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4>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곧 개봉을 앞둔 4편이 시리즈 사상 가장 재미있다는 것도 놀랍다. 어떤 액션 프랜차이즈도 쉽게 해내지 못한 이기를 거머쥔 <존 윅> 시리즈는 대체 왜 성공했을까.

물어보나 마나 정답은 키아누 리브스 덕분이다. 4편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관객을 위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를 되짚어 봄과 동시에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 인생도 함께 들여다봤다. <존 윅> 시리즈가 걸어온 길이 곧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 인생의 집약이나 다름없다.

※ <존 윅4>의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Point 1. 정의로운 킬러

<존 윅>

<존 윅 > 시리즈가 4편까지 이어지는 동안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하나 있다. 그건 우리가 존 윅의 현역 시절, 그러니까 그가 킬러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던 과거를 본 적 없다는 거다. 또한 그가 아내의 죽음 이후 은퇴를 대가로 치러야 했던 전설적인 불가능한 임무가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하이 테이블'(최고의회)이 좌우하는 세계의 질서에 충실하고 나름의 정의로운 면모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관객들은 존 윅의 사적 복수를 도덕적으로 불편해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그녀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강아지를 모두 잃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던 존 윅이고, 그는 또 키아누 리브스니까.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인물 중에 유독 정의로운 캐릭터가 많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왜 존 윅을 잘 소화할 수 있었는지 십분 이해가 된다. 킬러가 정의로울 수 있다니 너무 아이러니하긴 하다. 키아누 리브스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Point 2. 끝장을 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스피드> 잭처럼, 키아누 리브스에겐 끝까지 물고 늘어질 강단이 보일 때가 있다.

키아누 리브스가 유독 자주 연기한 직업을 꼽으라면 바로 형사가 아닐까. 대표적인 인물이 <스피드>에서 그가 연기한 LA경찰 특수기동대 폭탄전담반 잭 트래븐이다. 연출을 맡은 얀 드봉 감독은 <폭풍 속으로>를 보고 키아누 리브스에게 역할을 맡기길 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키아누 리브스가 후보군에 들었던 배우들, 톰 크루즈, 톰 행크스, 웨슬리 스나입스, 우디 해럴슨 같은 배우들과 비해 너무 근육질이지 않고 또 여성들에게도 친절할 것 같은 타입이어서였다고 한다. 언뜻 유약한 면모도 보이지만 한 번 물면 결코 놓치지 않는 집요한 면까지 갖춘 그의 이미지가 <스피드>에서 폭발한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말 그대로 끝까지 사생결단의 태도로 밀어붙이는 인물은 얀 드봉 감독도 보았듯이, <폭풍 속으로>가 한 발 빨랐다. 은행 강도들을 집요하게 쫓는 FBI 요원 자니 유타 역시 키아누 리브스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Point 3. 나쁜 놈은 안 어울려

<왓쳐>

키아누 리브스가 수행한 배우로서의 새로운 도전이 모두 성공한 건 물론 아니다. 맞은 데 또 맞고 찔린 배를 또 찔리는 뼈아픈 경험은 존 윅만 한 것이 아니라 키아누 리브스 자신도 경험한 적 있다. 1999년 <매트릭스>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에 그는 <리플레이스먼트> <왓쳐> <더 기프트>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중에서 <왓쳐>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다른 두 편의 영화가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연을 맡았던 <리플레이스먼트>는 로튼 토마토 평점 41%, <더 기프트>에서 맡은 인물은 아내를 학대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역할이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왓쳐>에서 연쇄살인마를 연기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안타깝게도(?) <배틀필드>의 배리 페퍼에게 트로피를 빼앗기긴 했지만 키아누 리브스 연기 인생에서 손꼽히는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이후 웬만큼 이상한 인물을 연기해도 <왓쳐>의 어색함을 이기진 못한다. 이렇듯 키아누 리브스는 가끔 이상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영화 <버려진 자들의 땅>에서 콧수염을 기른 변태 같은 인물 ‘드림’도 이상하기론 <왓쳐>의 연쇄살인마 못지않다.

최근 ‘키아누 리브스’의 이름이 의외의 분야에서 등장했는데 독일의 박테리아 연구원들이 신종 박테리아 연구에 그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이다. 곰팡이를 죽이는 화합물에 ‘키아누마이신’이란 이름을 붙인 독일 연구진들은 이 화합물이 곰팡이를 죽이는 모습이 마치 존 윅과도 같아서 그의 이름을 빌려 지었다는 이유를 들었다(이 소식을 들은 키아누 리브스는 본인 실명보다는 존 윅을 가져다 썼으면 어땠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긴 했다). 그러니까 ‘키아누마이신’의 박력이 <왓쳐> 같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친 후에도 결코 멈추지 않아서 가능해졌다는 부분을 곱씹어 볼 여지가 있다.


