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투 서울> 포스터

입양된 프랑스인 프레디(박지민)는 우연히, 자신이 태어난 한국에 방문한다. 게스트하우스에 불쑥 등장하는 첫 장면처럼, 프레디는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을 한 낯선 인물이다. 프레디에게도 한국은 거듭 마음에 담아둔 곳이지만, 여전히 낯선 곳이다. 한국에 온 김에 생부를 만나지만, 떨어진 시간만큼 거리는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영화 <리턴 투 서울>은 여러 차례 반복되는 프레디의 한국 방문기를 다룬다. 그 과정에서 프레디는 무척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을 담아낸 박지민의 연기는 데뷔작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서있다. 영화가 프레디를 보다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도록 박지민은 데이비 추 감독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으니, 프레디를 향한 '본 적 없는 캐릭터'라는 평가에 큰 지분을 가진 셈이다. 이미 비주얼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그이지만, 영화와 연기은 이번에 새롭게 뛰어든 터. 씨네플레이는 4월 25일, <리턴 투 서울> 주연배우 박지민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지민 배우

먼저 <리턴 투 서울>은 이제 한국 개봉을 하지만, 프랑스에선 개봉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개봉 후 주변 반응은 어떠셨나요?

제 주변이요? 다들… 즐거워했죠, 되게.(일동 웃음)

간단한 말인데 무슨 뜻인지 상상이 되네요.

되게 즐거워했죠 다. 근데 의아하게 즐거워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웃긴 게 지하철 사방에 그 포스터가 붙였었대요. 근데 저도 지하철 타고 다니거든요. 제 삶이 바뀐 것도 아니고, 운전면허도 없어서 지하철 아니면 버스 타고 다니는데, 저는 지하철에서 (<리턴 투 서울> 광고를) 한 번도 못 본 거예요. 포스터가 나오는 날, 제가 문자로 메시지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뭐 어디 역에도 있고, 어디 역에도 있고 하면서. 다들 정말 즐거워하면서, 기쁜 게 아니라 그 즐거운 거죠. 살짝 놀리는 그런 느낌.

<리턴 투 서울>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일화를 들으면,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런 거 고치지 않으면 나는 못한다'라고 딱 얘기했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혹시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서 어떤 부분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나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파트 2에 프레디가 입고 나오는 옷차림이 처음 제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금발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에 몸에 딱 붙는 드레스, 스타킹에 하이힐이었어요. 제가 볼 때는 그게 너무 문제점인 거예요. 그런 의상을 입는 여성이 문제란 게 아니라, 남성이 보는 여성스러움, 여성이 어떻게 입어야 섹시하고 그런 시선이 문제였다고 생각했거든요. 캐릭터적인 부분은 큰 틀은 바뀐 게 없어요. 데이비(감독)가 3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이 스토리가 실제 로르라는 데이비의 친구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데이비한테 이거 이거 고쳐 하는 식은 아니었어요. 제가 데이비랑 원한 작업은 그런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 데이비도 남자잖아요. 영화는 여성 캐릭터가 주연이고요. 모든 게 다 그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니까 어쩔 수 없이 남성의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데이비한테 그랬어요. 너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다. 그 여자가 어떤 감정이고 어떤 상황이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특히 프레디라는 캐릭터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자란 프랑스인이잖아요. 서류상으론. 그래서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 여성으로서 프랑스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은 제가 이해를 훨씬 잘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엄청 고쳤어요, 데이비랑. 다른 예를 들면, 막심이랑 가족이랑 저녁을 먹고 택시를 타는 장면에 대화가 있어요. 시나리오에선 영화보다 대화가 더 길었는데, 프레디가 그래요. 여긴 나한테 나쁜 환경이다, 그러면 막심이 그래요. '내가 너의 왕자님이 돼주겠다'. 자신이 프레디를 보호해주겠다는 대화죠. (그거 보고) 프레디가 절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랬어요). 프레디는 보호받아야 할 나약한 캐릭터, 남자에 의존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길을 지금 헤쳐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냐. 이것도 어떻게 보면 폭력이다, 이런 식의 얘기를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 대화가 없어졌죠.

