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의 신작 <드림>이 4월 26일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국내 역대 박스오피스 2위의 자리에 오른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돌아왔다. 박서준, 아이유라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 캐스팅으로 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 <드림>은 이병헌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평범하지 않은 웃음 포인트로 관객을 웃게 만든다. 대체 어떤 영화에서 박서준, 아이유 두 배우가 손가락 욕을 주고받는 장면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외의 코믹함과 페이소스를 전해주는 <드림>만의 독특한 웃음과 감동 포인트를 정리했다.
국내 유일 천만 흥행 코미디 <극한직업> 감독 작품
이병헌 감독은 웃기는(?) 감독이다. 한국 영화 극장 개봉 역사상 코미디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사례는 <극한직업>이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극한직업>이 흥행 1위인 <명량>보다 수치가 앞선다고도 한다. <극한직업>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마포서 마약반 형사들의 잠입 수사 겸 직장인 부업 성공기를 다뤘다면, 이번 신작 <드림>은 진지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꽤 오랫동안 역사를 유지해온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드라마틱한 출전기는 진짜 이야기다.
실존 인물들이 살아온 궤적을 다뤄야 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얼마나 관객을 웃길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병헌 감독은 2017년 이후 아무런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있던 자신의 SNS에 최근 개봉을 앞둔 심경을 올리기도 했다. <드림>이 마냥 웃기기만 하는 영화가 아닌 데도 어느새 대중은 <극한직업>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것에 대해 감독 스스로 긴 소회를 밝혔다. 그렇다. <극한직업>은 <드림>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꽤 중요한 비교 대상이다. 왕갈비 통닭 같은 웃음 포인트가 이번에도 등장하게 될까. 영화가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상당한 폭소가 터진다. 타율이 꽤 좋은 웃음 포인트의 상당수는 배우들의 발랄한 연기에서 비롯된다. 물론 <극한직업>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홈리스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의외로 진지한 면을 갖고 있기 때문.
희망이 한풀 꺾인 청춘도 웃는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괴롭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그 순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이 영화만의 방식은 약간 우회해서 코믹함으로 풀어낸다. 배우 박서준이 연기하는 <드림>의 주인공 윤홍대 선수는 라이벌인 박성찬 선수(강하늘)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다. 홍대는 경기 도중에 어이없는 의도적 실책을 저지른다. 경기 진행과 상관없이 같은 팀 선수인 성찬의 뒤를 무작정 따라 뛰면서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다. 거의 선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황당한 퍼포먼스인데 그게 다 이유가 있다. 홍대의 유일한 혈육인 엄마는 사기 행각을 벌이고 도주 중이다. 도망자의 신분으로 아들을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는 엄마는 홍대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나 다름없다. 희망을 잃고 갈 곳 없이 방황하는 홍대의 복잡한 심리를 어이없는 황당한 상황으로 포장하는 게 이병헌 감독 특유의 연출 터치다.
강하늘과 박서준은 <청년경찰>에서 기가 막힌 호흡을 자랑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박서준은 홀어머니는 모시는 건실한 청년 기준 역으로 등장했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청춘사업에는 매번 실패하는 안타까운 청춘들은 아주 심각한 밀거래 조직과 엮이게 되는데 그 영화에서 두 사람이 보여줬던 관계가 <드림>에서 이스터에 그처럼 등장한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속 청춘들은 성공 경험 없이 허송세월 중이거나 좌절 직전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다. 그런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충만해서 끊임없이 시도한다. <드림>의 홍대도 대단한 인생 역전 스토리를 바라고 홈리스 월드컵 코치 역할을 맡은 게 아니다. 연예계 데뷔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포장지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좌충우돌 팀플레이, 홈리스 월드컵 멤버들의 케미
<드림>의 시놉시스 표현에 따르면, ‘택견인지 축구인지 헷갈리는 실력과 발보다 말이 앞서는 홈리스 선수들의 환장할 팀워크’가 영화 내내 등장한다. 사실상 이들이 축구를 배우고 팀워크를 깨닫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서준, 아이유 두 톱스타가 연기하는 목표 잃은 전직 축구선수 홍대와 열정리스 PD 소민은 주인공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는 인물들이다. 스포츠 성장 드라마라는 장르적 접근을 하게 되면 <드림>은 꽤나 파격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누가 봐도 주인공을 맡아야 할 배우들이 조력자 위치에 서 있게 된다.
홈리스 월드컵의 멤버들을 연기한 고창석, 이현우, 정승길, 김종수, 홍완표 등의 배우들이 사연 많은 홈리스들을 연기한다. 가장 눈에 띄는 역할은 이현우가 연기하는 인선이란 청년으로, 타고난 감각은 있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없는 캐릭터다. 이들은 모두 축구를 하기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홍대와 소민의 진심과 저의가 뒤섞인 진두지휘 아래 하나씩 기술을 습득해 나간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리바운드>와도 캐릭터 설정 전략이 겹치는 부분. 스포츠 드라마 혹은 성장 서사를 만들 때 종종 쓰이는 캐릭터 설정이라 낯설지는 않다.
‘나의 아저씨’ 조나단과 맞붙은 아이유
오직 돈 버는 게 목적인 직업 PD 소민이란 인물은 아이유가 맡았던 작품 캐릭터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거침이 없는 캐릭터가 아닐까. 소민에게는 홈리스 월드컵이 대단한 직업적 성취를 누릴 기회가 아니라 또 하나의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그녀가 무대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보인 <나의 아저씨>의 성공 이후 <브로커>의 연기까지, 한동안은 어둡고 쓸쓸한 청춘의 내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드림>의 소민은 결이 확실히 다르다. 일단 말이 빠르고 사리분별이 정확하며 손해 보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사회생활 만렙 캐릭터다. 아이유의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볼 수 있는 <드림>은 공교롭게도 <나의 아저씨>의 상대 역이었던 이선균이 출연하는 <킬링 로맨스>와 동시기에 극장가에 걸리게 됐다. <드림>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개봉이 4년이나 늦어진 작품이다. 아마도 예정대로 공개됐다면 아이유가 출연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보다 먼저 극장에서 관객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드림>은 배우 아이유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특히 박서준 배우와의 심드렁한 연기 대결은 <드림>의 깨알 같은 볼거리다. <나의 아저씨>의 거품 맥주 논란 장면처럼 일종의 밈이 될 만한 연기 장면도 꽤 많다.
스포츠 드라마의 백미,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은 어떤가.
<드림>을 본 관객들 사이에서 만약 평가가 갈리게 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의견을 달리하게 될 것 같다. <드림>은 앞서도 말했듯 실화가 배경인 영화다. 홈리스 월드컵은 전 세계 약 50개국의 홈리스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축구 대회로, 한국에서는 빅이슈코리아의 주관으로 한국 대표팀들이 출전해왔다. 실제 모델이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각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애초 전문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보여주기가 어려웠을 터. <극한직업>에서 형사들이 좌충우돌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며 팀플레이가 아니라 팀킬(?)을 보여주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드림>의 경기 장면을 좀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몸보다 말이 앞서는, 심각한 상황을 심드렁하게 풀어내는 대사의 맛이 <드림>만의 진짜 웃음 포인트가 아닐까.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