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번째 죽음이다. 2022년 빌라왕 사태에서 비롯된 전세 사기로 보증금을 모두 잃고, 삶의 터전이 망가져 버린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이 벌써 네 번이나 반복되었다.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인 의식주지만, 202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마지막 글자 ‘주’를 영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청년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이라는 슬로건은 이제는 가닿지도 못할 만큼 허황된 거품이 되어버렸고, 전세와 월세살이마저 이제는 보증금 사기로 불안에 떨어야 한다. 불법 개조된 독방 같은 방마저 사람 사는 집이라고 세를 놓는 현실이니, 자신만의 공간에서 잠을 자는 일마저 벅찬 시대가 되었다.

<기생충> 스틸컷

주거 공간을 둘러싼 청년 세대의 절망과 중장년 세대의 불안감은 한국의 예술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영화계 역시 이런 사회의 암울한 풍경을 담아냈다. 당장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만 보아도,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침수를 겪는 기택(송강호) 가족과, 평창동의 유명 건축가가 지은 화려한 전원주택에 사는 박 사장(이선균) 가족의 대비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번 5월 31일에 개봉하는 영화 <드림팰리스>도 주거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을 촘촘하게 담아낸 영화다.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필요한 집이 누군가에게는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고, 사기와 투기의 장이 되는 현시대를 고발하는 몇 편의 독립영화들도 함께 소개하려 한다.


<드림팰리스>(가성문 감독, 2023)

드림팰리스. 직역하자면 꿈의 궁전이라는 뜻이지만, 이 이름이 붙은 아파트는 꿈과는 꽤 거리가 멀다.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은 오랜 기간 진상 규명을 위해 농성을 벌이지만, 끝내 기업과 합의를 하곤 그 돈으로 드림팰리스라는 아파트를 분양하게 된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사 온 첫날부터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종일 흘러나온 상태. 미분양된 세대가 많아 아파트의 부실 공사를 방치하고 있는 시행사 측은 혜정의 수리 요구에 잔여 세대 분양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무기력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혜정은 스스로 분양자를 찾기 위해 전단을 돌리고 현수막을 내걸지만, 아파트 주민 대표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녀를 시행사에서 보낸 첩자라고 의심한다.

한편 혜정과 함께 농성을 이어갔던 ‘수인’(이윤지)은 방화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수감된다. 함께 농성하던 유가족들은 수인의 남편이 하청업체 출신이 아닌 본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면회도 오지 않는다. 수인은 그런 유가족들의 모습에 점차 흔들리게 되는데. <드림팰리스>는 집값과 부실 공사라는 아파트 미분양 사태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산업재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노동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거 공간과 노동 현장에 대한 담론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존엄과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혜정은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다. 하지만 번지르르한 아파트에서 녹물이 계속 나오는 것처럼, 그녀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은 반대로 그녀를 점차 곤경에 빠뜨리고 만다. <드림팰리스>의 비극은 오로지 피해자들끼리 의미 없는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 이 사태를 만든 더 큰 사회의 구조와 기업은 뒤에서 웃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홈리스>(임승현 감독, 2022)

<드림팰리스>가 노동 문제와 주거 문제를 촘촘하게 엮어냈다면, <홈리스>는 주거 문제에 독거노인 문제를 함께 엮어냈다. 급하게 아이를 갖게 된 어린 부부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어린아이를 위해서 급히 전셋집을 구한다. 한결은 배달 대행, 고운은 전단지 알바를 하면서 힘겹게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했지만, 이사 전날 고운은 보증금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임시 거처로 머문 찜질방에서 아이는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가게 된다. 지친 고운은 더는 찜질방과 모텔을 전전하며 살고 싶지 않다며 한결에게 역정을 낸다. 한결은 고운과 아이를 데리고 낯설고 오래된 전원주택으로 향한다.

한결이 향한 집은 그가 자주 배달을 나갔던 할머니의 집이었다. 그녀는 가족과의 어떤 왕래도 없이 홀로 살면서, 한결에게 형광등 교체 같은 잡무를 부탁했는데, 한결은 불편한 내색 없이 항상 그녀를 도와주었다. 한결은 고운에게 할머니가 한 달간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집 관리를 맡겼다고 말했지만, 어딘가 불안함을 내비치고 있다.

<홈리스>는 2022년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2020년에 제작된 작품이기에 영화가 현실이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홈리스>는 청년 세대에게는 집이 없다는 슬픔과 노년층에는 곁에 사람이 없다는 고독이 공명하고 있다. 동시에 임승현 감독은 이 문제를 스릴러라는 장르 문법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주거 빈곤과 독거노인의 문제는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홈리스>의 후반부에서 이어지는 일련의 선택들은 극적인 동시에 가슴 아픈 선택이기도 하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박송열 감독, 2022)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앞서 언급한 <드림팰리스>, <홈리스>만큼 직접적으로 주거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적어도 그들이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은 녹물이 나오지도 않고, 보증금 사기를 당하지도 않은 안전한 집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그들의 월세 계약이 곧 만료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재계약을 하게 되면 주인이 보증금을 얼마나 올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부부인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는 실직 이후 단기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영태는 대리운전기사 일을 하고 정희는 기간제 교사를 하지만, 도저히 이들의 벌이로는 부족한 생활비와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영태는 아는 형에게 비싼 카메라를 빌려주었지만 이후 그와 연락이 끊겼고, 정희는 가계부를 작성하던 중 300만 원이 빈다는 것을 깨닫고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고민한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에서 묘사되는 가난은 그리 극적인 요소가 아니다. 두 부부는 회에 소주를 한 잔 곁들이거나, 원한다면 꽈배기나 비싼 음료를 카페에서 시켜 먹을 수 있을 만큼 소소한 여유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삶에 만연한 것이 빈곤이라는 상태기도 하다. 어머니의 생신에 소박한 선물 하나 준비하지 못하고, 비싼 카메라 하나를 빌려주는 데에도 고민하게 만드는 하나의 상태로 존재한다. 이들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하고 아늑하지만 그들의 것이 아닌, 그래서 언제든 퇴거해야만 하는 상태에 놓인 그들의 집은 과연 안정감을 주는 공간일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제목처럼 이들 부부가 겪고 있는, 상태로서의 빈곤은 지속해서 불편함을 야기한다. 극적이지는 않지만, 더위와 추위라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상황. 그런 상황은 돈 300만 원에도 두 부부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역시 그들의 상황처럼 극적이지 않지만, 삶에 녹아 있는 가난과 불안이라는 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