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는 경쟁부문을 둔 영화제다. 국제경쟁과 한국경쟁 두 부문이 주류이고, 두 편 이하의 장편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작품이 경합을 벌인다. 이 부문에 초청된 <우리와 상관없이>의 유형준, <구름에 대하여>의 마리아 아파리시오, 두 감독을 만나 야심차게 완성한 작품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단편 <아들딸들>과 <피는 잔칫집에서 흘려라>를 발표한 바 있는 유형준 감독은 첫 장편 <우리와 상관없이>로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돼 눈밝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고 기억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년 배우 화령(조현진)은 최근 참여한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시사회를 마치고 그녀를 찾아온 동료들에게 영화에 대해 묻지만 그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반으로 접힌 영화는, 1부에서 각자 엇갈리는 이야기가 2부에서 한데 뒤섞여 확장하면서 관객을 교란시킨다. 지난 5월 3일 진행된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으로 호명됐다.

베를린 영화제 현장의 유형준 감독

본편을 보기 전, 누군가 인사동을 걷는 흑백 신이 이어지는 클립을 보고 즉각적으로 홍상수 감독이 떠올렸다. 단편 <아들딸들>과 <피는 잔칫집에서 흘려라>의 단출한 오프닝 크레딧도 홍상수의 스타일과 유사하다.

베를린에서도 계속 그런 얘기가 나왔다. 사실 만드는 입장에서 그런 걸 인정하는 게 전혀 좋을 게 없다. 내가 93년생인데, 홍상수 감독님이 96년에 데뷔했다. 한국에서 모던 시네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홍상수 하나의 채널만 보고 자란 게 사실이다. 모던 시네마 작업하는 이들은 많은 예산과 시간을 들일 수 없고, 서울에서 돈 없이 혼자서 영화를 찍다 보면 비슷하게 나오는 걸 피하기 어렵다. 오프닝 크레딧을 다 비우고 들어가는 게 비슷하게 보일 수 있고, 만들면서도 그렇게 느껴지겠다 예상은 했는데, 그걸 굳이 피해 봤자 더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지도 않고 굳이 의식하면서 피할 바에 그냥 돌파하자고 생각했다. 내가 계속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일 것 같다.

두 번째 단편 <피는 잔칫집에서 흘려라> 이후 3년 정도 공백이 있다.

<아들딸들>과 <피는 잔칫집에서 흘려라>를 만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스타일의 양 극단을 확인했다. 둘 중 무엇이 맞으니 그걸로 가야겠다보다는 이 두 축 안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겠다 싶었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살아 있다 영혼이 있다 라는 느낌을 줄 수 있고, 그게 완전히 없는 채로 갈 수도 있고, 역으로 오만 가지 작동이 가능한 기계 장치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도 졸업했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카테고리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 중요한 문제다. 내가 쓰고 만드는 건 관객들에게든 심사를 보는 분들에게든 카테고리화가 잘 안됐던 것 같다. 장편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도 여유가 없으니 계속 시간을 보내다가 장편 만들려면 성별과 연령대를 다양하게 6명 정도 있으면 되겠다 하고 충동적으로 영화 스태프 구하는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분들이 많이 연락을 주셨고 직접 만나보니 어떻게든 뭐가 나오겠지 하고 장편을 만들기로 했다.

<아들딸들>

<피는 잔칫집에서 흘려라>

시나리오는 물론, 무엇을 찍겠다는 계획도 없었다는 건가?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안에 어떤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기 위해 뭘 짜고 맞추는 게 나에겐 별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걸 증명해보고도 싶었다. 배우분들이 자꾸 책(시나리오)은 언제 보여주냐고 하셔서 한 일주일 정도 걸려서 1부를 급하게 써서 드렸다. 내가 이 방식으로 단번에 전체를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예상은 있었고, 뒤를 이어나갈 수 있는 여지만 남겨둔 상태로 1부를 썼다. 급하게 작업한 만큼 1부에서 뿌려놨던 것들이 감당이 안 되는 후폭풍이 왔고, 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시간이 지난 만큼 생각이 휘발되니 이 상태에서 인공적으로 뭘 어쩌고저쩌고 해볼 게 아니라 뿌려놓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합쳐서 끌고 가보는 게 차라리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써낸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어떤 기계가 강제적으로 의도와 상관없이 중구난방으로 합성시켜버린 느낌을 기대했다. 만날 어디 앉아서 영감이 와라 생각을 해보자 하는 것보다 그냥 시간이 가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떤 계시 같은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스스로 하는 생각보다 그게 훨씬 더 믿음이 간다. 9개월이 지난 후에 그렇게 확신이 들면서는 굉장히 빠르고 편하게 2부를 썼고, 곧 촬영도 시작했다.