그러면 그렇게 같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프레디에게 본인이 어느 정도 투영됐다고 생각하시나요?

많이 투영됐어요. 외형도 많이 투영된 게, 프레디 외형 작업을 다 같이 했거든요. 처음에는 데이비가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가 저의 아이디어랑 너무 안 맞는 거예요, 정말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데이비가 제일 처음에 골라놓는 옷을 입어봤는데 제 비전의 그 프레디가 너무 아닌 거예요 그래가지고 제가 그랬어요. 아까 말했던 스커트 그런 거(여서) 나의 프레디는 이 프레디가 아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 옷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왜인지 당연히 다 얘기하고 토론을 했죠. 그래가지고 데이비가 그러면은 같이 그걸 프레디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해가지고 정말 오랜 시간을…. 그래서 (프레디는) 제 자신이 엄청 많이 들어간 캐릭터죠 정말.

<리턴 투 서울>

사실 감독이 '내 영화다'라고 생각했으면은 이렇게 안 할 수도 있는 거를, 같이 만들어가는 선택을 한 거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이 데이비 감독님의 어떤 마인드랄까요, 그걸 되게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해 본 입장에서 감독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귀…, 귀여운?(웃음) 조크예요, 제가 조크 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진짜 귀엽고요. 되게 스마트해요. 정말 스마트하고… 착해요. 그러니까 '저 사람 너무 착해' 그런 게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그런 게 많아요. 우리 그런 얘기 많이 듣잖아요. 저야 데이비랑만 작업해봤으니 다른 영화감독분들이 어떤지 모르지만, 그런 얘기 종종 듣잖아요. 외압적이거나 가학적인 그런 분들이 있다고. 진짜 사회적으로 있는 일도 있고. 근데 데이비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근데 그게 데이비의 장점이고, 스마트한 부분이 가학적이지 않고 이렇게 잘 얘기를 하면서 같이 풀어 헤쳐 나가는 그런 거예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 쉽지가 않잖아요. 저도 원래 비주얼 아티스트거든요. 그래서 제 개인작업을 한단 말이에요. 제가 작품을 만드는데 누가 와가지고 '너 이거 이거 문제점인 거 같아' 그러면 '뭐야 얘?' 막 그러면서 기분이 나쁠 수 있잖아요. 데이비도 힘들어했어요. 저도 힘들었고. 왜냐면 충돌이 처음엔 진짜 많았어요. 막 몸으로 치고받고 싸운 건 아는데 정말 싸우기도 했고, 근데 그럴 수밖에 없죠. 근데 한 번도 데이비를 원망하거나 막 그런 악감정은 없었어요. 우리 둘 다 이 스토리를, 그 영화를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의견을 주고 받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 둘 다 타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셨잖아요. 비주얼 아티스트 작업할 때는 혼자 하는 일이 많은데, 영화는 또 같이 하는 작업이라 큰 경험이었다. 반대로 다 같이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많이 봤다고 얘기를 하셨더라고요.

그게 언어가 관한 거였어요. 충돌이 있던 게 아니라, 영어를 다 잘하셔도 모국어가 아니면은 어쨌든 안 통하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그래서 충돌이라기보다 되게 재미있는 상황이 많았어요. 데이비가 뭐라고 얘기하는데 이게 돌다 보면 얘기가 달라져서 저쪽에선 딴 얘기하고 있고. 그리고 또 통역할 시간이 시간이 필요하니까, 또 그게 바로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니까요. 어쨌든 저는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다 이해한단 말이에요. 한국어도 이해하고 영어도 이해하고 불어도 이해하니까 저는 그게 보고 있는 게 좋았어요(웃음). '우리 오늘 촬영 어떻게 하나' 하면서도 그게 너무 재밌고. 싸움이나 충돌은 전혀 없었어도 정말 힘들었지만 그 힘듦을 스태프분들 다 같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사실 재미있는 게 불어랑 영어도 하고 실제로 한국어도 할 줄 아는데, 영화에서 프레디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그런 걸로 나오잖아요.

