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회 칸 영화제가 5월 16일 개막한다. <더 스퀘어>(2017)와 <슬픔의 삼각형>(2022)로 연이어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트가 심사위원장을 맡아 브리 라슨, 폴 다노, 줄리아 뒤쿠르노 등 심사위원들과 함께 어떤 작품에 손을 들어주게 될까. 21편의 경쟁부문 후보작 가운데 아홉 작품을 선별해 소개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웨스 앤더슨

이번에도 웨스 앤더슨의 신작은 어마어마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흥미로운 건 두 번째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부터 단 한편도 빼놓지 않고 앤더슨과 작업해온 빌 머레이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대신, 스칼렛 요한슨과 톰 행크스가 '웨스 앤더슨 월드'에 입성했다는 점. 근래 내놓은 전작들이 각각 1960년대(<문라이즈 킹덤>) 1930년대(<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1970년대(<프렌치 디스패치>)를 배경으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다시 시간을 거슬러 1955년 가상의 사막 도시(스페인 마드리드 근교 친촌에서 촬영됐다)에서 열리는 어린이 천체관측 대회에 모인 사람들이 휴식, 오락, 로맨스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다. 예고편을 보건대 모래의 베이지와 하늘의 민트가 주요 컬러 삼아 절대적인 비주얼 감각을 뽐낼 것 같다. 6월 중순 개봉 예정.


라 키메라

La Chimera

알리체 로르바케르

다큐멘터리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탈리아 여성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Alice Rohrwacher)는 첫 픽션 <천상의 육체>(2011)가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돼 칸 영화제와의 연을 시작해 장편을 내놓을 때마다 경쟁부문에 초청돼 <더 원더스>(2014)가 심사위원대상을, <행복한 라짜로>(2018)가 각본상을 받았다. <행복한 라짜로>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새 장편 <라 키메라>는 1980년대 티레니아 해변 마을에 온 영국인 고고학자 아서가 에트루리아 유적 도적단과 함께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아서가 대지와 연결되는 초능력이 있다는 설정으로 보아 <라 키메라>도 리얼리즘에 판타지가 가미된 작품이 될 전망이다. 드라마 <더 크라운>으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쉬 오코너가 아서를 연기하고,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친언니인 알바 로르바케르와 (로르바케르의 영화적 뿌리라 할 만한) 로베르토 로셀리니/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이자벨라 로셀리니 등이 출연한다.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토드 헤인즈

<메이 디셈버>는 <세이프>(1995), <파 프롬 헤븐>(2002), <아임 낫 데어>(2007), <원더스트럭>(2017)을 잇는 토드 헤인즈 감독과 배우 줄리안 무어의 다섯 번째 협업작이다. 무어와 더불어 나탈리 포트만도 출연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두 명의 배우가 만나는 작품이라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아직 제작되지 않은 훌륭한 시나리오를 뜻하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로 선정된 <메이 디셈버>는 20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커플(줄리안 무어, 찰스 멜튼)은 아이들을 대학 보낼 준비를 하는 중, 그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가 취재를 위해 찾아오면서 압박을 받는 이야기다. 밥 딜런의 일대기를 다룬 <아임 낫 데어>로 실존인물의 삶을 영화화 하는 혁신적인 연출을 보여준 바 있는 토드 헤인즈의 신작이라 더욱 기대되는 설정이다.


낙엽들

Kuolleet lehdet

Fallen Leaves

아키 카우리스마키

칸 영화제는 <어둠은 걷히고>(1996)부터 꾸준히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신작을 경쟁부문에 초청해 왔다. 카우리스마키는 201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희망의 건너편>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될 거라고 발표했는데, 다행히(?) 은퇴를 번복하며 새 영화 <낙엽들>을 만들어 이번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헬싱키의 슈퍼마켓에서 제로아워 계약으로 진열대 분류와 분리수거를 하며 홀로 살아가는 안사는 어느 날 밤 알코올중독자인 노동자 홀라파를 만나고, 온갖 오해와 난관을 무릅쓰고 사랑을 키워나가려고 애쓴다. <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90)를 잇는 프롤레타리아 시리즈로 알려졌으나 오랫동안 제작되지 않다가 2023년에야 볼 수 있게 됐다.


