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분야를 들여다보든 자주 보이는 마법의 단어.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한때는 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인공지능이 이제는 일상까지 파고들었으니 참 묘하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늦게 도달할 것이라 예상한) 예술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며 충격을 주고 있다. 영화계에도 마찬가지인데, 할리우드에선 인공지능을 견제하기 위한 작가들의 파업이 한창이고 팬들은 인공지능을 장난감 삼아 제3의 창작물을 공개하고 있다. 그중 인공지능으로 재창조한 영화 포스터들을 가지고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살펴보자.


인공지능 포스터의 선봉장, 괴이한 듯 귀엽기도

이 분야 선봉장은 '로보모조'(robomojo)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인공지능 모델이 배포된 후 발 빠르게 '포스터 리메이크'에 착수한 로보모조는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인공지능 특유의 직설적인 제목 해석과 몽환적인 일러스트가 묘하게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 중 보는 사람에 따라 괴상하고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빼고 무난하게 재해석된 것을 몇 개 선정했다.

<쥬라기 공원>

<쥬라기 공원>은 한층 귀여워졌다. '쥬라기 공룡이 있는 공원'에서 '쥬라기 공룡이 공원에 놀러간다'로 제목이 재해석돼 휴가를 앞두고 들뜬 공룡의 모습이 포스터에 그려졌다. 차에 엉덩이만 걸쳐놓고는 해맑게(?) 웃고 있는 티렉스의 모습이 귀엽다.

<디어 헌터>

베트남전 배경의 반전(反轉) 영화 <디어 헌터>는 갑자기 다크 판타지풍의 사냥 영화가 됐다. 사슴 사냥꾼이 사람이 아니라 사슴이란 충격적 반전. 늠름한 사냥꾼 뒤에서 슬쩍 보이는 사슴을 보면, 사슴 사냥꾼이 아니라 사슴 보호자인 것만 같다.

<배트맨 비긴즈>(왼쪽), <엑스맨 탄생: 울버린>

'비긴즈' '오리진' 이런 단어들은 인공지능에서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왼쪽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 오른쪽은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포스터다. 다른 인공지능의 포스터들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그냥 귀엽기에 보여준다.

'갓질라' <고질라>

영어로는 Godzilla인 <고질라>는 글자 그대로 신이 되고 말았다. 단순히 신이 됐다를 넘어서 신이 거니는 공룡들의 천국으로 거듭났다. 추측해보자면 '뿌연 연기 사이에 서 있는 거대한 공룡'과 'GOD질라'라는 제목이 결합돼 이런 풍경을 묘사하게 한 것일 듯.


형형색색의 추상화?

노아 벨트만(noah veltman)이란 개발자는 영화의 기본 스토리나 설명만 넣어서 이미지를 제작했다. 그래서인지 위와 같은 포스터라기보다 영화를 본 후 그린 한 폭의 추상화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본인도 홈페이지에는 하단을 클릭해야만 제목을 볼 수 있게 해놨는데, 이게 뭐지 싶다가 제목을 보면 꽤 납득이 되긴 한다.

그(가 쓰고 인공지능이 그린)의 그림 중 가장 직관적으로 보이는 건 이 이미지. 하얀 의복을 입은 사람들과 가운데의 어떤 조형물, 그리고 그걸 둘러싼 듯한 모습.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다.

이번 이미지도 쉬운 편이다. 광활한 평야와 불을 뿜으며 달리는 차량(처럼 보이는 뭔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다. 불 뿜으며 질주하는 이미지가 참 독보적이긴 한데, 차량 디자인만 봐서는 무슨 <에일리언>이나 테리 길리엄 감독 영화가 생각나기도.

이 기괴한 그림. 콜라주 기법을 잔뜩 사용한 것 같은 이 이미지는 제목을 들으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어쩌면 저 비틀린 얼굴에서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다. 좁디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존 말코비치를 조종할 수 있는 영화의 내용이 꽤 그럴싸하게 담겨 있다.