사실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연기할 때 제일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한국어가) 모국어잖아요. 그런데 그 모국어를 완전히 모르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진짜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막 들리는데 모르는 척(웃음).

그러면 지금 그 언어 세 개 중에 아직은 나한테 외국어 같다 하시는 게 어떤 언어일까요?

영어죠.

박지민 배우

혹시 이 장면은 시나리오에서 봤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처음 그 삼계탕 먹으러 갔을 때. 프레디가 아버지 가족하고 처음 만났을 때. 왜냐면 그게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게 아니라 되게 길었어요. 카메라 앵글을 바꿔야 하니까 찍은 거 또 찍고, 그러면서 되게 길었어요. 그게 촬영 초반이었어요. 그걸 계속 하다보니까 '와 생각보다 이 신 되게 힘들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그게 떠오르네요. 데이비가 많이 찍지는 않아요. 많이 찍어도 네 번? 세 번? 항상 그 정도 했거든요. 근데 그날은 인물이 많으니까, 그리고 그걸 다 담아야 하니까 계속 하고 하고 하고… 제가 안 나와도 정말 많이 찍었어요. 장면이 끝나고 물건이나 이런 인서트 찍을 때 제 손이나 제가 걸리니까 있어야 하고. 그때 참.

영화가 정말 신비로운 게, 좋은 영화면은 되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잖아요. 근데 모든 게 페이크(가짜)예요. 그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모든 게 다 페이크고, 모든 게 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래서 모든 걸 컨트롤 해야 해요. 사실 제가 연기 경험이 많은 게 아니지만(웃음), 영화는 정말 컨트롤을 해야 되는 거구나 (싶었어요). 너무 빨리 가면은 카메라가 캐치를 못하고… 그런 거에 되게 많이 배웠어요. 다 만들어지는 거구나.

고모 역의 김선영(왼쪽), 프레디의 생부 역의 오광록

<리턴 투 서울>

프레디(박지민)와 테나(한구카)

영화에서 비슷한 또래의 신예 배우들과도 같이 하고, 고모 역의 김선영 배우나 아버지 역의 오광록 배우 같은 베테랑들이랑도 같이 하셨잖아요. 같이 연기할 때 많이 다른 느낌이었나요?

네, 달라요. 저는 모든 배우들이랑 했을 때, 좀 더 젊은 배우들이랑 같이 연기했을 때도 너무 많은 걸 배웠어요.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근데 김선영 선배님이랑 오광록 선배님을 예로 들자면은 제가 너무 너무 많이 배웠죠. 솔직히 두 분 다 얼마나 힘들겠어요, 연기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앞에서 대사를 치고 연기를 한다는 게. 그 부담감도 많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없을 리가 없겠죠. 왜냐하면 만약 상대방이 그 연기를 못하면 자신이 훨씬 더 이끌어줘야 되는 그런 상황이니까요. 그런데도 정말 정말 잘 이끌어주시니까. 이번에 또 배운 게 저한테는 연기는 절대 혼자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어떤 배우가 뛰어나도 그 상대방이랑 그 에너지를 주고 가면서 하는 거지, 혼자 막 이렇게 열연한다고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연기는 진짜 주고받고 그 에너지를 주고받고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은데 정말 많이 (에너지를) 주셨어요, 저한테.

영화에서 테나로 나온 한구카 배우도 번역가 겸 소설가잖아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이분은 데이비의 캐스팅 디렉터가 인터넷에서 막 찾다가 인터뷰 비디오를 보셨나 봐요. 그래가지고 되게 괜찮을 것 같다라고 해서 합류하게 됐죠. 그런데 또 알고 보니까 같이 알고 있는 친구가 되게 많더라고요, 그분이랑 데이비랑.