1부는 혼자 직접 찍었고, 2부는 강현정 촬영감독과 같이 찍었다.

붐마이크 드는 분이랑 조연출 두 명이랑 1부를 찍어보니 손이 너무 부족해서 2부는 촬영감독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앵글은 내가 다 정한다는 걸로 협의를 보고 전부 원하는 대로 찍었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 다르니 달라도 뭐가 다르긴 할 텐데, 다음 작품엔 그냥 내가 직접 촬영까지 다 할 것 같다.

단편부터 꾸준히 주인공이 된 이름이 ‘화령’이다. 분명 어감 때문인 것 같긴 한데, 특별한 뜻도 있나?

어릴 때 알던 여자 이름이었다. 그 친구를 알았을 땐 이미 평범한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원래 이름이 화령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름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안 그래도 이름 짓는 것도 힘들어하니, 그냥 그 이름을 썼고 계속 쓰고 있다. 따로 생각해둔 한자 뜻도 없다.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만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적인 혼돈을 영화로 표현하기에 더 좋은 게 여성 캐릭터인 것 같다. 아무래도 타자라서 그렇겠지. 남자 캐릭터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됐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기준이 있다면.

시간과 돈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인물 디자인을 거의 비워놓았다. 최소한의 연령대, 성별, 직업, 아주 작은 성격이나 성향 정도만 정했다.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그분이 해낼 수밖에 없는 글을 썼다. 사연 많은 어떤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어떻게 잡고 의자에 앉는 걸 싫어하고 잘 때는 옆으로 누워서 자고… 이런 걸 정하는 게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화령을 연기한 조현진 배우이기에 가능했던 건 무엇이었나?

영화 내내 계속되는 배우분의 느낌이 있다.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있다거나 공허해 보인다거나. 처음 만나봤을 때도 그런 게 언뜻언뜻 보여서 화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라기보다 그런 에너지만 즉각적으로 이용해보자는 판단만 갖고 갔다.

배우들 연기 통제는 어디까지 하나?

연기 전공한 분들이 흔히 갖게 되는 리얼리즘에 대한 어떤 개념이 있는 것 같다. 이것도 물론 어떤 카테고리이긴 한데… 한국 상업영화에서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양아치 연기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건 리얼리티의 한 종류일 뿐이다. 사실적인 연기라는 것에 합의된 제스처나 온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좀 내려놓게 만드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다. 리얼리즘은 너무나 무한한 건데 특정한 제스처나 말투를 쓰고 건들대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그러는 게 리얼리즘은 아닐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쓴 걸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분을 잘 선택해서 그분이 다른 생각을 아예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려 들어가는 글을 써드리는 것, 그렇게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드리는 것, 이게 전부인 것 같다. 테이크를 많이 간다거나 배우를 기계처럼 만드는 건 해봤는데도 잘 모르겠다. 다만, 테이크를 많이 가면 어떤 분이든 점점 현실 감각을 놓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같은 상태가 되는데 그게 내가 아까 얘기한 리얼리즘의 약속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와 닿아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테이크는 많이 간 편인가?

촬영 회차가 워낙 적었다. 1부는 2회차, 2부는 3회차로 찍었다. 시간이 없는 걸 넘어서 이것저것 뭘 시도해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1부는 고민할 것도 없이 전체적으로 테이크를 많이 갔다. 대부분 신이 10번째 테이크 즈음에서 오케이가 났고, 그 테이크가 아니라 첫 테이크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하고 9개월이 지나니 생각이 좀 바뀌어서 2부는 한두 테이크만에 찍었다. 리허설 때 찍은 걸 쓴 것도 있었고. 변덕이 워낙 심한 사람이라 다음 영화에선 또 2~30 테이크씩 찍을 수도 있다.

1부에서 화령과 PD가 대화를 나누다가 돌연 침묵이 흐르는 순간이 있다. PD가 앞서 보여준 신경질적인 면이 있어서 갑자기 드잡이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침묵은 정확히 몇 초인지 정해두었나.

