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2019)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이병헌 감독이 4년 만에 신작 <드림>으로 돌아왔다. 4월 26일 개봉하는 영화 <드림>은 개념 없는 전직 축구선수 홍대(박서준)와 열정 없는 PD 소민(아이유)이 집 없는 오합지졸 국대 선수들과 함께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여기에 김종수, 고창석, 정승길, 이현우, 양현민, 홍완표, 허준석 등 이른바 '이병헌 사단'으로 불리는 조연들이 홈리스 축구단으로 대거 출연한다. <드림>의 초반부는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이 쉴 새 없이 터지는 캐릭터들의 티키타카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인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홈리스 월드컵을 통해 한 번 더 일어서려는 의지를 다지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기어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장 안에 있지만, 사회에서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 좋겠다는 이병헌 감독. 처음 홈리스 월드컵을 방송에서 접하고 꼭 필요한 이야기이기에 영화로 만들어 전하고 싶었던 그는 투자사를 찾지 못해 10년 간 시나리오를 묵혀둬야 했다. 영화 <스물>(2014)보다 먼저 쓴 시나리오였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이 감독의 뚝심은 아이유라는 톱스타 캐스팅으로 이어지며 한 층 더 사이즈를 키운 영화로 탄생했다. <드림>의 이병헌 감독을 만나 영화와 그의 영화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극한직업> 이후 4년 만의 복귀입니다. 2019년은 한국 영화계로서 최고의 활황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죠. 그때와 비교해서 상황이 좋지 않은데, <드림> 개봉을 앞두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질문을 좋았던 시절에 받았으면 거만하게 대답했을 텐데요(웃음). 지금 한국 영화계 상황이 많이 안 좋잖아요. <드림>이 구원투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아니 조금이라도 도움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드림>은 실화 바탕 영화죠. ‘홈리스 월드컵’은 처음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2010년에 홈리스월드컵에 한국이 첫 출전했어요. 이듬해에 그걸 20~30분 정도 분량으로 소개해주는 방송을 봤습니다. 그걸 보고 제작사 대표님이 이걸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주셨어요. 저도 그 방송을 보면서 감동을 좀 받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아 이런 사연들이 있는데, 전혀 몰랐구나 하는 미안함도 있었죠. 그렇다면 나는 분명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외진 곳으로 느껴졌지만 분명 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쉬운 형태의 대중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영화에 실존 인물이나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나요?
홈리스 월드컵 경기 내용은 100% 실제 내용을 그대로 썼습니다. 브라질 용병을 쓴 부분도 다 실화와 같아요. 다만, 캐릭터들은 영화적으로 창작했습니다. 물론 제 마음대로 만든 건 아니에요. 「빅이슈」(홈리스들이 판매하는 잡지-편집자 주) 도움으로 노숙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아마 수십, 수백 명은 만나 인터뷰를 했을 거예요. 그런데 노숙인들 사연이 우리가 흔히 드라마나 뉴스, 영화에서 접하는 케이스들이더라고요. 뭔가 굉장히 다이나믹하다거나 그렇지는 않았고, 다들 비슷비슷했어요. IMF나 건설현장, 가정불화 등등이죠.
<극한직업>에서 허구의 이야기로 천만감독에 등극하셨는데, 바로 다음에 실화로 영화를 만드신 거예요. 실화의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처음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모든 것이 있는 거 같아요. 이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알려드리고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많은 분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가장 쉬운 형태의 대중영화를 만들려고 한 거죠. 거기에 실화라는 바탕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을 설득해가는 지난한 과정들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걸 영화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전하겠다는 것에 의외로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럴 때 제게도 동기부여가 되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 실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제작까지 10년이 걸렸다고 알려져 있더라고요. 부침이란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저에게는 그렇게 감동적이고 꼭 필요한, 전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른 분들에게는 당위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저는 이게 시나리오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투자나 캐스팅에서 설득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받아주는 쪽에서 안 받아주니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거고요.