Point 4. 미담 폭격기

키아누 리브스의 대표적인 봉사활동 사진

그에 대해 너무 안 좋은 이야기를 했더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에는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 키아누 리브스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담 제조기 배우다. 지금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수많은 의료 봉사와 자선사업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매트릭스>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익 3500만 달러의 70%를 백혈병 치료 연구에 기부한 사실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어린이 병원을 후원하고 소아암과 백혈병 연구를 하는 암 기금 운영해온 사실도 비밀에 부친 적 있다. <매트릭스> 1편의 대성공 이후 시리즈 출연 계약 연장 수익의 일부를 특수효과팀과 의상팀 보너스로 돌린 적도 있다. <존 윅> 시리즈가 성공하면서 스턴트팀이나 스태프들에게 선물 공세를 아끼지 않은 사실도 기사화됐다. 이런 키아누 리브스의 미담과 그의 이미지는 존 윅이 저지르는 폭력적인 사태를 조금이나마 희석시켜주는 완충제이기도 하다.


Point 5. 좋은 친구들

<존 윅 4>의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 핀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에 따르면, <존 윅>의 세계에서 존 윅은 친구가 너무 많다는 거다. 왜냐하면 “존 윅은 본질적으로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고 거기에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키아누 리브스라면 싫어하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것.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존 윅이 킬러들의 세계에서 파문(Excommunicado) 당하고 나서도 그를 돕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존 윅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아니 그렇게 사람이 착하고 좋은데 어떻게 살인으로 먹고 살 수가 있었단 말인가.

카론(랜스 레딕)

시리즈 내내 존 윅을 목숨 바쳐 도왔던 조력자들을 살펴보자. 1편의 빌런인 줄 알았지만 작은 반전을 보여줬던 그의 오랜 친구 마커스(윌렘 데포)를 비롯해서 시체 치우는 찰리(데이비드 패트릭 켈리)와 그의 생명을 매번 연장시켜주던 의사(랜달 덕 김)와 아우렐리오(존 레귀자모), 하다못해 지나가는 단역 경찰관 지미(토마스 사도스키) 등 존 윅을 아는 모두가 그의 친구나 다름없었다. 최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 랜스 레딕이 연기한 컨티넨탈 호텔의 컨시어지 카론도 대표적인 존 윅의 조력자였고 하이 테이블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뉴욕 지하세계의 대부, 바워리 킹(로렌스 피쉬번)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바워리 킹이 존 윅과 함께 등장하는 모든 순간이 <매트릭스> 같았다.

바워리 킹(로렌스 피쉬번)

소피아(할리 베리)

3편의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도 전에 감독에게 먼저 연락해서 배역을 요청했던 배우 할리 베리가 연기한 소피아는 또 어떤가. 존 윅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려면 목숨 따위는 여러 번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3편에 이어 4편에도 캐스팅될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 같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캐릭터는 역시 이안 맥쉐인이 연기하는 윈스턴일 것이다. 이번 4편에서는 키아누 리브스와 <47 로닌>에서 함께 연기했던 사나다 히로유키를 비롯해서 사와야마 리나, 견자단, 셰미어 앤더슨 등이 등장한다.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키아누 리브스와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존 윅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최고의 친구는 아무래도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아닐까.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스턴트 대역 배우 역할을 하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당시에도 전문 스턴트 배우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지만 키아누 리브스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끝에 둘은 의기투합해서 <존 윅>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은퇴한 존 윅을 다시 세상에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 하필 모두가 아는 존 윅을 몰라본 일개 러시아 마피아 보스의 아들이었다니. 지금도 의문이다. 대체 그는 어떻게 존 윅을 모를 수 있었을까. 전설적인 킬러 바바야가(존 윅의 별칭) 한 명 때문에 이 세계의 근간인 최고 의회 '하이 테이블'의 권력이 위태로워질 정도가 됐으니, 의회의 위정자들은 그 보스 아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단 한 사람이 존 윅을 몰라서 시작된 '전설의 복귀'

<존 윅4>는 이전 시리즈와 비교해서 가장 많은 사살자, 가장 많은 살상 도구, 가장 다양한 로케이션, 가장 화려한 액션이 등장한다. 뉴욕을 벗어나 프랑스 파리 도심을 휘젓고 다니면서 물리적인 한계를 시험하듯 액션을 몰아붙인다. 중국 무협 영화와 서부극의 장르적 스타일을 차용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액션을 선보인다. 이렇게까지 시리즈가 인기를 얻을 줄 아무도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은퇴한 존 윅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내준 보스 아들 요세프(알피 알렌)에게 새삼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