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릭쇼(freak show)를 직역하면 괴물쇼, 기형쇼가 된다. 신체의 기형적 형태나 엽기적인 생활상을 가진 사람을 우리에 가두고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며 돈을 버는 엔터테인먼트다. 유럽 대륙에서는 바디라인이 육감적인 흑인 여자를 전시하거나, 전쟁 포로로 잡은 동양인을 가두고 쇼를 하는 형태도 있었다고 한다. 17세기 중반 영국에서 샴쌍둥이를 전시하며 돈을 받은 것이 그 효시였다고 하니 나름 유서 깊은 인권 유린의 형태라고 하겠다. 관객들은 이런 전시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 어쩌면 나는 저렇게 신체가 '비정상'적이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 저렇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묘한 편안함이 몰려오는 것이다.
원작소설
<나이트메어 앨리>(2021)는 원작이 있는 영화다. 1947년에 동명의 영화가 있었으며, 그보다 한 해 전에는 윌리엄 린지 그레셤에 의해 원작 소설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영화처럼 소설 또한 20세기 중반 미국의 유랑단을 그리고 있으며, 여기에도 프릭쇼의 요소가 나온다. 야만인 같은 모습을 한 사내가 우리에 갇혀 생닭을 뜯어 먹는데, 이 사람을 가리켜 기인(Geek)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용 빈도수가 낮았던 이 단어는 소설의 히트로 인해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보다 보면 작은 의문이 생긴다. 이런 사람들을 대체 어디서 구해오는거지?
기인의 기인
영화 이야길 해보자. 주인공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은 아픈 기인을 병원 앞에 맡기고 유랑단장인 클렘(윌렘 대포)과의 식사 자리에서 대체 어디서 기인을 구하는지 물어본다. 이에 클렘은 의외로 평범한 사람을 물색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말을 해준다. 일단 매일 위스키 두 병씩 먹어대는, 폐인이 된 백수 주정뱅이를 찾아나선다. 싸구려 여인숙이나 역에서 데려온 알코올중독자들에게 일을 주면서 클렘은 이 직업이 임시직임을 강조한다. 다른 기인이 구해질 때까지만 하는 일이야. 그리곤 술에 아편을 타서 먹이고는 서서히 중독시켜 기인이 스스로 천국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이제 진짜 기인을 구하러 간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자신을 놓지 말라고 애원한다. 다시 술을 못 마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기인은 살아있는 닭이든 뭐든 먹으며 스스로 구경거리가 된다. 즉, 기인은 어딘가에서 구해오는 것이 아니라 짤막한 천국을 맛보게 해준 다음에, 기나긴 나락을 스스로 청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끔찍한 생활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 기인 그리고 주인공
영화는 스탠턴이 시체를 구덩이에 넣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지른 스탠턴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떠나 유랑단에서 직업을 얻어 독심술과 심령술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 시신은 스탠턴이 저주해 마지않는 그의 아버지다. 병약해진 아버지가 추위에 죽도록 내버려 둔 후 화장한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땅 아래에 묻히는데 반해, 아들은 땅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유랑단에서 첫 구경거리는 기인이었다. 기인은 지하의 감옥에 갇혀 내려다보는 관객들을 상대로 생닭을 뜯어 먹는다. 바로 전 장면의 아버지 - 아들의 위치가 연상되는 구성이다. 아버지와 기인을 동일하게 다루는 듯한 이미지가 선사되고 그 날밤 스탠턴이 꾸는 꿈에 대한 씬이 나오는데, 마치 그의 아버지와 기인의 심상이 겹쳐 보이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스탠턴은 유랑단에서 제2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를 만난다. 그는 알코올 중독이며 성적 불구라는 측면에서 스탠턴의 아버지와 닮아있다. 스탠턴은 그에게 독심술(이라 쓰고 사기꾼의 기술)을 배우며 아들로서의 면모를 보이지만, 수강료의 일환으로 알코올이 아니라 에탄올을 건네면서 그를 죽이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피트의 아내인 지나(토니 콜렛)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암시가 등장한다. 수많은 서사에서 차용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아버지 살해' 요소가 여기서는 그냥 1:1의 대응으로 나와버린다.
소설이 나온 당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크게 대두되던 시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부분이 있다. 이윽고 이 이야기는 그렇게 만나는 아버지마다 죽인 스탠턴이 결국에는 스스로 아버지화되어버린다. 처음에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가 싫어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던 스탠턴, 그러나 거물 심령 사기꾼이 된 그는 점점 술을 탐닉해가며 스스로의 벌이는 짓들을 정당화한다.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걸인의 꼴이 되어 노숙자들에게 술을 얻어 마신다. 그들이 돈을 요구하자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풀어서 넘긴다. 그도 알코올에 감염된 두 아버지처럼 되는 꼴이다.
앞서 말한 기인과 아버지의 이미지에 이어, 닭을 생각해보자. 기인은 첫 등장에서 닭을 뜯어 먹는다. 스탠턴은 살인 후 도망치면서 기차의 짐칸에 숨는데, 그때 닭장을 헤치며 몸을 숨긴다. 아버지와 동일화되는 등식 이외에도 '스탠턴 = 기인'이라는 관계 또한 만들어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망자 신분의 스탠턴이 할 수 있는 일은 유랑단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심령술은 이제 인기가 없다. 단장은 그에게 기인으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엄청난 심령 사기극을 벌이며 생의 높은 곳에 갔던 스탠턴이었고, 자신과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기인의 삶이라고 생각한 그였겠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기인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스탠턴은 아버지이자 곧 기인이라는, 서늘하고 기이한 공식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스탠턴에게 닥친 비극적 운명
<나이트메어 앨리>는 시대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말해준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대전이 벌어졌을 때, 그리고 2년 후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이다. 전쟁은 많은 인명을 죽였고, 결국 원폭 투하라는 비극 또한 벌어졌다. 실제로 양차 세계 대전 이후로 윤리학이 발전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답게 살기 위한, 그리고 상대 역시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도인 것이다.
스탠턴은 심령술과 독심술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벌어들인다. 이것은 결국 설탕을 잘 발라서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감언이설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에 지나, 몰리(루니 마라),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는 그를 말린다.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턴은 멈추지 않고 결국 살인까지 가게 되고, 그토록 멀리해 마지않았던 아버지와 기인이라는 존재에 다가가는 운명에 종속되어 버린다. 주변에서 들려주는 조언은 그를 올바르게 인도할 기회를 줬지만 스스로 기인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는 갱생의 겨를을 손수 차버렸다.
스탠턴도 알고 있기에 운명을 수긍하며 웃는다. 우리는 그런 웃음은 짓지 않도록 하자.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