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의 세기의 만남. 농구화 '에어 조던'을 신고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던 마이클 조던의 실화를 다룬 영화 <에어>가 개봉한다. 전 세계 농구화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에어 조던의 탄생기를 다룬 <에어>를 재미있게 즐기려면 몇 가지 사전 정보가 필요하다. 실제 스니커즈의 역사에 있어서 1980년대에 나이키라는 스포츠 브랜드 회사가 어떤 위치에 있던 기업이었는지, 당시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 영입이 어떤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는지를 알고 보면 <에어>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주인공이 아니다?
영원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1984년부터 1998년까지 (중간에 은퇴를 선언하고 휴지기를 가졌던 18개월을 제외하고) 13년 동안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고 6번의 NBA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선수로 뛰는 동안 NBA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고, 2016년에는 NBA 농구선수 최초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는 스포츠 선수를 넘어 현대 문화의 아이콘이 된 인물이다.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NBA에서 뛰기 시작한 1984년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나이키의 파격적인 영입 제안이었다. <에어>는 신인 선수의 가능성만 보고 회사 전체의 사활을 건 ‘에어 조던’ 계약을 성사시켰던 나이키의 마케터 소니 바카로에 의해 스포츠 업계 판도가 뒤바뀐 사건을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마이클 조던이 아니다. 정확히는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계약을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당시 나이키 직원들과 마이클의 부모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벤 애플렉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서 마이클 조던에게 여러 번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이때 마이클은 애초 각본에 없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벤 애플렉은 “이 영화는 나이키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마이클 조던의 부모가 아들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되는지가 이 영화의 핵심 관전 포인트. 이 영화에서 마이클의 부모를 연기한 두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와 줄리어스 테넌은 실제로도 부부 사이다.
1980년대 농구화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은?
오리건 대학 육상 선수 출신 필 나이트와 그의 코치 빌 바우어맨에 의해 1964년에 설립된 나이키는 러닝화를 중심으로 급성장한 회사다. 1980년대에는 미국 운동화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게 된다. 하지만 농구화 시장에 있어서는 언제나 컨버스와 아디다스에 밀려 3위의 신세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농구화 시장에서 업계 1인자는 단연 컨버스였다. 매직 존슨, 닥터 제이, 버나드 킹, 래리 버드 등의 당대 최고 선수들이 컨버스 웨폰을 신었고, 컨버스는 NBA 공식 농구화였다. 대학 리그에서 뛰던 마이클 조던은 아이다스를 좋아했다. 당시 마이클은 연습 때는 아디다스 농구화를 신고 시합 때만 컨버스로 갈아 신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마이클 조던의
유망주 시절
미국 스포츠 역사상 시카고 불스처럼 많은 인기를 누렸고 좋은 성적까지 거두며 급성장한 팀은 드물다. 그런데 마이클 조던이 입단하기 전의 시카고 불스는 그리 인상적인 팀은 아니었다. 당시 시카고에서 농구팀을 좋아하는 시민들은 별로 없었고 축구보다 인기가 적었다고 전해진다.
마이클 조던은 어려서부터 술과 마약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았으며, 사적으로나 공식 석상에서나 취하거나 일탈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평소에 그는 오렌지 주스와 세븐업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사적인 스캔들도 일절 없었고 오직 운동과 승리만 생각하던 마이클 조던은 기울어져 가던 시카고 불스를 살릴 유일한 존재였다.
마이클 조던이 구단 내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건 입단 후 세 번째 경기쯤 뛰고 난 이후다. 1984년 10월 29일에 있었던 밀워키 벅스 대 시카고 불스팀 경기에서 마이클 조던 덕분에 시카고의 오랜 숙적이었던 팀을 물리쳤고 이에 대중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에어>의 배경은 마이클 조던이 이제 막 코트에서 주목을 받기 직전의 상황이다.