10년 전 시나리오 초고와 최종 시나리오가 많이 달라졌나요?
시나리오는 제가 원했던 대로 초고가 나와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실화이기도 하고 예민한 부분도 있고 해서요. 다만 코미디 부분은 저 혼자 판단할 수 없어서, 초고 나오고 나서 스태프들과 회의를 많이 했어요. 모니터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는 작업을 많이 했죠.
웃자고 만든 코미디 영화에서 이런 질문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노숙자는 선하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불편해할 관객도 있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 작업에서 이런 점도 고려하셨는지, 만약 고려하셨다면 어떤 장치로 극복하려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노숙자는 선하다’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실제 노숙인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해보면 다 비슷한 사연이에요. IMF, 빚 보증, 건설현장 사고, 가족과의 불화, 가정환경 등등 다 비슷하더라고요. 다만 저는 그런 사연들이 피해자로 보이는 건 전혀 원하지 않았어요.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내는 선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다만, 노숙인들이 월드컵으로 출국한다는 걸 편견으로 볼 분들도 있으실 테고, 소외계층을 다루는 점에 있어 지루하게 느낄 분들도 있을 거 같아서 코미디 요소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희극적으로 갈 수는 없으니, 그걸 조율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노숙인 관련 취재를 하시면서 어떤 점들이 인상적이었나요?
말씀드린 대로 아주 특별한 사연들이 아니라는 거죠. 노숙인이라고 하면 길거리에 누워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사실 그렇게 길에 계신 분들은 전체 노숙인의 5%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시설이나 쪽방 등에서 지내시는 분이 많아요. 또 아무래도 과거의 상처가 있는 분들이다 보니 조심스럽게 물어가면서 저도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 거죠.
최근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나와요. 안 여쭤볼 수 없는 질문이죠. <드림>은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와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드림>을 본격 스포츠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요. <리바운드> 같은 영화와 차별점이 있다면, 스포츠는 승리가 목표잖아요. 왜, 어떻게 승리하는 것에 대한 목적을 갖거나, 어느 정도 위치에 있으면서 좀 더 위를 향해 가는 영화들이 있다면, <드림>은 조금 뒤처진 곳에서 가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승리, 1승, 한 골보다는 우리도 경기장 안에 있다, 그리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느낌? 그러니까 영화에 나오는 일명 낙오자죠, 노숙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 차별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초반부는 이병헌 감독의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감독 개성보다는 보편성이 느껴져요.
맞습니다. 사실 뒤에 홈리스월드컵 이야기는 정해져 있잖아요. 꼴찌팀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세계인들의 모습도 실제 상황이고요. 여기서 제가 뭔가 저만의 기교를 부려서 끼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드림>은 이병헌 감독의 영화라는 걸 안 들키길 바랐어요. 어렵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저를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되었고요. 전형성을 가져가자고 생각했죠. (전형성은) 재미있으니 많이 사용한 거잖아요. 익숙함이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는 식상하다는 느낌을 줄 수는 있지만, 온 가족이 볼 때는 편안하다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배우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축구단의 출전기를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 PD 소민 역은 아이유가 맡았죠. 캐스팅 비하인드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사실 소민은 홍대보다 나이가 많은 설정이었어요. 캐스팅 회의를 하는데, 스태프 한 명이 리스트업 명단 제일 위에 아이유 씨 이름을 적어둔 거예요. 어, 난 아닌데, 왜 올렸니? 했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심어린 팬심으로요”라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수긍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미친 척 하고 연락해 보라고 했죠. 아이유 배우가 한다면 시나리오까지 수정하겠다고요.
어떻게 보면 소민 역에 꼭 아이유 같은 톱스타가 아니어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저는 아이유 배우가 <드림>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알아준 것 같아서 기뻤어요. 타이밍이 맞은 거 같기도 하고요. 배우로서 이런 역할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유 배우 출연이 확정되면서 영화 사이즈가 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웃음).
감독님도 아이유 팬이셨나요?
