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1.

“새 집을 탐내지 않았던들 이런 일은 안 생겼을걸.”

김기영의 〈하녀〉(1960)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한 것을 발견한 아내(주증녀)는 비탄에 잠겨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상한 일이다. 아들(안성기)이 죽고 남편 동식(김진규)이 죽은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결국 동식이 하녀(이은심)와 동침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새 집을 욕망한 자신을 탓한다. 왜 그런 걸까?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하녀〉를 지배하는 서스펜스는 계급 상승을 위해 악착같이 달려온 이들이 흔히 경험하는 계급 추락에 대한 공포다. 부부는 새 집을 마련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일했고, 그러느라 빚은 늘고 아내의 건강은 안 좋아졌다. 새로 지은 넓은 집을 아내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하녀를 들였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 이 젊은 여자가 남편을 유혹해 이 안정적인 터전을 빼앗으려 들진 않을까 겁이 난다. 극 중 부부가 하녀의 협박에 이끌려 다닌 것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인 이유다. 하녀가 주인집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고 추문을 퍼트리게 놔두면, 동식이 직장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이 모든 파국의 뒤에는 더 큰 집과 더 편리한 생활을 원했던 중산층의 욕망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상한 일이다. 새 집을 지은 탓에 하녀를 들인 게 맞다고 해도, 동식이 끝내 하녀와 동침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녀〉는 마치 하녀의 유혹이 벗어날 수 없는 마수인 양 보여주지만, 다시 잘 살펴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동식은 얼마든지 물리적으로 하녀를 뿌리치고 나갈 수 있었다. 하녀는 조경희(엄앵란)가 동식에게 연정을 고백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동식을 협박했지만, 어차피 동식은 경희의 연정을 거세게 거절했으니 그게 이렇다 할 흠이 될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식은 하녀를 뿌리치는 시늉만 좀 하다가, 하녀가 웃옷을 벗고 길을 막자 못 이기는 척 하녀를 제 품에 품는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1960년대 하녀를 들여 쓰던 신흥 중산층들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남자에게 성욕이란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 남자들은 젊고 싱싱한 육체를 지닌 하녀를 성적 대상화하길 망설이지 않았다. “범 아가리에 날고기”라는 대사처럼, 남자들의 무의식 속에서 하녀는 언제든지 쉽게 손을 가져다 댈 수 있는 장난감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고용주들은 하녀가 성을 무기로 삼아 자신이 이룩한 경제적 안정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피해 망상에 사로잡혔다. 정작 상대를 성적 대상화한 건 자기들이면서도, 이들은 ‘외부에서 침투한 불순물’인 젊은 여성 노동자가 제 집안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그건 당시 하녀의 임금 수준이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작중 언급되는 하녀의 임금은 5천환이었다. 통계청 자료로 본 1960년 제조업 상용 노동자 평균 임금이 2만 6천환이었으니, 얼마나 낮은 돈을 받으며 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돈을 받고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급이 많으니 임금은 저렴해지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누구든 쉽게 쓰다가 마음에 안 내키면 갈아 치울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을 사람같이 쓰지 않았으니 당연한 순서처럼 존중도 사라졌고, 존중이 사라졌기에 아예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할 수 있었다. 김기영이 〈하녀〉를 통해 중산층의 공포를 자극하며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한껏 놀려먹을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사람을 함부로 쓰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2.

“하지만 혹시 이것이 인권의 문제, 특히 국제노동기구 ILO 국제협약 위반이 아니냐 질문하십니다. 예, 저도 그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꼼꼼히 꼼꼼히 따져보았지만 그 결론은 위반이 아닙니다. 한국인과 외국인 국적차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가사도우미는 최저임금법 적용이 되지 않는 직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발의한 법안은 ILO 국제협약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2023년 3월 21일, 최저임금 적용이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조정훈 의원은 맞벌이 부부의 저출생 문제는 보육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월 7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의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래, 싱가포르. 잠시 〈한겨레21〉 1378호의 2021년 9월 1일자 기사, “글로벌 ‘하인 계급’ 된 저임금 외국인 가정부들”을 인용해 보자.