시나리오에 있었다. 모든 대사와 사이사이 텀은 다 정해졌고, 애드립은 아예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게 갑자기 뒤틀릴 수 있다는 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효과인 것 같다. 영화는 잘 통제한 시간과 정보가 누적되는 연속체인데, 그 리얼리티를 한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는 매체는 영화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한테서 그 효과를 내는 것에 관심이 많아 그런 식으로 썼다.

1부에서 왜 여자들은 낮에, 남자들은 밤에 화령을 방문할까?

그러게. 일단 아픈 여자 집에 남자가 밤에 찾아오진 않는다. 시나리오를 급하게 쓰면서 그게 왜 그랬는지 의도는 구체적으로 안 해봤는데, 남자들은 어떻게든 구질구질한 소리를 늘어놓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면서 썼다. 그런 얘기를 하기엔 밤이 더 나을 것 같았고. 흑백이고, 밤과 낮 혹은 남자와 여자의 이분법이 있으니 수많은 의도를 세울 순 있었겠지만, 그런 도식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감독이 화령을 찾아오는 길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느닷없이 얼굴이 큼직하게 클로즈업하기도 한다. 왜 하필 감독이 유령처럼 보일까?

촬영할 때가 감독을 연기한 최성원 배우가 크게 아프고 난 직후였다. 몸이 안 좋은 게 연기에도 영향을 미쳐서 크게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건 찍기 힘든 상황이어서 에너지를 덜 들이면서 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감독한테 징징거리지 않나. 실제로 영화판이 그렇게 돌아간다. 일단 감독들한테 모두가 굉장한 기대를 갖는다. 배우, 스태프, 심지어 관객까지도. 이 사람이라면 뭔가 알고 있겠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는데 전혀 아니다. 그냥 다 일하는 사람이다. 초월적인 정신을 가진 게 아니라 그냥 남들보다 더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영화 매체가 오래갈 수 있을까, 왕년에 좋은 시절에 활동했던 분들의 허상을 쫓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할 때라 그럴 수도 있다. 얼굴을 크게 보여주는 건 원래 그렇게 확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옵션을 놓고 썼다. 갑자기 휘파람을 분다거나, 노래를 부른다거나. 다 찍어봤는데 좀 아닌 것 같아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클로즈업을 하나 찍어뒀는데, 편집할 때 놓아보니 시나리오에 썼던 것보다 그게 더 나았다.

주로 인물들이 어둠에 놓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어두운 곳에 있을수록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

어둠을 찬양하는 편이다. 물론 철학적이나 관념적인 어둠에 관심 없고. 아름다운 경치나 알록달록한 무언가를 보는 화려한 시각적인 자극에서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도파민 정도야 나오겠지만 거기서 무슨 통찰을 얻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은 채 복잡한 요소들을 꿰뚫는 뭔가를 느끼고 싶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굉장히 어두운 공간을 찾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어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인 관습 때문에 어둠이 핍박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 영화는 정보를 어떻게든 잘 보이게 하려고 집착하는데 나는 그게 싫고 어둠이야말로 우리 정신을 더 많이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 도중에 아예 불을 끈 채로 진행하는 신도 있다. 보이는 게 없어 대사에 더 집중할 수 있기에, 그 신에서 인물들이 하는 말이 특히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필 그 대목에서 불을 끄는 이유가 있을까?

사실 그 신은 탁 트이고 경치도 좋은 야외에서 찍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두 배우분이 집중에 어려움을 겪었다. 서로에게 빨려 들어가야 하는데 잘 안됐고, 나도 극약 처방으로 불을 끄는 걸 떠올렸다.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앞에서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여기서는 또 냉랭하고. 그 장면 이전에 일어났던 정보들의 누적이 있는데 그걸 고려했을 때 딱 그 부분에서 어둠 속에서 둘이 깊이 대화를 나누는 게, 그 이야기가 점점 더 서로를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체험이 되게 하는 게, 영화가 작동하는 데에도 제일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 정립된 리얼리티가 무너지는 걸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리얼리티는 직방으로 무너트리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완전히 무가 된다면 어떤 자극도 주지 못하는데, 그 리얼리티를 계속 진동시킨다면 "이 하나의 세계관" 같은 생각을 좀 흔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리얼리티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흔들어보고 싶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여러 반응을 만났다.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면.