<나의 아저씨>(감독 김원석, tvN, 2018) 너무 좋아하고요. 노래도 너무 좋아하죠. 가사도 정말 마음에 들고요. 음, 한국 사람인데 당연히 팬 아닌가요(웃음)?
아이유, 박서준과 작업해보니 어떠셨어요?
준비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평소에 제가 누구에게 말 거는 성격이 못되거든요. 배우도 잘 못 챙기는 편이고요. 그런데 일적인 이야기는 해야 하잖아요. 감독이니 디렉션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아이유 배우나 박서준 배우는 너무 잘해서 디렉션할 일이 정말 많지 않더라고요. 초반에 홍대와 소민의 티키타카 씬에서 속도감이 조금 안 맞아서 그때 디렉팅한 거 말고는…. 와, 이 사람들 참 잘한다. 이런 느낌이었어요. 물론 고민 많이 해서 준비해 왔겠지만, 현장에서는 되게 설렁설렁 하는 거 같으면서도 금방 해내니까요. 되게 똑똑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홍대 캐릭터가 특이합니다. 쪽방촌에도 혼자 가기도 하고요. 어떻게 만든 캐릭터인가요?
영화적으로 창작된 캐릭터죠. 홈리스 사연을 이야기하려고 영화를 시작한 건데, 대중영화로서 재미있는 장치도 필요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조연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주연 캐릭터의 이야기를 잡은 케이스죠. 홈리스는 경기장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이에요. 대신 홍대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울타리 쪽으로 밀리고 있는 사람이고요. 그러면 홍대는 울타리 밖의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거잖아요? 경기장 안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편안한 캐릭터로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말씀하신 조연들이죠. 이른바 ‘이병헌 사단’이 대거 노숙인들로 출연했습니다.
사단은 좀 부담스럽네요. 되게 큰 규모거든요(웃음). 뭐 저는 어떤 무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는 사람이고요. 말씀드렸듯이 일단 노숙인들의 사연은 제가 취재했어요. 그리고 가장 흔한 사연을 가려냈죠. 비슷한 사연을 만들면서도 개별성도 중요했어요. 너무 비슷하면 안 되니까, 특징을 다르게 한다거나, 어느 한 쪽이 도드라보이지 않게 페이지 계산까지 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유, 박서준 배우가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에 동의해줘서 함께 찍을 수 있는 영화였지만, 경기장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려면 이미지 캐스팅이 중요하죠. 뭐, 조연 배우들이 노숙인 이미지 같다는 건 아니고, 조금 있나요?(웃음)
사실 연기적 신뢰에 있어서는 더 이상 따질 부분이 없었어요. 환동 역의 김종수 배우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다 소화해내는 분이라 더 말할 게 없었고요. 고창석 배우가 맡은 효봉 역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많이 울었죠. 딸을 떠나보낼 때 모습도 있고요. 범수 역을 맡은 정승길 배우는 시나리오 쓸 때 애정이 많던 캐릭터였어요. 유일하게 멜로 서사를 담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인선 역의 이현우 배우는 안아주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어서 캐스팅했습니다. 축 쳐져 있던 사람이 성장하면서 이마를 까고(?) 얼굴을 드러냈을 때 기분 좋으면 좋겠단 생각으로요.
뭐 다른 분들도 정말 저랑 오래된 친구들이에요. 12년지기들도 있고요. 뭐 그들을 그리 애정하는 것도 아닙니다(웃음). 다만 독립영화를 힘들게 같이 해서, 뭔가 고등학교 동창 같은 느낌이 좀 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연락 잘 되고, 개런티 상승폭이 납득할 정도고요(웃음).
<드림>의 유일한 멜로 라인이 실제 부부라는 점도 흥미롭더라고요. 캐스팅 제안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사실 되게 실례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부부라는 관계가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배우 입장에서도 그런 제안을 받으면 우선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부터 생각할 거 같아요. 어느날 정승길, 이지현 부부와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을 봤어요. '치맥'하고 헤어지는데, 두분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쇼크를 받았죠. 손을 잡고 가더라고요. 와, 저렇게 오래된 부부가 어떻게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거지(웃음)? 그 뒷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대학로 거리에 10년, 20년 된 부부가 손을 잡고 간다니! 제 욕심에 요청을 드렸죠.
