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편에서는 타 OTT 플랫폼에는 없지만,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할 수 있는 2000년대 이후의 영화를 소개했다. 네이버 시리즈온에서는 현재 개봉작이나 독립영화도 여럿 서비스하고 있지만, 다른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숨은 보석 같은 고전영화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넷플릭스에도, 왓챠에도, 티빙에도, 웨이브에도, 디즈니+에도, 쿠팡플레이에도 없고 오직 네이버 시리즈온에만 있는, 넷없왓없티없웨없디없쿠없시있(..) 고전영화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3. 4. 24 기준으로 작성했으며, 플랫폼별로 영화의 업로드 유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 1960)
‘아파트’(The Apartment)라는 단순한 원제와는 다르게,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라는 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영화의 맛을 조금 더 맛깔나게 살렸다. 1960년작인 만큼 흑백 영화지만, 재미의 색채는 요즘의 영화보다 덜하지 않다. 영화는 느슨하지 않고, 스토리는 흡입력 있고, 무엇보다 재밌다.
한국어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영화는 아파트 열쇠를 빌려주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그는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 단위로 빌려주며, 본인은 집 밖에서 떠돈다.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된 요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주인공은 60년 빠르게 ‘공유 경제’를 실현한 인물인 셈이다. 다만, 집을 빌려주는 대가를 금전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라쇼몽>(羅生門, Rashomon, 1950)
누구나 다 이기적이야. 부정직하고 변명하기 바쁘지. 그 도적도, 그 여자도. 그 남자도. 그리고 너도.
라쇼몽 대사 중
같은 사건, 그리고 각기 다른 관점.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중에서도 희대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라쇼몽> 역시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감상할 수 있다. ‘라쇼몽 효과’라는 용어는 이 영화로부터 탄생했다. ‘라쇼몽 효과’는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해석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라쇼몽>은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른 진술을 하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영화는 그중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명백하게 밝히지 않은 채 끝난다. 이런 결말은 사건의 팩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관점에 따라 경험은 재구성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누가 이기적인 걸까.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이기적이라고 마냥 매도할 수 있을까.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라쇼몽>이 지닌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진짜’라고 기억하고 있는 사건조차,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과는 멀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샤이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는 이미 봤다면, 스탠리 큐브릭의 또 다른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어떨까.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협회(AFI)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코미디 영화 100편' 중 3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와 함께 스탠리 큐브릭의 ‘미래 삼부작’ 중 한 작품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뒤의 두 작품과는 상반되게,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다. 실제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스탠리 큐브릭의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코미디 영화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한 장군이 망상에 사로잡혀 핵 폭격기를 출격시키면서 시작한다.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러나 영화 속 권력자들은 우스꽝스러울뿐더러,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어 웃음을 자아낸다. 피터 셀러스가 1인 3역을 소화하며 거대한 존재감을 남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여전히 뛰어난 정치 풍자 영화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날카로운 정치 풍자를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웃기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해학적인 대사 한 줄 한 줄에 감탄하면서 보게 될 것.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
<결혼 이야기>의 70년대 버전이라고 할까. 아니, <결혼 이야기>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2019년 버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더스틴 호프만, 메릴 스트립의 젊은 시절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이혼과 양육권 분쟁을 다룬다. 지금 이 영화를 보면 스토리가 다소 새삼스럽지 않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만, 이 영화가 나온 시대가 70년대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 소재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애를 키우는 일이 단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점차 형성되고 있었다.
가정은 내팽개치고 사회적인 성공만 좇았던 (테드) 크레이머, 그리고 경력이 단절된 채 가정주부로 살다가 자신을 찾겠다며 홀연히 떠난 (조안나) 크레이머. 영화는 그 둘 중 누가 더 잘못했냐, 혹은 누가 더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하냐를 따지며 개인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 영화가 아직까지도 고전 명작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제5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색상을 수상하며 5관왕에 이르기도 했다. 이 영화는 흥행과 작품성을 고루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 1953)
봉준호 감독이 ‘인생 영화’ 중 하나라고 밝혔던 <공포의 보수>. 봉 감독은 2019년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이라 말하며 경의를 표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은 서스펜스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당시 알프레드 히치콕의 라이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클루조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자 봉준호가 사랑하는 <공포의 보수>는 쫀쫀한 구성을 통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는 긴박감을 선사한다.
러닝타임 내내 쫄깃한 서스펜스를 즐기고 나면, 그제야 영화가 전하는 사회적인 목소리를 깨닫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자본주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읽힌다. 영화는 ‘과연 금전적인 보수가 인간성의 파괴마저 상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