베를린 공식 홈페이지에 각 작품마다 한 영화평론가가 에세이를 썼다. 이것의 의미는 어떻고 하는 언급은 전혀 없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지금 영화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렌더링 하는데 이 영화는 그 렌더링 과정을 한 발짝 앞서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그걸 틀어버린다는 식으로 언급한 대목이 있는데, 철학적인 질문이나 의미를 짚어내는 것보다 훨씬 고마웠다. 베를린 포럼 부문에 초청된 감독과 심사위원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는데, 바로 앞에 제임스 베닝 감독이 있었다. (<우리와 상관없이>와 함께 포럼 부문에 초청된 제임스 베닝의 <알렌스워스>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반평생을 아방가르드 영화계에서 활동하신 분이라 영광이기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신이 하는 작업은 결국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교란시키는 것뿐"이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서 내 식대로 발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럼 당신이나 나나 하고 있는 일이 어찌 보면 조현병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나"라고 또 물었더니 잠시 생각을 하더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동의했다. 그동안 외로운 상황에서 계속 작업을 했고, 누구에게 의견을 나누거나 물어볼 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하신 분에게 내 생각을 이해받을 수 있어 굉장히 감사했다.


아르헨티나 감독 마리아 아파리시오가 데뷔작 <길>(2016) 이후 6년 만에 완성한 두 번째 장편 <구름에 대하여>는 (감독의 나고 자란 도시) 코르도바에서 살아가는 네 사람을 따라간다.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딸과 단둘이 살아가는 중년 남성 에르난(파블로 라파르지), 간호사로 일하면서 연극 연습에 몰두하며 새로운 희열을 느끼는 중년 여성 노라(에바 비앙코), 서점에서 일하면서 만난 남자와 사랑을 키워가는 20대 여성 루시아(말레나 레엉), 다른 지역에서 코르도바에 와 주방장으로 일하는 20대 남성 라미로(리안드로 가르시아 폰조)의 일상이 잔잔하고 흐르며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국제경쟁 작품상을 수상했다.

마리아 아파리시오 감독

2018년에 단편 <빗속의 남자>(Hombre bajo la lluvia)를 선보였다. <구름에 대하여> 속 에르난 역의 배우 파블로 리마르지가 참여했길래 스틸컷을 보니 에르난이 콜센터 면접을 보는 대목만 담긴 것 같더라.

<구름에 대하여> 제작 초기에 예산이 너무 없다 보니 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이미 찍은 분량을 피칭 용도로 편집한 게 <빗속의 남자>라는 단편으로 소개됐다.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진 흑백영화인 <빗속의 남자>를 통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전하고 제작 지원을 받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빗속의 남자> 그리고 <구름에 대하여>

어쩐지 <구름에 대하여>를 보는데 면집 시퀀스에서 에르난의 모습이 좀 다르게 보이더라. 면접 가는 거니까 깔끔하게 꾸몄나보다 했다. (웃음)

물론 에르난뿐만 아니라 그의 딸을 연기한 배우도 처음 촬영할 당시엔 11살이었는데 마칠 때는 14살이 됐다. 그 사이에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같은 장면을 다시 촬영한 적도 있다.

편집으로 참여한 <위선자들>(Los hipócritas, 2019)엔 파블로 리마르지와 노라 역의 에바 비앙코가 출연한다.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리마르지와 비앙코 모두 코르도바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배우다. 라미로와 루시아를 연기한 배우는 이전에 연기 경험이 없고 <구름에 대하여>가 첫 영화다. 둘 다 원래 내 친구고,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코르도바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도시다. 그 친구들과 자주 영화를 보러 다니고 토론도 한다. 아무래도 친구라 표정을 관찰하기에도 좋았고, 각본을 쓸 때도 그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특히 루시아는 그를 연기한 말레나 레엉의 평소 특징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구축했다.

코르도바는 아르헨티나의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른가?

아르헨티나는 면적 자체가 넓고 위아래로 기다랗다. 북부, 남부가 완전 딴판이다. 아르헨티나 중앙에 위치한 코르도바는 흔히 아르헨티나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도 꽤나 다르다. 코르도바엔 “우리는 내륙 사람이지”라는 표현이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사람이 아니라면 낯설 수 있는 디테일이 있을 것 같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다. 코르도바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전반적으로 본인의 직업을 두고 다른 걸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N잡을 해야 한다. 나만 하더라도 영화감독은 물론 편집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래픽 디자인도 하고 강의도 다니는 등 수많은 일을 한다.