업계의 관행을 깬
무모한 도박
스포츠 브랜드 업계와 선수들 사이에는 에이전트가 있어서 비즈니스 관계에서 선수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 이 관계를 무시한다는 것은 업계 관행상 자신의 커리어는 물론 기업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행동. 하지만 나이키의 소니 바카로는 필사적으로 마이클 조던을 협상 테이블에 데려오기 위해서 당시 마이클 조던의 에이전트였던 데이비드 포크(크리스 메시나)를 거치지 않고 마이클 조던의 부모님을 직접 만나게 된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이런 모습을 비롯해서 소니 바카로가 거의 도박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게 되는 과정이 영화에 상세하게 묘사된다.
나이키를 사로잡던 순간
마이클 조던 스스로 자신을 선수로서 제대로 인식하게 된 때는 대학 시절이었다. 1982년 3월 29일, NCAA 챔피언십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슛이었다. 그의 능력을 일찌감치 눈여겨봤던 딘 스미스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조지타운 대학이 한 점 앞선 상황에서 멤버들에게 공을 마이클 조던에게 줄 것을 지시한다. 그가 반드시 슛을 성공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듯하다.
마이클 조던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에서 바로 그때 골을 넣었던 순간이 “마이크에서 마이클 조던이 되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아직 NBA 무대에 서보지도 않은 신인 선수에게 회사의 명운을 맡길 정도로 큰 계약을 성사시켰던 소니 바카로 역시 이 결승 경기를 보게 된다.
2021년 최고의 블랙리스트 각본
할리우드에는 오래전부터 제작이 되지 않았으나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블랙리스트'라는 타이틀로 부르곤 했다. 작가 알렉스 콘베리가 쓴 <에어>의 각본은 2021년 최고의 미제작 블랙리스트 각본이었다. <굿 윌 헌팅>의 각본을 공동 작업하기도 했던, 할리우드의 오랜 절친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은 최근 공동으로 제작사를 차렸고 <에어>가 창립작이다.
<에어>의 제작과 배급을 맡은 아마존 스튜디오는 극장 진출을 위해서 2022년 MGM 스튜디오를 85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에어>를 통해 OTT 플랫폼 공개가 아닌 극장 개봉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에어 조던의 문화적 파급력
1980년대 초에 가장 잘나가던 선수들은 대개 10만 달러 정도의 영입 비용을 받고 브랜드 계약을 체결하곤 했다. 그런데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계약을 할 때는 25만 달러를 받았다. 단순 금액만 비교해도 당시로서는 얼마나 파격적인 제안이었는지 알 수 있다. 나이키는 애초 육상 선수용으로 에어 솔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는데 여기에서 착안, 마이클 조던의 농구화를 에어 조던으로 명명한다. ‘에어 조던’ 작명에 대한 일화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에어>에서 상세하게 등장한다.
에어 조던의 문화적 파급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과의 계약으로 인해 4년 안에 300만 달러 정도의 에어 조던 매출을 예상했다고 전해지는데, 에어 조던은 출시 1년 만에 1억 260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업계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에어 조던은 농구 경기를 할 때만 신는 스포츠 용품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어 패션과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에어 조던의 일등 공신
소니 바카로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나이키의 소니 바카로는 마이클 조던과의 역사에 길이 남을 계약을 성사시킨 뒤 이후 아디다스와 리복으로 옮겼다. 그는 코비 브라이언트를 LA 레이커스로 이끄는 것을 도왔고, 아디다스에서는 르브론 제임스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며 나이키와 아디다스 농구화의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소니 바카로는 오랫동안 대학 농구 코치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인 발굴에 주력했다. 그는 1984년부터 2007년까지 고등학교 농구의 엘리트 쇼케이스인 ABCD 캠프를 설립, 운영했는데 여기를 거쳐 간 선수 중엔 코비 브라이언트, 드와이트 하워드, 르브론 제임스 등이 있었다.
또한 소니 바카로는 선수들이 기업이나 협회에 맞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업계 흐름을 바꿔놓은 중요한 인물로 지금까지도 거론된다.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