답변이 바로 왔어요?
정승길 배우가 좀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빠른 시간안에 결정해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죠.
초반에 잠깐 홍대의 라이벌로 등장한 강하늘 배우가 고생이 많았다고요.
그냥 계속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데요. 캐스팅 중이기도 했고요. 어느날 문득 홍대랑 나란히 달리는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돌발적으로 연락해서 “한번 해 볼래?”라고 했더니 너무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축구는 하나도 못한다고요. 그래서 “못 해도 된다. 그냥 뛰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죠(웃음). 촬영장에 갔더니 축구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를 보더니 “축구 안 한다면서요!”라고 하길래 “감독 말을 믿으면 어떡하니”라며 웃고 말았죠. 촬영 다음날 근육통 걸리고 엄청 힘들었다고 해서 좀 미안했죠.(웃음)
축구를 하는 장면이 많다 보니 어려움도 컸을 거 같아요.
촬영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 훈련을 했어요. 스포츠 장면이 많아서 액션영화보다는 어려울 거란 짐작은 했죠. 그런데 많이 준비를 했음에도 공은 통제가 안 되더라고요. 미리 합도 짜보고 사전에 만든 영상을 보면서 헤매지 않게 준비해서 현장에 갔음에도, 공은 야속하게 통제가 너무 안 되는 거죠. 어쩌겠어요. 조마조마한 마음을 견뎌내는 거 말고는 없죠.
영화 외로 힘들었던 부분은요?
비가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이 왔어요. 7월에 한달 내내 비가 와서, 일주일에 하루 촬영을 나갈 정도였죠. 그 외에는 코로나19 때문인데, 이건 뭐 다른 영화들도 힘들었으니 동정심을 유발하긴 좀 그렇네요. 다만,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일정이 연장되니 예산이 늘어나고, 여유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마지막 해외촬영이 남은 거고요. 가장 중요한 장면을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찍어야 했어요. 준비는 많이 했는데 정말 못 찍을 것 같았거든요. 물리적으로요. 스태프랑 배우들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는데, 아 글쎄 저는 연출이다 보니, 현장에서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잖아요? 수정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개입하는 순간 다시 합 맞추고, 카메라, 조명 세팅 다시 하면 몇 시간이 지나가요. 그래서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했어요. 그게 가장 힘들었네요.
상황상 수정도 못하고 오케이를 외쳐야 하니 힘드셨겠어요.
당연히 아쉬웠죠. 하지만 아쉽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죽을 때까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아, 부다페스트에서”이러면서 죽을 지도 몰라요(웃음).
지금까지 말맛 살아있는 코미디 영화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셨어요. 하지만 감독으로서 영화가 거듭될수록 양질의 코미디씬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클 것 같아요.
양질이나 조금 더 나은 코미디, 대사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은 늘 있었죠. 그런데 이 작품은 <스물> 전에 시나리오를 써둔 거예요. 10년이 좀 넘은 거죠. 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네요(웃음).
말맛을 살리는 대사들은 어디서 힌트를 얻으시나요? <타짜>(2006) 최동훈 감독처럼 지인들의 재치있는 말투에서 차용하는 건지, 아니면 감독님 속의 또 다른 자아가 나오는 건지요?
되게 다양해요. 주워듣고 주워 담는 것도 정말 많고요.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에 그런 생각들이 잡히기도 하고요. 열어두고 제작사들에서 아이템을 받기도 합니다. 당연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라면 저 장면에서 어떻게 표현했을까 고민도 하고요.
