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여운을 안겨주는 한 편의 영화가 극장가에 당도했다. 3월 29일 개봉한 <나의 연인에게>는 21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역사, 911 테러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2021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어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논쟁적인 이 영화를 둘러싼 여러 기억할 만한 사실들을 소개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도 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라면, 주인공들은 지금도 살아있는지 진짜 사실을 궁금해할 것 같다. 그래서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사랑에 관한 다소 위험하고 아찔한 접근이 될 영화 <나의 연인에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 정말 사랑일까?
튀르키예 출신 독일인 의대생 아슬리와 레바논 이민자 사이드는 1990년대 후반, 독일의 한 술집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은 서로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는데 아슬리의 어머니가 아랍계 남자는 절대 만나선 안 된다며 둘 사이를 반대하고 나선다. 아슬리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사이드와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둘은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한다. 사이드가 아슬리 몰래 누군가를 만나고, 홀연히 사라진다든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언어를 쓰는 식의 변화를 보이자 그녀는 불안해진다.
이 영화의 영어 원제는 ‘코파일럿’, 부조종사라는 뜻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 자체가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연인 관계에서는 그 사람의 일부, 한 단면만을 자꾸만 보게 된다. 한 가지 매력이 다른 단점을 가리게 만들기도 한다. 관객들은 아슬리가 이 불안한 관계를 알면서도 시작한 것인지, 혹은 어느 시점부터 깨닫게 됐는지, 왜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보게 된다. 역사가 기록한 악인으로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테러를 저지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심리를 통해 관객들은 무엇을 질문해볼 수 있게 될까.
그녀는 공범일까?
<나의 연인에게>의 주인공 사이드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그는 2001년 9월 11일, 유나이티드 93편을 탈취했던 테러범 중 한 사람이었다. 실명은 지아드 자라. 넷플릭스의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그를 자세하게 언급한다. 유나이티드 93편은 그날 오전 9시경에 무역센터 빌딩에 두 대의 비행기가 충돌한지 한 시간 정도 지난 시각에 펜실베니아주 서머싯 카운티에 추락했다. 당시 탑승객 40명 전원이 사망했고, 일부 승객들이 테러범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기록된 기내 음성이 자료로 남아있기도 하다. 추정컨대 이 비행기의 테러범들은 워싱턴의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을 목표로 했을 거라고 관련자들은 분석한다. 이를 소재로 <플라이트93>이란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의 연인에게>는 테러리스트 당사자인 사이드뿐만 아니라 그의 곁에서 불안하고 괴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야 했던 아슬리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뭔가 대단히 잘못된 일에 연루되었단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되었을까. 그리고 심지어 특정 국가를 노린 테러를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았을까. 만약 정말로 남편의 실체를 몰랐다면 여자의 삶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즉, 이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아슬리의 심리 상태를, 그녀의 도덕적인 딜레마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묻는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참고로 주인공 아슬리의 모델이었던 실존 인물은 911 테러 이후 법정에 수도 없이 출두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밝혔다고 한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많은 에피소드가 당시 실존 인물 당사자의 법정 증언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걸 짐작해 볼 수 있다.
위험한 질문을 던지는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누구?
<나의 연인에게>를 연출한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독일 출신으로 미술전문고등학교를 거쳐 사회교육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다가 2009년에 단편 영화 <성자와 창녀>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영화 연출에 뛰어든다. 그녀의 첫 장편 영화인 <투 머더즈>(2013)는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특별상 ‘다이얼로그 펄스펙티브(Dialogue en Perspective)’를 수상했고, 두 번째 연출작 <24주>로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독일예술영화 조합상, 제67회 독일영화상 베스트필름 은상을 수상했다. 전작 두 편 모두 논쟁적인 소재를 영화화한 작품들이다.
<투 머더즈>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레즈비언 커플이 공개 오디션을 통해 남성들의 정자를 고르려 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대리모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의식을 질문하게 만들었다. <24주>는 일종의 합법적인 낙태란 가능한가를 묻는 영화다. 아주 유명한 코미디언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에 보도되는 상황에 처하는데 이때 그는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임신 6개월째에 태아가 다운증후군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주인공은 남편과 낙태를 할지를 고민한다.
독일에서 낙태는 합법이지만 12주라는 제한 조건이 있다. 산모가 12주 내에 낙태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을 넘어서면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뒤늦은 시기의 낙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개봉 당시 독일에서는 12주 이후의 낙태는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고 하는데 <24주>는 관객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고민을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있게끔 연출을 했고 실제로 많은 독일 관객들을 울렸다고 한다.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나의 연인에게> 역시 앞서 두 편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게 만든다.
사랑의 불완전성에 관하여
<나의 연인에게>는 범죄자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당연히 아니다. 인간으로서 굳이 들춰내지 말아야 할 금기나 비윤리적인 문제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동안 여성들의 삶을 불편하고 부당하게 이끌어왔던 사회적인 문제들은 무엇이 있었는지를 곱씹게 만들 영화다. 무엇이 아슬리라는 한 인물의 삶을 끔찍한 폭력의 부조종사 위치로 안내하게 되었을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어쩌면, 기꺼이 위험하고 무모한 길로 안내하게 만드는 사랑의 속성, 그 불완전성에 대한 영화는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답을 구하게 되는 질문이다.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