다른 이미지들에 비해 그나마 화사한 인형극 느낌을 주는 이 이미지, 주인공은 누구일까. 딱 봐도 가운데 인물의 괴상한 팔이 눈에 띄는데, 정답은 <가위손>이다. <가위손>이라고 알고 보면 그 팔이 가위의 손잡이였구나 그제야 보인다. 배경의 집들도 영화 속 파스텔톤의 정갈한 마을 풍경을 나름대로 구현한 것이구나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이 보는 공포란 이런 걸까

영국의 디지털 에이전시 'Evoluted'는 인공지능 분야가 부흥하자 마케팅을 위한 묘안을 낸다. 공포영화 걸작들의 포스터를 인공지능으로 재창조한 것. 10편밖에 안되는 리스트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버거운 이미지일 수도 있어 그중 순한 맛에 가까운 몇 편만 함께 만나보자.

<사탄의 인형>

<사탄의 인형>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인형으로 대체됐다. 이미지 자체는 의외로 깔끔하고 직관적으로 영화의 소재를 전해주는데, 그래도 이 인형이 영화의 핵심 '처키'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어딘가 어색하다.

<죠스>

<죠스>는 상어가 조성하는 공포감이 아닌 상어라는 생명체의 무시무시함을 원본 포스터보다 더 부각시켰다. 한국 개봉 당시 제목 '아가리'가 꽤 잘 어울릴 법한 포스터. 다만 영화의 서스펜스에 비하면 훨씬 더 'B급'스러운 느낌인 건 부정할 수 없다.

<드라큘라>

이 드라큘라는… 흡혈귀라기보다 <그것>의 페니와이즈를 연상시킨다. 창백한 피부, 뾰족한 치아, (피도 사람의 일부니까) 사람을 먹는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한편으론 한때 쇼크록의 선두주자였던 마릴린 맨스의 공포영화 버전 같기도 하다.

<새> 포스터 원본(왼쪽), 인공지능이 그린 <새> 포스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는 원본보다 좀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특히 핏자국을 중심으로 퍼진 숲과 새들의 모습은 꽤 그럴싸한 디자인 같다. 다만 이쪽은 <새>보다는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 「갈까마귀」에 더 적당해보이긴 한다. <새>는 대낮에 시작되는 새들의 습격이 전체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것에 비해 이 포스터는 너무 어두컴컴하달까.


할리우드 대표작 <스타워즈> 재해석은?

인공지능이 SF 장르의 단골 소재여서 그런지, 이런 인공지능 팬메이드 포스터에서 빠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바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다. 특히 아이코닉한 캐릭터 다스베이더나 스톰트루퍼 덕분에, 포스터마다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재해석된 것이 킬포.

(왼쪽부터) 로보모조, 노아 벨트만, 판타즘_ai의 <스타워즈> 포스터

로보모조의 <스타워즈>는 감동 서사에 어울려 보인다. 다스베이더라는 캐릭터와 부자 사이의 이야기란 점 때문일까, 누가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어린 자식을 데리고 살아가는 가족 영화인 줄 알겠다. 일본 영화 <아들을 동반한 검객>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반면 노아 벨트만의 포스터는 누가 봐도 스톰 트루퍼, 혹은 X-윙들의 전투를 묘사한 것 같다. 다만 모델 특성상 이 반짝반짝함이 꼭 스테인드 글라스를 활용한 현대미술 같기도. 그림 가운데 커다란 검은 도형은 제국군의 스타 디스트로이어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북미 커뮤니티 '레딧' 유저 phantasm_ai는 인공지능으로 레트로풍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스타워즈>가 꼭 소련 시절 영화처럼 보인다. 가운데는 분명 다스베이더인데, 이게 다스베이더 같다가도 <닥터후>의 달렉 같다가도 검은 R2-D2 같은 이 미묘함이란.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