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꾸며진 영화다. 주인공 새미 파벨만스는 화목한 유태인 가족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영화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어릴 때부터 필름 영사와 편집에 익숙했고 세상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법, 영화는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등 예술에 대해서 고민하며 자랐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스필버그 감독 자신이 겪은 실제 이야기들이다. <파벨만스>가 위대한 이유는 50여 년 넘게 할리우드 최고의 상업영화 흥행 감독으로 성공한 그가 자신의 감독 인생에 스스로 헌정을 보내는 방식으로 자전적인 영화를 내놓았고 그것이 곧 평생동안 그가 고민한, 영화와 예술에 관한 가장 사적이면서도 가장 숭고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세계와 개인사에 대해서 궁금해질 것이다. 여기 정리한 내용들은 영화의 이해를 돕는데 유용한 정보들이다.


제목이 스필버그가 아닌 ‘파벨만스’인 이유?

파벨만스 가족

<파벨만스>는 스필버그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허구적인 이야기가 가미된 극영화다.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쓴 토니 커쉬너는 스필버그 감독의 성이 유태어로 '연극'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데서 착안, 우화 ‘fable’를 뜻하는 독일어 ‘fabel’을 따서 실제 성이 아닌 ‘파벨만스’라는 가상의 성을 만들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은 약간의 각색이 가미된, 스필버그 감독 본인의 자전적 경험이 맞다.


왜 이제서야 자기 경험을 영화화했을까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엄마 미치는 스필버그의 어머니처럼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고

폴 다노가 연기한 버트 역시 스필버그의 아버지처럼 공학자로 묘사된다.

스필버그 감독은 지난 50년 넘는 감독 생활을 하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와 사이보그, 역사적인 실존 인물과 영웅들, 허구의 인물은 물론 가상세계까지도 영화의 소재로 다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어 영화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유태인으로서 겪은 유년시절의 경험을 부분 부분 떼다 <E.T.>, <쉰들러 리스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우주전쟁> 등의 작품에 녹여내긴 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무래도 스필버그 감독의 성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평소 “내 삶이나 가족과 가까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걸 선호하지만 우리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자신이 만드는 수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가족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음을 시사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2017년에, 아버지가 2020년 세상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자전적 경험을 꺼내기로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의 보이 스카우트?

<파벨만스>

스필버그 감독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할리우드의 보이 스카우트, 오락의 신, 블록버스터의 창시자 같은 수식어로 꾸밀 수 있을 것 같다. 스필버그 감독이 <죠스>를 만들기 이전에는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았다. 영화의 제작 규모나 배급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감독이며 큰 성공을 거뒀지만 구설수에 오르거나 스캔들을 만들어내지 않은 바른 이미지가 강하다.

새미가 단편 영화를 찍는 장면들. 아래 전쟁 단편 영화는 스필버그가 찍은 '원본'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스필버그 감독이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경험하게 된 것은 실제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장점’ 뱃지를 얻기 위해서 친구들과 단편 영화를 제작해봤기 때문이다. 특수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막대기로 모래를 흩뿌려서 먼지를 만들어내는 법이나 가짜 피투성이 효과를 내는 법 같은 걸 고안해서 찍기도 했다고 한다. <파벨만스> 초반부, 새미 파벨만스가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을 비롯해 영화 곳곳에서 영화를 만드는 장면들은 스필버그 감독 본인의 실제 경험인 것.


스필버스가 바라본 스필버그

스필버그 감독은 1999년 뉴욕타임즈와의 인뷰에서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 적 있다.

“나는 믿음직하고 충실한 사람이다.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다정하고 예의바른데 그렇다고 늘 친절하거나 고분고분한 타입은 아니다. 어쩔 땐 명랑하지도 않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고 프로듀서로서는 제법 검소한 편이고 전혀 용감한 사람은 아닌데 항상 깨끗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다.”


돈 잘 버는 감독

<파벨만스> 촬영 현장의 스필버그

스필버그 감독의 이미지는 돈을 매우 잘 버는 흥행 감독이라는 점이다. 감독이 실제로 얼마나 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필버그 감독만의 독특한 수익 계산법은 있다. 그는 다른 감독과 달리 연출료를 받지 않는 대신 영화 흥행 수익의 10% 가량을 연출자이자 제작자로서 가져가는 것으로 계약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서 영화의 부가판권이나 다양한 머천다이즈(MD) 상품 수익 등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 수익은 상당할 것이다. 일례로 전 세계 9억 5천 1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쥬라기 공원>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약 2억 9천 4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자산 규모는 30억 달러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앞자리만 두고 내림을 해도 한화로 3조 가량이다.


가정적인 아버지의 아이콘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인디아나 존스-마궁의 사원>에 출연해 결혼까지 이른 배우 케이트 캡쇼는 스필버그 감독과 결혼하면서 유태교로 개종까지 하게 되는데 그녀가 세운 결혼 원칙 중 가장 첫 번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에게 헌신할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필버그 감독은 촬영장이나 비즈니스 자리에 있을 때에도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챙긴다고 한다. 스필버그 감독의 장기는 맥도날드식 에그 머핀 만드는 법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대가족이다. 첫번째 부인 에이미 어빙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케이트 캡쇼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그리고 스필버그 감독과 케이트 캡쇼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 두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입양해서 모두 아홉 식구가 살고 있다.

태어나보니 나의 아빠가 스필버그라면 아이들은 어떤 유년시절을 보내게 될까? 스필버그 감독의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영화 촬영장을 놀이터처럼 인식하며 오갔고 <캐치 미 이프 유 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스필버그의 취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멋진 인생>, <아라비아의 로렌스> <대부>, <벤허>, <스팔타커스>

스필버그 감독은 <멋진 인생>(1946)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대부>(1972)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벨만스>에서 새미 파벨만스는 자신의 방에 <벤허>(1959) <스팔타커스>(1960) 같은 영화의 포스터를 걸어 두었으며 친구들과 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함께 보러 간다. 존 포드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에도 등장한다(그리고 모 유명 감독이 그 역할을 맡았다). 또 스필버그 감독은 미국의 유명한 화가이자 삽화가 노먼 록웰을 좋아해서 그의 작품을 수십 점 소유하고 있으며 자택과 사무실 등에 작품을 걸어 두고 있다고 한다. 노먼 록웰은 미국 중산층의 삶과 풍경을 그리기로 유명한 작가다. 또 스필버그 감독은 시각적으로 예리한 기억력을 갖고 있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1년에 100편 이상의 영화를 꾸준히 보는데 영화들을 프레임 단위로 기억한다고.


기차와 거장의 충격

새미는 <지상 최대의 쇼>를 보며 영화라는 매체에 빠진다.

<파벨만스>에서 새미 파벨만스는 어린 시절에 극장에서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1952)라는 영화의 기차 충돌신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강렬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전전하다가 만나게 된 존 포드 감독과의 독대가 그를 진짜 감독으로 성장하게끔 해준 또 다른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존 포드 감독은 새미 파벨만스에게 영화에서 지평선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실제로 스필버그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공교롭게도 세실 B. 드밀 감독과 존 포드 감독은 할리우드에 맥카시 광풍이 불어 닥치던 시기에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