가장 적확한 것을 찾아내는 세공 같은 일이라고 할까.

영화 번역도 그렇다. 영화 번역은 영상의 이미지, 해당 문화권의 특징, 미묘한 맥락, 배역의 성격, 그리고 관객이 보기 편한 글자 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영화 번역은 잘해야 본전이고, 제대로 의미를 반영하지 못했을 경우 티가 확 나는 어려운 일에 속한다.

따라서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은 자막은 잦은 오역 논란에 시달리기도 한다. 다만, 번역가가 해당 문화권의 관람객에게 맞추어 대사의 의미를 재창조해낸 번역은 ‘오역’이 아닌 ‘초월번역’이라는 말로 불리는 추세다. 말 그대로 원 대사의 의미를 초월해버리는 ‘초월번역’이라는 신조어는 영화 번역이 그리 녹록지 않은 창작 과정임을 짐작하게 한다.

<카사블랑카>

이제는 ‘밈’으로까지 사용되고 있는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대사 역시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초월번역’ 사례다. 영어 대사는 “Here’s looking at you, kid”. 물론 이 번역 역시 오역인지, 혹은 번역가의 초월번역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워낙 오래된 영화니), 현재까지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으니 꽤나 인상 깊은 번역임은 분명하다.


“원전 완전 안전하거든요”를 “Clearly Cleaner Nuclear”로?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초월번역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은 제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점이 많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만큼, 외국인이 영화를 이해하기 수월하게끔 하는 번역이 중요했을 터. <헤어질 결심>은 스타 번역가 달시 파켓의 번역을 토대로 글로벌 무대에서 날개를 더욱 활짝 펼쳤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는) 탕웨이의 한국어 대사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탕웨이가 맡은 송서래 역은 한국 사극 드라마로 한국어를 익혀, 문어체 말투를 구사하는 중국인이라는 설정.

마침내 > At Last

영화 속 송서래가 자주 구사하는 “마침내”라는 말은 <헤어질 결심>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대사다. 달시 파켓은 “마침내”를 “Finally”가 아닌, “At last”로 번역해 영어권 관람객들에게 송서래의 어투를 고스란히 전하고자 했다. 일상적으로 흔하게 사용하는 “Finally”보다는, 문어에 가까운 “At last”가 송서래의 대사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사실, 원전 완전 안전하거든요. > We say,” Clearly Cleaner Nuclear”.

극 중 형사 해준(박해일)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건네는 언어유희 역시 놀라운 ‘초월번역’이 이루어졌다. 달시 파켓은 “사실 원전은 완전 안전하거든요”라는 대사를 “Clearly Cleaner Nuclear”로 번역했다. ‘완전’, ‘안전’ 등을 그대로 옮기는 직역은 아니지만, 언어유희의 맛을 살리기엔 충분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 I’m completely shattered.

‘붕괴’는 직역하면 ‘broken’ 혹은 ‘ruin’이다. 영화 중 송서래가 ‘붕괴’의 뜻을 사전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뜻도 ‘무너지고 깨어짐’이라고 표기되었다. 다만, 번역에 쓰인 ‘shatter’는 ‘산산이 부서지다, 산산조각 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보다 비일상적인 ‘붕괴’라는 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영어 단어를 깊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부분.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뜻을 단박에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shatter’을 사용함으로써, 마음이 산산이 깨지는 듯한 뉘앙스를 전했다. 영화의 주된 이미지가 바다, 모래 등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단어 역시 영화의 맥락에 잘 녹아든다.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 I mean heart, not head.

심장과 마음은 모두 영어로는 ‘heart’라고 직역할 수 있다. 만약 “그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줘”라는 대사에서 ‘심장’을 그대로 ‘heart’라고 번역했다면, 본래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지 못했을 것. 일상적으로 “심장이 갖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형사의 ‘머리’를 가져다줘”라고 번역된 대사는 본래의 대사처럼 다소 생소한 느낌을 준다.

원하던 대로 운명하셨습니다. > He perished as he wished.

제 얘기 듣고 울어준 단일한 한국 사람이에요. > He was the solitary person to listen to me and cry.

‘운명하셨습니다’를 ‘perished’(끔찍하게 죽다, 소멸하다)로, ‘단일한’을 ‘solitary’(혼자 하는) 등의 문어로 번역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이는 영어권 관람객들이 뒤의 장면에서 송서래와 장해준이 웃는 이유를 짐작하게끔 한다.

*아래 문단 스포일러 조심

이주임 > June

영어권 문화에서는 직장 동료를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번역가는 영화 내내 이주임이 언급되는 부분은 ‘June’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했다. ‘June’은 남성, 여성 모두 사용하는 중성적인 이름. 따라서, 영어 자막으로 시청하는 관람객들 역시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를 어떻게 번역할까? 영화 <기생충> 속 초월번역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까지. 아카데미 주요 부문을 휩쓴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며 수상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이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번역이다. <기생충> 역시 달시 파켓이 번역을 맡았으며, 그는 영화의 글로벌 인기에 큰 공로를 세운 숨은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모님 > madame, 아주머니 > ma’am, 아줌마 > lady, 언니 > sis

‘사모님’과 ‘아주머니’, 그리고 ‘아줌마’의 암묵적인 위계 차이가 존재하듯, ‘Madame’과 ‘Ma’am’, ‘Lady’ 역시 비슷한 표현이지만 뉘앙스는 확연히 다르다. <기생충>의 지배적인 정서가 계급과 위계인 만큼, 맥락에 따른 호칭의 차이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영어 번역가는 그래서 같은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도 여러 개의 표현을 사용했다.

영화 속 연교(조여정)는 ‘사모님’으로 불린다. 영어 번역판에서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사모님을 지칭하는 말로 ‘madame’이 사용되었다. 반면, 연교 집의 가정부는 기택(송강호) 일가 사람들에게 ‘아주머니’ 등으로 불린다. 주로 ‘아줌마’를 높여 이르는 ‘아주머니’라는 호칭은 영화 속에서 ‘ma’am’으로 번역되었다. ‘ma’am’은 ‘madame’과 유사하지만, 조금 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기에 둘 사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다만, 연교(조여정)은 가정부를 ‘언니’라고 부른다. ‘언니’는 영어로 ‘sis’라고 번역되었다. 만약 가정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다면, 위계에 따라 가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전하지 못했을 것.

‘아줌마’라는 호칭으로는 ‘lady’가 사용되어 격식을 확 걷어낸 인상을 준다. 영화 속, 기우(최우식)이 문광(이정은)을 ‘아주머니(ma’am)’으로 부르다 일련의 사건이 터지니 ‘아줌마(lady)’라고 부르는 부분은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다.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거 없나? >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옥스포드에 문서 위조 전공이 있나?)

짜파구리 > ram-don(ramen+udon)

반지하 > semi-basement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단박에 맥락을 이해시킬 번역이다. 달시 파켓은 “영문 자막도 한국어 대사와 같은 포인트에서 웃을 수 있도록 최대한 타이밍을 맞춘다”라며, 웃음 포인트까지 고려한 번역 작업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역시 종북 개그의 지존! > Nobody can imitate North Korea news anchors like you

문광(이정은)이 북한 아나운서 말투를 흉내 내는 장면에서 등장한 대사다. ‘종북 개그’라는 말은 한국 문화에 속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단어지만, 영어 자막에서는 이 짧은 말이 오히려 설명이 추가된 채 번역되어 외국 관객의 웃음을 낳는 데에 성공했다. 실제로, 번역가 달시 파켓은 봉준호 감독이 이 부분의 번역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