개기월식 시퀀스가 참 좋았다. 실제 코르도바 사람들과 영화 캐릭터들이 신기한 듯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무 위계 없이 펼쳐진다. <구름에 대하여> 촬영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

하늘 아래선 사회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빗속의 남자>에 해당하는 분량 다음으로 예산이 빠듯하다 보니 비교적 돈이 덜 드는 도시 풍경이나 간단한 대화부터 찍었는데, 팬데믹이 오기 전에 공공장소를 찍어 놓아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네 사람의 일상이 일정한 순서 없이 이어진다. 인물들이 나타나는 순서는 편집에서 정해진 건가.

노트 필기한 걸 보여주면 좋을 텐데… (혹시 홈페이지에 올린 그건가?) 맞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시퀀스를 어떻게 붙일지 순서를 정해놓았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고쳐나갔다.

마리아 아파리시오 감독이 홈페이지에 올린 노트 필기

메인 캐릭터 넷이 아닌 청소부 여자로 영화를 여는 건 처음부터 있었던 설정인가?

그렇다. 다만 처음엔 그 여자가 하늘을 쳐다보고 그녀가 나중에 연주하는 노래를 듣는 거였다. 시나리오를 여러 번 고쳐 쓰면서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장면이다. 청소 노동자는 사회에서 잘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역할이지만, 그들이 있기에 도시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걸 근접해 보여주고 싶었다.

청소부는 에르난, 노라, 루시아, 라미로 모두와 마주친다. 한 번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만나는 사람도 있는데, 부러 차이를 둔 건가?

그 여자는 누구를 만날 땐 머리가 짧고 누구 앞에선 긴 머리로 나온다. 영화 속 사람들을 연결하게 해주는 판타지적인 캐릭터다.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이 캐릭터를 통해 인물들이 느슨하게 이어진다, 라고만 설정했다.

니콜라스 아벨로와 에마누엘 디아즈 두 사람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첫 영화 <길>부터 쭉 아벨로와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 <구름에 대하여>는 전작보다 인물 섹션이 많아서 둘로는 버거워서 디아즈까지 셋이 같이 썼다. 내 아이디어를 말하면 셋이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장면을 어떻게 만들지 구성하는 방식이다. 시나리오는 계속 수정돼 다섯 번째 버전까지 나왔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쳐 썼다.

거리에서 BTS의 ‘Dynamite’가 나오고, 휴대폰을 바꾸려고 고민할 때 하필 삼성 갤럭시의 로고가 떡하니 보인다. 에르난의 딸은 (합기도와 유사한) 아이키도를 배우러 다닌다.

모두 우연이다. (웃음) 삼성 휴대폰은 아르헨티나에서 국민적으로 쓰고 있다. 코르도바에 갑자기 아이키도 도장들이 몇 개 생겼는데 지나다가 도복을 입고 예를 갖추는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게 보여서 추가한 설정이다. 사실 아직도 아이키도가 정확히 뭔지 모른다.

네 사람 중에 왜 하필 라미로만이 음악에 반응하게 되는가? 에르난과 노라는 가족이 있고, 루시아도 반려견과 같이 사는데, 오직 라미로만이 집에 가면 혼자가 된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까.

영화 속 캐릭터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열린 결말을 선호한다. 코르도바에 있는 대학교는 국립이라 무료다. 나이 제한도 없어서 다른 지방에서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다. 그런 배경이 있기에, 라미로를 보면서 저 정도의 나이면 다 대학교를 다닐 나이인데 왜 학교를 가지 않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는 건가?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게 의도였다. 경제 상황 때문에 구직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빈번하게 다른 직업을 찾아야만 한다.

봄부터 연극을 배운 노라가 어느 날 남편에게 “4월부터 연극을 배우고 있어”라고 고백한 후, 공연장에 남편이 스윽 나타나 자리에 앉으면 무대 뒤에서 노라가 대기하고 있다가 나가는데 정작 연극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과정이 특히 좋다.

원래는 노라가 공연하는 모습도 찍었는데 편집하면서 그걸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다. 간호사인 노라가 커튼 뒤에서 기다리는 것 자체가 영화 속 영화처럼 보였으면 했다.

홈페이지에 작업 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신작 <정의되지 않는 것들>(Las cosas indefinidas)은 어떤 작품인가?

<정의되지 않는 것들> 역시 픽션이다. <구름에 대하여>보다는 규모가 작고, 작년 말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에바 비앙코가 주인공으로, 영화를 편집하는 역할로 나온다. (편집하는 여자라니, 왠지 당신의 자전적인 모습인 것 같다) 비앙코는 내 첫 영화 <길>에도 출연했으니 연관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