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이민자들의 영화다.

어떤 영화는 공통적이다. 사랑, 가족, 슬픔과 연대, 투쟁과 성취.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반대로 어떤 영화는 국적을 지니고 있다. 특정 국가의 문화와 역사가 서린 작품은 자국민의 감상과 외부인의 감상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지구 반대편 관객이 한국의 민주화 역사와 한의 정서를 완벽히 체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역적인 영화와 보편적인 영화. 두 축 사이에 미묘하게 걸쳐 있는 영화들이 있다. 나고 자란 곳은 타지임에도 부모의 국가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 그래서 두 국가에 모두 걸쳐 있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사람들. 최근 아카데미를 비롯해 전미에 큰 파장을 일으킨 댄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도 이런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자에게는 5-10년에 한 번꼴로 볼 수 있는 사촌들이 있다. 세 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를 제외한 두 고모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각기 일본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큰고모의 두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작은고모의 자녀 역시 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기자에게 이민자 2세 가정의 삶을 아주 옅게나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피지에서 나고 자란 친한 후배가 술에 취해 울먹이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0)를 보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살면서 이토록 눈물을 흘린 영화는 <미나리>가 유일했다고 고백했다. 그 영화를 통해 한국인 하나 없는 낯선 땅 피지에서 오로지 가족만 의지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렸다고 했다. 공통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인 영화. 어쩌면 이민자와 그 가족들의 영화는 보편의 영화가 가닿을 수 없는 지점까지 손을 뻗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이번 4월 19일 앤소니 심의 <라이스보이 슬립스>(2022) 개봉 소식을 접하자마자, 기자는 문득 그 후배를 떠올리곤 부디 그 영화를 보라고 연락을 건넸다. 그는 이미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최근 <미나리>부터 시작하여 <푸른 호수>(2021)를 거쳐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패스트 라이브즈>(전생, 2023)까지 한국계 미국인, 교포 2세 감독들의 작품이 영화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자전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이고, 또한 보편적인 감정을 환기한다. 부모의 땅과 자신의 세계 간의 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여정. 국내 어떤 영화도 대변하기 어려웠던 이민자들의 삶을 이들의 영화는 덤덤하게 그려낸다. 더 많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지금부터 그들이 담백하게 풀어낸 따뜻한 이야기들을 알아보자.


<미나리> dir. 정이삭

2022년 아카데미를 휩쓴 작품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면 2020년 아카데미의 화제작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였다.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파란을 일으켰다. <미나리>의 돌풍은 단순히 윤여정, 스티븐 연, 한예리 등 배우들의 호연, 정이삭의 빼어난 연출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조망 받지 못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자전적인 시선에서 다룬 작품은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미나리>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는 한국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던 시기다. 그들은 세탁소, 공장, 농장 등에서 일을 하며 고된 육체노동과 인종차별에도 굳건히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병아리 감별사를 했던 사실에서 영감을 받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나간다. 그래서인지 정이삭의 분신은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이 아닌 병약한 아들 데이비드(앨런 김)이다. 그 때문에 <미나리>는 경제적인 성공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길 원하는 이전 세대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주를 이룬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국에서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는 데이비드에게 외계인처럼 보인다. 동시에 데이비드의 교회 친구들은 그의 외모를 보곤 외계인을 본 것처럼 낯설어한다. 성공을 꿈꾸는 제이콥과 할머니를 어려워하는 데이비드는 실패와 불화를 겪지만, <미나리>는 그 끝에 남겨진 한 줌의 희망을 선사한다. 고된 삶을 견딘 이민자들의 삶에 정이삭 감독은 작은 구원을 이뤄낸 것이다.


<푸른 호수> dir. 저스틴 전

한국계 미국인 배우 겸 감독인 저스틴 전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에릭 요키를 연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푸른 호수>(2021)는 이민자 가족의 강제 추방 문제를 집요하게 다룬다. 한국에서 입양되어 미국에 정착한 안토니오 르블랑(저스틴 전)은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 그녀의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토니오는 캐시의 전 남편인 경찰 에이스(마크 오브라이언)과 그의 동료에 의해 억울하게 폭행당한 뒤 강제 연행당한다. 평소라면 훈방 조치되어야 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지고, 그에게는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안토니오는 평생을 살아온 미국에서 하루아침에 강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푸른 호수>에서 등장하는 안토니오의 모국 한국은 고향이 아니다.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땅 미국에서 내쫓겨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외지일 뿐이다. 한국은 그의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어떤 인간관계도 남지 않은 척박한 곳이다. 이민 단속 정책의 맹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동시에 기존 이민자 영화들이 견지하는 모국에 대한 태도에 반기를 드는 <푸른 호수>는 매우 논쟁적인 작품이다. 시종일관 불안한 카메라가 안토니오를 비출 때, 관객들은 그의 생존과 삶의 안위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작년 전미를 흔들었던 애플 tv 시리즈<파친코>(2022)의 일부 에피소드에서 인정받은 저스틴 전의 연출력이 <푸른 호수>에서 이미 싹을 보였다.


<라이스보이 슬립스> dir. 앤소니 심

1990년대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소영(최승윤)에게는 어린 아들 동현(도현 노엘 황)이 전부다. 소영은 공장에서 백인 남성들에게 희롱당하며, 동현은 초등학교에서 백인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며 고된 삶을 살아가지만, 두 모자에게는 서로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동현(이든 황)은 장성해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동현과 소영의 관계는 이전만 못하다. 동현은 친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만, 소영은 그에 대한 언급을 자꾸만 피한다. 소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친절한 남자 사이먼(앤소니 심)이 점차 맘에 들지만, 동현은 사이먼이 썩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던 소영은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결정적 순간 이후, <미나리>와 <푸른 호수>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공간이 등장한다. 바로 한국이다. <미나리>에서는 할머니 윤여정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언급되고, <푸른 호수>에서는 쫓겨나가는 공포의 공간이었던 한국이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는 카메라에 가득 담긴다. 강원도의 어느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소영과 동현은 두 모자의 뿌리,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미나리>가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이민자들에 대한 구원을, <푸른 호수>가 진정한 고향이 된 미국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을 다뤘다면,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낯선 땅 한국을 가슴으로 품으며 자라나는 한 소년의 성장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가득 담아낸다. 두 세대, 두 국가를 하나로 이어 나감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이 여정의 끝에서 두 사람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