(전략)

매일 돌봄 이주자 수만 명이 당하는 폭력·성폭력·학대는 익숙한 ‘사실’이다. 싱가포르의 가정집에 고용됐다가 학대와 고문, 기아로 숨진 미얀마 가정부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3살 아이를 둔 24살 미얀마 가정부 피앙 응아이 돈은 싱가포르 가정집에 고용된 지 5개월 만에 사망했는데, 발견 당시 그는 몸무게가 24㎏이었고 뇌 손상이 심한 기아 상태였다. 몸에는 31개 흉터와 47개 외상이 발견됐으며, 죽기 전 12일 동안 창틀에 묶여 있었다.

(중략)

미국의 사회학자 엘리 러셀 혹실드는 현재의 글로벌 돌봄 사슬(Global Care Chains)을 ‘감정제국주의’라고 정의한다. 3 경제 부국은 자국민의 안녕, 좋은 삶과 노후, 건강을 위해 전 세계 경제개발국이나 빈곤국 이주민이 보유하고 훈련해온 감정·돌봄·간호·노동·지식을 마치 천연자원처럼 마구 착취하고 값싸게 사용하지만 정작 이주노동자의 돌봄 요구를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간병하고 아이를 돌봐온 중국 동포 등 이주자의 안전, 건강, 노동권은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19 같은 전 지구적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사회는 방역과 재난 구호 체제에서 이주자를 배제하며 이들을 돌봄 받을 자격에서 배제했다.(후략)

잠시 다른 숫자들도 인용해볼까. 2017년 민간 컨설팅업체 리서치 어크로스 보더스가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정부 800명과 고용주 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취 조사에서, 응답자의 84%는 하루 노동 시간이 12시간이 넘는다고 응답했다. 주 1회 휴일도 없이 일한다고 응답한 가정부는 41%, 감시 카메라로 감시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 가정부는 33%에 달한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381달러, 그러나 여기에서 식대와 집세를 빼면 평균 소득은 158달러로 줄어든다. 한 응답자는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호소했다. (〈글로벌 이코노믹〉. 싱가포르 외국인 가정부 60% "고용주로부터 착취 피해"…"우린 로봇 아닌 인간" 호소. 2017년 11월 30일. 노정용 기자)

이런 게 조정훈 의원이 ‘전환’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시대’의 모습일까? 우리 출생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니까 ‘다른 선진국 싱가포르’처럼 사람을 함부로 막 싸게 쓰고 부리는 시대? 크게 이상하진 않다. 입법부의 일원인 사람이 ‘가사도우미는 최저임금법 적용이 안된다’는 법의 사각지대를 발견해서 노동착취를 하고도 ILO 국제협약 위반을 피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고 기자들 앞에서 자랑을 하는 한심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 방향으로 가자는 게 맞는 것 같다.

심지어 이건 어떤 종류의 미래도 아니다. 1960년대 월 5천환을 받으며 집안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남자들의 성적 대상화를 견뎌야 하고, 그러면서도 ‘집안 말아먹을 종자’ 취급을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식모’들과 ‘하녀’들의 과거다. 〈하녀〉를 통해서 김기영이 한껏 놀려 먹었던 중산층의 위선과 불안, 그리고 착취.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시대를 전환하겠다는 이들은 그 과거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나는 조정훈 의원과 함께 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들의 이름을 기록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의힘 박수영·서정숙·유상범·전주혜·조은희·최승재·최형두·태영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이정문 의원. 이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시대는, 화면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정정: 원고를 작성한 시점 이후,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이정문 의원은 공동발의를 철회했다. 대표발의자 조정훈 의원은 국민의힘 권성동·조수진 의원에게 추가로 공동발의를 받아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