미래의 태양

Il sol dell'avvenire

A Brighter Tomorrow

난니 모레티

칸 경쟁부문은 세계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을 초청하는 게 관례다. 한국에서 개봉한 지 6개월 후에 초청돼 그랑프리까지 받은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처럼 그걸 거스르는 사례가 있는데, 지난 4월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난니 모레티의 신작 <미래의 태양>도 그렇다. 프로듀서인 아내와 관계가 좋지 않고 존 치버의 소설 「헤엄치는 남자」를 각색한 작품도 난항을 겪고 있는 영화감독 조반니(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모레티가 직접 연기했다)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꽤나 코믹하게 따라가는 영화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정치까지 아우른다. 영화 만들기가 서사의 뼈대가 되는 만큼 페데리코 펠리니, 막스 오퓔스, 자크 데미,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존 카사베츠, 존 랜디스 등 수많은 명감독들의 작품이 레퍼런스로 등장한다고.


유괴

Rapito

Kidnapped

마르코 벨로키오

작년 6부작 TV 시리즈 <외부의 밤>을 내놓고 두루 호평 받은 마르코 벨로키오는 벌써 또 다른 신작 <유괴>(키드냅)를 완성해 칸 영화제를 통해 공개한다. 다니엘레 스칼리제의 책 「모르타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가톨릭 가정부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황 비오 9세에게 납치돼 가족을 잃고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유대인 소년 에두아르도 모르타라의 실화를 그린다. 벨로키오는 1980년 <허공으로 뛰어들기>(리프 인 더 다크)로 처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이후 이따금씩 황금종려상 후보로 초청된 게 무색하게도 단 한번도 수상하진 못했는데, 이번에도 벨로키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지 여부도 소소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청춘

青春

Youth (Spring)

왕빙

베를린과 베니스와 달리, 칸은 다큐멘터리를 경쟁부문에 초청하는 데에 인색하다. 중국 감독 왕빙의 <청춘>은 2004년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이후 19년 만에 경쟁 후보로 오른 다큐멘터리다. <청춘>의 청춘은 상하이에서 150km 떨어진 도시 지리의 섬유를 만드는 젊은 노동자고 이들은 대부분 양쯔강 주변의 농촌 지역에서 모여들었다. 평균 연령 20세,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끼니는 복도에서 해결하면서 각자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일한다. 왕빙이 리밍 지역 청년 노동자의 생활을 기록한 <비터 머니>(2016)와 함께 '상하이 청춘' 프로젝트로 제작된 작품, 러닝타임은 3시간 32분이다. 왕빙은 정부의 박해 속에서 살아남은 작곡가 왕시린에 대한 다큐멘터리 <맨 인 블랙>도 이번 칸 영화제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괴물

怪物

Monster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1년 <디스턴스> 이래 수차례 칸 영화제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느 가족>(2018)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고, <아무도 모른다>(2004)의 야기라 유야와 <브로커>(2022)의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괴물>은 싱글맘 사오리가 아들 미나토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깨닫고 학교에 찾아가고, 엄마와 교사와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하며 비밀을 풀어낸다. 고레에다는 데뷔 이래 모든 작품의 각본을 직접 써왔지만, <괴물>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의 사카모토 유지가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조나단 글레이저

1990년대 중반 수많은 명작 뮤직비디오를 남긴 조나단 글레이저는 2000년 <섹시 비스트>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탄생>(2004)과 <언더 더 스킨>(2013)을 발표하며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리얼리즘과 SF를 조합한 <언더 더 스킨> 이후 무려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마틴 에이미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아우슈비츠의 사령관 루돌프와 아내 헤드윅이 수용소 옆에 집과 정원을 꾸려 행복한 삶을 꾸려간다는 시놉시스만 알려진 상태다. 원작소설은 나치 장교가 수용소 소장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글레이저의 영화가 그 설정까지 가져왔는지는 미지수.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아우슈비츠에서 촬영했다는 사실과 현재까지 유일하게 공개된 스틸컷의 평화로운 분위기의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얀 리본>(2009)의 크리스티안 프리델이 루돌프, <토니 에드만>(2016)의 산드라 휠러가 헤드윅 역을 맡았다. 세 전작을 모두 다른 촬영감독과 만든 글레이저는 <이다>(2013) <러빙 빈센트>(2017)의 우카시 잘(Lukasz Zal)과 함께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찍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