<리턴 투 서울>

방금 부담감 얘기가 나와서 질문드리면, 배우님도 장편 영화의 주연이란 건 굉장한 부담감이었을 텐데요. 어떤 식으로 그 부담감을 해소했나요?

사실 이런 얘기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연기하고 촬영할 때는 잘 몰랐거든요. 근데 끝나고 생각해 보니까 그때 즐거운 시간들이 정말 많았던 거예요. 그 연기할 때 그 쾌감이… 그걸 동력 삼아 했던 거 같아요. 연기할 때는 정말 그거에 집중이 확 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완전 몰입하니까 그냥 사방에 카메라도 신경 안 쓰고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사라져버리고 그 상황만 저랑 이렇게 존재하니까, 그게 너무 너무 즐거웠어요.

그 정도면 천직이신 거 아닐까요?(일동 웃음) 보통은 이제 카메라라든가 그런 걸 신경 쓰게 된다더라고요.

전 카메라에 전혀 신경 안 쓰이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내가 '신경 쓰지 마' 그런 것도 아니라 되게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그랬어요. 왜냐하면 제가 연기 교육 코스를 밟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 본능을 되게 믿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본능을 많이 듣다 보니까. 만약에 조금 우울할 때면 우리 뇌한테 너는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진짜 즐거워진다는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너는 지금 이 상황을 진짜로 실제 상황에서 살고 있어'라는 말을 계속 되풀이 하니까 완전히 그 몰입해가지고 제가 그 상황을 진짜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연기가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실제 상황이니까 카메라가 없는 걸로 그게 상상이 되더라고요. 그런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박지민 배우

프레디는 영화 내내 계속 엄청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나왔잖아요. 성격이라든가 시대에 따라서 계속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배우님한테는 그런 부분들이 연기하기에 쉬웠나요, 어려웠나요?

저는 쉬웠어요. 프레디랑 저랑 닮은 점이 되게 극과 극인 감정들을, 프레디가 이랬다 저랬다 막 이랬다 저랬다 그렇잖아요. 그 감정들도 되게 기복이 크잖아요. 근데 저도 그렇거든요 사실. 그래가지고 그걸 잘 이용 한 것 같아요.

기복을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춤추는 장면은 혹시 본인의 아이디어였나요?

시나리오에는 그냥 '춤을 춘다' 한 문장이었어요. 근데 촬영 몇 주 전에 우리가 파리에서 리허설을 했거든요. 프랑스에 있는 배우들이랑. 텍스트만 읽는 리허설이 아니라 이런 저런 거 다 해봤거든요. 그때 춤을 췄어요. 데이비가 제가 춤추는 거 좋아하는 것도 알고, 데이비도 (춤추는 거) 되게 좋아하고. 그리고 춤추면서 서로 몸 동작이라던가 이런 걸로 서로 알아가는 것도 되잖아요. 그래서 춤을 쳤는데 첫 음악을 딱 틀었는데 제가 춤추는 걸 너무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완전 미쳐버린 거예요. 그때 연습실도 실제 댄스실이었어요. 공간이 크니까 저한테는 놀이터처럼 너무너무 행복한 거예요. 제가 춤출 때 너무 행복해하니까, 데이비가 저한테 그랬어요. "너 춤추는 거 꼭 찍어야겠다". 리허설 때도 다 카메라로 찍고 있었더라고요. 전 그거 알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꼭 영화에 넣어야겠다 하고, 촬영 당시에도 너 마음대로 추고 싶은 대로 추라고 (그랬어요). 공간도 다 이용하고, 카메라가 너를 따라갈 거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몇 테이크 정도 찍었나요, 그 장면은?

시간이 그때 너무 촉박해가지고 한 테이크하고 그만뒀었어야 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가지고 두 번 했어요. 그 두 번째 테이크가 지금 영화에 실린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첫 번째 한 게 '아니야 이거는 필이 아직 충분히 안 왔어' 그래서.