사실 수정 작업을 굉장히 세세하게 하는 편이에요. 최종 시나리오보다 초고는 훨씬 더 길어요. 거기서 걷어내는 수정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그러면서 시나리오가 발전되는 편입니다. 한 번에 되는 천재는 절대 아니고요(웃음). 수정하는 과정, 그 시간이 좀 많습니다.
시나리오도 많이 쓰셨고, 각색도 많이 하셨어요. 시나리오 쓸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편인지, 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디어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에요. 제 오리지널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스물>은 제 오리지널이지만. 사실 <드림>도 특별한 셀링포인트나 한 줄로 내세울만한 설정은 없어요. 보통 사람의 이야기? 아이디어가 많이 부족하니, 아이템을 많이 받으려고 제 자신을 좀 열어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드림>에서는 이게 어떤 영화가 되었으면 좋을까라고 물어봤을 때, 관객들이 필요한 영화네, 의미 있는 영화네 라는 확신이 있어야 작업한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재미 이전에 그런 것들이 저에게 있어야 한다는 확신 같은 거죠.
그런 것들이 <드림>에서는 어떻게 작용했나요?
코미디가 어디까지 허용이 가능한가, 그 점을 많이 고민했어요. 전체 리듬을 놓고 봤을 때 이건 재밌는가 하는 그런 리듬에 대한 고민이었죠. 저는 만족스럽게 했지만, 후반 작업에서는 이게 정말 재미있는 리듬을 가진 코미디 영화인가, 그런 대중영화인가, 그렇다면 전체 코미디의 리듬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 것인가를 많이 모니터했습니다.
코미디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루종일 웃기는 생각을 한다는 장점이 있거든요. 제가 습작할 시절에 호러 장르를 써봤는데요, 어우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루종일 사람 죽이는 것만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런 이미지를 계속 떠올려야 하다 보니까, 제가 보통 밤에 작업을 하는데요. 자꾸 뒤돌아보고, 샴푸하다가 눈을 자꾸 뜨고(웃음). 이렇게 어떻게 살지 하다가 하루는 코미디를 썼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안 그래도 제가 좀 우울한 편인데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또 하나 코미디의 매력은 즉각적인 반응이 온다는 거예요. 물론 코미디 장르는 평가가 박하다는 말도 많죠. 아픈 만큼 쾌감도 크니까요. 뭔가 대단한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영화는 그걸 잘 하는 감독들이 하면 되는 거 같아요.
작업하다 보면 마음이 힐링 되나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힐링이란 단어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드림> 최종믹싱본을 보면서 힐링 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닭강정>이란 영화는 얼마 전 마쳤어요. 다음 작품은 드라마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니라서 제작사랑 기획회의를 좀 거쳐야 할 것 같아요.
두 작품 모두 감독님의 오리지널이 아니네요.
그렇네요. 그런데 그 다음 작품은 제 시나리오로 할 겁니다(웃음). 엄마와 딸이 나오는 가족의 이야기인데요, 소소하면서 한 가족의 일대기라고 해야할지…. 제가 보기에도 그 시나리오는 좀 잘 썼다고 생각해서,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드림>이 관객들에게 어떤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세요?
혹시 살아가며 낙오하더라도 경기장 안에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직 경기를 뛰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걸요. 그 경기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생각을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쉽게, 편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제가 생각한 감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된다면, 그것 그대로 의도했던 대로 관객들도 느끼고 채워지지 않을까 싶어요.
혹시 영화 제목을 빌려 감독님의 ‘드림’이 있다면요?
당장 눈앞에 있는 <드림>이 드림인데, 관객수도 물론 중요하죠. 투자금 회수란 게 너무 필연적인 거니까요. 영화산업에 종사하면서 그건 너무 당연한 거죠.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보통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였다고 느껴준다면 정말 감사할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드림>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드림>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도 좀 지친 감이 있었거든요. 요즘은 장르물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거기에 눈이 익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좀 편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었죠. <드림>이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봐도 좋을, 그런 편안한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한국 영화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며 지친 분들 많을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응원이 되는 의미있는 영화로 남기를 바랍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