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다> 메인 예고편

촉망받는 국회의원 후보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 선거를 15일 남겨둔 때, 딸 민진(신지훈)이 사라진다. 오로지 당선만이 목표인 종찬과 달리, 연홍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민진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맞닥뜨리는 사실들에 혼란스러워 하던 연홍은, 급기야 민진의 친구 미옥(김소희)과 종찬의 선거 라이벌 노재순(김의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연홍의 집에서 노재순의 측근이 설치한 도청 장치가 발견되는데...


<비밀은 없다>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내놓는 8년 만의 신작이다. 감독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양미숙(공효진)과 그녀를 둘러싼 기괴한 인물들을 내세운, 전무후무한 코미디 <미쓰 홍당무>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출발시켰다. 초반 설정만 보자면 <비밀은 없다>는 <미쓰 홍당무>에 비해 다소 평범해 보인다. 국회의원 후보의 부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연홍의 고군분투를 그렸는데, 정치인을 소재로 삼은 스릴러의 틀로 보자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줄거리다. 하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무척이나 새롭다. 당신이 무엇을 예상하더라도 그걸 보란 듯이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비밀은 없다>가 낯선 형식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걸 놓치지 않고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했다.” 오랜만에 발표하는 새 영화. 이경미 감독은 타협하지 않았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앞으로 밀어붙일 이미지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공간과 인물을 자로 잰 듯 정 가운데에 배치하는 강박적인 구도를 계속 고집하면서, 인물들이 처해 있는 현재 상황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런 이미지가 점차 익숙해질 즈음부터는 (<곡성>을 작업한 바 있는) 장영규가 만든 음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프리재즈를 방불케하는 불협화음 아래, 아이를 수소문하는 엄마의 슬픔과 인물들이 내뱉는 냉소 섞인 유머가 느닷없이 뒤섞인다. 이런 요소들이 관객들이 <비밀은 없다>를 따라잡을 만한 감정선을 부러 흩뜨려 놓는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연홍이 민진의 비밀에 한발 더 나아가는 과정에서는 휴대폰으로 촬영한 듯한 영상, 노래방 영상 같은 화면, 암호에 가까운 노랫말 등 상업영화에서 도통 시도하기 어려운 설정들이 영화 전반에 넘실댄다. 그것들이 만드는 혼란스러운 리듬은 빈부격차, 동성애 혐오, 왕따, 지역감정, 학교 시스템 등 한국 사회의 폐부가 뒤엉킨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또한 연홍이 경험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의 풍경인 듯도 하다. 두 지점 모두 희망이란 없는 처절한 지옥이긴 마찬가지다. 어수선한 와중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비밀을 향해 직진하는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관객들을 비밀의 수렁에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이런 흔치 않은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비밀은 없다>에 대한 감상도 크게 갈라질 것이다.

<비밀은 없다>는 명백히 손예진을 위한 영화다. 손예진이 연기한 연홍은 (남편의 당선을 통한) 출세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 민진의 구출을 궁리한다. 끈질기게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도 멍청함과 무모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이기에 극단적인 감정 연기를 영화 초반부터 선보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판도라의 상자를 하나하나씩 열면서 단순히 ‘광기’라 부르기엔 모자란 복합적인 심리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멜로로 시작해 코미디, 스릴러, 액션까지 장르의 한계를 넘나들던 이 명석한 배우는 <비밀은 없다>를 통해 이전까지 쌓아온 커리어의 상한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