영화에서 프레디가 한국인 입양에 대한 역사를 알게 되잖아요. 혹시 프랑스에 가서 알게 돼 충격을 받은 역사 같은 게 있을까요?

프랑스 역사에서 제일 크게 배운 게 식민지 역사인 것 같아요 콜로니얼리즘(colonialism, 식민주의). 프랑스가 식민지가 엄청 많은 나라잖아요. 솔직히 아직도 있고, 섬들 같은 거요. 되게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은데, 한국도 프랑스가 뺐어갔다 하는 문화재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게 제가 몰랐던 거죠. 한국도 한국인이 아니면 세계에서 모르는 역사가 많잖아요. 프랑스에서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단 걸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똑같이 프랑스가 식민지가 그렇게 많고, 지금도 이렇게 많은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는 지금 '디콜로니얼리즘'(decolonialism)이라고 콜로니얼리즘을 반대로 해석하는 개념, 그거에 관심이 많아요.

같은 예술이란 카테고리에 있어도 비주얼 아티스트와 배우가 다르다는 건 사실 누구나 알 텐데요. 그럼에도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 느낀 차이점이 있다면?

일단 연기는 제 몸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 제 몸과 동작과 목소리, 제 얼굴 제 눈빛 그런 걸 가지고 하는 거니까 다르죠. 일단 차이점은 그거죠. 제 아트를 할 때는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이렇게 작품을 만드는 거니까. 그래도 비슷한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아트를 자신만의 소통 방법을 찾아가지고 세상이랑 얘기를 하는 거라고 믿거든요. 근데 연기도 똑같은 것 같아요. 세상과의 소통을 자기 색깔로만 이렇게 소통하고 그러는데 그런 방식이. 당연히 연기는 제가 재료가 되고 아트는 다른 걸로 재료로 삼는 건 다르지만요.

인터뷰도 다르죠?

다르죠. 비주얼 아트 할 때는 일단 제가 있고 제 작업이 있고 세상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연기는 제 작업이 저랑 같이 합쳐져서 나, 세상. 그래서 다르죠, 그것에 대해서 말할 때. 자신의 모든 게 들어갔지만 제 자신을 바로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차이점이 큰 것 같아요. 근데 자기 자신이 들어간 거는 똑같은 것 같아요.

<리턴 투 서울>

9살 때 프랑스로 이민 갔다고 알고 있어요. 그 뒤로도 자주 한국에 오셨나요?

네, 자주 왔죠.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계속 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 2년, 3년 동안 못 오다가 그다음에는 거의 일 년에 한 번씩은 나온 거 같아요. 코로나 터졌을 때 빼고. 자주 왔어요. 가족분들이 다 서울에 있으니까. 부모님이랑 오빠도 다시 서울에 살고 있어요.

그럼 유년기 시절 한국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게 있으세요?

많아요, 엄청 많아요! 제가 정말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제가 한국에 살 때였는데… 여섯 살? 일곱 살? 그쯤이었는데 제가 학원을 다녔어요. 발레 학원이었나? 학원을 갔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땡땡이를 친 거예요. 그것도 여러 번(웃음). 아무튼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밑에 내려오면은 이렇게 옆에 계단이 있었거든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지하로 내려가면 이쪽 통로에 조그마한 놀이터 같은 게 있었어요. 거기가 제 아지트였거든요, 정말 좋아했어요. 그리고 저는 계단을 그냥 내려가는 게 싫었어요. 혼자 상상하면서 노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산이면 그 떨어지지 말라고 펜스가 있잖아요. 그럼 막 모험자인 것처럼 상상하면서 펜스에 몸을 넣어가지고 뛰어내렸어요, 계단을 안 쓰고. 거기에 또 큰 시계가 있었거든요. 제가 정확히 수업이 몇 시에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몇 시인 거 정확히 알았어요. 그래서 거기서 놀다가 시계 보고 아, 지금 들어가야겠다, 했는데 걸렸죠(웃음). 많이 혼났어요.

박지민 배우

이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 계기로 연기를 더 하시겠다거나 들어온 제안이 있나요?

