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오아시스>의 문소리, 2007년 <밀양>의 전도연,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김민희, 2021년 <미나리>의 윤여정과 2022년 <브로커>의 송강호까지. 이제는 세계 유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가 배우상을 거머쥐는 일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1987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20대 초반의 낯선 한국 소녀의 이름이 불렸을 때만 해도, 동아시아 배우 중 최초 수상 소식은 엄청난 일이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이름에는 ‘월드 스타’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생애의 90%를 배우로 살아온, 모든 삶이 영화와 같았던 사람. 그녀의 이름은 강수연이었다.
2022년 5월, 영원한 ‘월드 스타’이자 찬란한 생애를 살아온 배우 강수연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었던 <정이>(2022)의 서현 역으로 10년 만에 복귀를 예고해, 한국 영화계의 전설적인 입지를 지닌 그녀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많은 영화인과 대중들은 큰 슬픔에 잠겼고, 수많은 관객들은 아직까지 그녀의 얼굴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사망 1주기가 되는 2023년 5월 6-9일, 강수연 추모사업 추진위원회는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과 메가박스 성수에서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을 개최한다. 한국 영화계에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그녀의 발자취를 함께 걸어보면서, 그녀의 이름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시작한 연기의 길
1966년 서울에서 출생한 강수연은 태어난 지 네 살이 되던 1969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 해 MBC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했는데, 당시 그녀의 데뷔 동기들은 배우 임현식, 김애경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녀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연기를 시작했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충무로에는 ‘아역 배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역이 필요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아역 시절 그녀가 두각을 보인 작품들인 <별 3형제>(1977), <슬픔은 이제 그만>(1978),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1978)에서 그녀는 고된 환경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연기했다.
청소년기에도 꾸준히 연기를 이어간 그녀는 TV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 등에 출연하며, 여전히 명랑한 그녀만의 매력을 선보였다. 그때쯤 드라마보다 영화에 관심을 두게 된 그녀는 1987년 TV 문학관을 끝으로 2001년 <여인천하> 전까지 스크린 위에서만 연기하기를 택한다. 당시 아역 연기자들은 성인이 되어 성공하지 못한다는 연기판의 고정관념을 부순 채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등극한다. <W의 비극>, <고래 사냥 2>(1985)에 출연하며 연착륙에 성공한 그녀는 1987년 무려 6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기염을 토한다. 심지어 6편의 영화 속 강수연의 모습은 동일 인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속 미미 역을 맡으며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이어나갔고, <연산군>에서는 팜므파탈의 매력을 지닌 장녹수를 연기했다. <감자>에서 굳세게 삶을 이어 나간 복녀 역과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속 매춘부 순나 역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연기였던 만큼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그리고 그 해에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만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세계가 그녀의 이름을 알다
1987년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 출연한다. 그녀는 대리 출산을 위해 명문가에 들어가서 주인집 아들과 사랑에 빠지지만, 원래의 운명대로 아들을 낳고 쫓겨나는 ‘씨받이’ 옥녀 역을 연기한다. 22살의 어린 배우가 감당하기에는 무겁고 가혹한 연기였지만, 강수연은 오랜 기간 쌓아온 자신의 연기 경력과 그녀만이 가진 복합적인 매력으로 훌륭하게 옥녀 역을 소화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녀에게 동아시아 최초의 3대 영화제 주연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한 <씨받이>를 통해 베니스의 광장 한가운데에서 ‘강수연’ 이름 석 자가 크게 울려 퍼졌다. 아쉽게도 그녀는 폐막식 당시 베니스에 있지 않았기에, 직접 현장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볼피컵 수상 이후 그녀는 한국 영화계에 역사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1989년 그녀는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삭발 투혼을 감행하며 다시 한번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월드 스타’라는 칭호가 완벽히 그녀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는 강수연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현철과 이소라가 부른 동명의 듀엣곡으로도 유명한 이현승 감독의 <그대안의 블루> (1992)는 대중들이 사랑하고 있는 강수연의 모습이기도 했다. 안성기와 능숙한 호흡을 맞추며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려는 유림 역을 연기했다. 장선우 감독과 만나 작업한 <경마장 가는 길>(1991), 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베를린 리포트>(1991)은 모두 ‘코리안 뉴시네마’라고 일컫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미학적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강수연은 뛰어난 연기력과 스타성을 갖췄지만, 동시에 영화를 사랑하는 강렬한 시네필로서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작품에 기꺼이 도전했다. 그녀가 당시 장편 데뷔를 앞둔 새내기 감독 임상수의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에 출연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영화롭게 오랫동안
2001년 <여인천하> 정난정 역으로 14년 만의 드라마에 복귀해 폭발적인 인기와 SBS 연기대상의 영예를 얻었지만, 강수연은 그 이후에도 줄곧 영화계에 머물렀다. 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영화제를 방문했고, 오랜 기간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 짧지만 3대 집행위원장의 직책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영화를 사랑하게 된 청소년기 이후로 아주 오래 영화의 품 안에서 한국 영화의 성장을 바라왔다. 그리고 이번 강수연 배우의 1주기 행사는 그녀가 사랑했던 한국 영화계가 그녀에게 못다 한 말을 건네는 기억과 사랑의 장이기도 하다. 강수연의 추모전을 위해서 그녀와 동시대에 함께 호흡했던 영화인들이 함께한다.
김아중, 박종훈, 예지원, 문성근, 김인권, 류경수, 김현주, 김여진 배우 등이 추모전에 참여하며, 그녀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이현승, 연상호, 임권택, 장선우 감독과 심재명 대표도 GV를 통해 강수연 배우를 추억할 예정이다. 김홍준 원장을 비롯하여 이동진, 정성일, 손희정 평론가와 저널리스트 이은선, 백은하 소장 등 강수연의 연기를 보고 찬미의 글을 써 내려간 이들 역시 강수연의 찬란했던 생애를 자신들만의 언어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번 추모전에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역사적인 11편의 영화를 골라 상영한다. 기사 속 언급된 <그대 안의 블루>, <아제 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 길>부터 <송어>(1999), <달빛 길어올리기>(2010)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의 화사한 미소와 훌륭한 연기를 다시 기억하고 싶다면, 이번 추모전에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 (자세한 안내는 하단 링크를 통해 알 수 있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