네, 제안 받은 거 있고요. 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기는 다신 안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가지고 연기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솔직히 저는 제 작업할 때가 제일 행복하거든요. 그게 너무 커가지고 '꼭 연기를 해야 되나' 생각이 들었는데…. 근데 그 생각이 모순적이었던 게 제가 저한테 허락을 안 했던 거 같아요. '내가 뭐라고 연기를 할까'라는 생각이 너무 커가지고 함부로 이렇게 허락을 안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정말 많이 생각을 했거든요. 그 촬영 때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제가 연기할 때 너무 행복했던 걸 감출 수 없더라고요. 저 작업할 때처럼. 조금 다른 행복이긴 했지만 너무 행복해가지고, '이 행복을 이 에너지를 다시 느끼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오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얼마 전에 연기도 하겠다고 결심이 들었어요(웃음).

바로 차기작 하시겠네요(웃음). 또 반대로 이 질문도 생각났어요. 이번 작품을 하시면서 배우로서의 차기작이 아니라 비주얼 아티스트로서의 차기작도 구상하셨는지요.

맞아요. 제 작업이 조금 변했어요. 큰 틀은 변하지 않았는데 제가 원래 컬러감이 되게 많거든요 제 작업에. 그동안 컬러감이 계속 파워풀했는데, 좀 더 다른 컬러를 사용하고 좀 더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삶의 중심이 자연스레 자리 잡는구나 싶은 게, 제가 작업할 때는 힘들면 빠져나갈 다른 문이 없는 상황이 되게 많았거든요. 왜냐면 작업만 하니까 이 작업에서 답을 찾지 않으면 완전히 절망적인 거죠. 근데 영화 해보니까 그 작업이 힘들 때 연기로 이렇게 에너지를 보충하고 그러는 게 되더라고요. 그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촬영할 때는 힘들고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두 개를 하면 둘이 잘 맞춰가면서 이렇게 할 수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왼쪽부터) <미스테리어스 스킨>(2004), <크래쉬>(1996), <시>(2010)

혹시 인생 영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미스테리어스 스킨> 정말 좋아하고요. 정말 좋아해요. 어른이 되는 과정을 제일 잘 보여주는 청소년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성장기가 힘들다, 그렇게 심플한 아이디어는 아니고요. 청소년인 나를 버리진 않지만 뒤로하고 어른이 되는 그 중간 사이, 그 힘든 시기를 정말 잘 표현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보자마자 세네 번 본 것 같아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러쉬>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이창동 감독님의 <시>(2010) 좋아하고요. 이창동 감독님 영화 다 봤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에요.

마지막으로 배우님이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 소개와,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좋아하는 대사는 정말 많고, 좋아하는 장면 얘기해도 되나요? (좋아하는 장면도) 너무 많긴 한데, 일단 저는 그 춤 장면이 너무 좋고요. 테나라는 친구랑 프레디랑 같이 테나 아버지의 차를 탔을 때 프레디가 태나 무릎 위에 이렇게 누워가는 그런 그 장면이 되게 기억에 오늘은 기억에 남네요. 우리 영화가 그렇게 막 깔깔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리고 주제에도 주제인 만큼 되게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한국 관객분들 반응이 너무너무 궁금하거든요. 영화를 어떻게 보실지. 이 영화가 되게 특이한 게 100% 프랑스 영화도 아니고 한국 영화는 더더욱 아니고 어떤 나라의 영화도 아니잖아요. 한국인이 아닌 감독이 한국에 대해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되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시는 한국분들이 어쩌면 보실 수 없는, 왜냐하면 우리가 가까이 살고 가까이에 있을수록 잘 안 보이는 게 많잖아요. 그림도 이렇게 보면 그 뒤에 있는 게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림도 멀리서 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이게 낫다, 저게 낫다가 아니라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사시는 분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못 보시는 그런 면들을 어쩌면 그 외국인들이 이렇게 만든 영화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제공=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