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슬픔의 삼각형>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을 비롯해 브리 라슨, 줄리아 뒤쿠르노, 폴 다노 등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정리했다.


* 황금종려상 *

쥐스틴 트리에

<추락의 해부학>

Anatomie d'une chute

Anatomy of a Fall

올해 황금종려상은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학>(아나토미 오브 어 폴)에 돌아갔다. 1993년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 2021년 줄리아 뒤쿠르노(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 중 하나였다)의 <티탄>에 이어 여성 감독이 받은 세 번째 황금종려상. 4년 전 <시빌>(2019)로 처음 칸 경쟁부문 후보에 오른 트리에의 신작 <추락의 해부학>은 앞을 볼 수 없는 11살 아들과 산속에서 사는 독일인 작가 잔드라가 집 앞에서 시체로 발견된 남편 사뮤엘을 죽였다는 혐의로 기소돼 결백을 증명하고자 애쓰고 1년 뒤 아들이 재판에 참석해 부모의 관계를 진술하는 과정을 그린다. 감독의 전작 <시빌>(2019)을 함께 한 독일 배우 산드라 휠러가 주인공 잔드라(와 남편 사뮤엘 모두 해당 배우의 이름을 따왔다) 역을 맡아 영화를 이끌어간다. 트리에의 데뷔작부터 꾸준히 시나리오를 같이 써오고, 2021년 연출작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 100일>을 발표한 남편 아서 하라리(Arthur Harari)가 <추락의 해부학>에도 공동각본과 단역으로 참여했다.


* 심사위원대상 *

조나단 글레이저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산드라 휠러의 또 다른 주연작이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언더 더 스킨>(2013)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영국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의 소설을 느슨하게 각색한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와 그의 아내 헤드비히가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제가 끝난 현재까지 예고편은커녕 공식 스틸컷조차 딱 하나만 공개된 상태인데, 실제 아우슈비츠 지역에 찾아가 촬영한 결과물은 리뷰들에 의하면 위 이미지처럼 나치 장교들과 가족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멀찌감치서 잡고 수용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가 그 주변에 퍼지는 걸 담았다고 한다. 영화제 초반에 공개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응이 이어졌다. 2015년 칸 영화제를 통해 공개돼 주인공 사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연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재현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울의 아들> 역시 당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감독상 *

트란 안 홍

<도댕 부팡의 열정>

La Passion de Dodin Bouffant

The Pot-au-Feu

1993년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로 칸 영화제 (신인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훙은, 이후 20년 만에 <도댕 부팡의 열정>으로 경쟁 부문 후보에 처음 올라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베트남을 떠나 연출한 글로벌 프로젝트 <나는 비와 함께 간다>(2009)와 <상실의 시대>(2010)가 좋지 못한 반응을 얻은 후 프랑스 영화계로 적을 옮겨 <이터니티>를 내놓은 안 홍이 칸 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명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과 작업한 19세기 시대극이다. 마르셀 루프의 소설 속 미식가 캐릭터 도댕 부팡을 빌려와, 이름난 미식가 도댕과 그의 밑에서 20년간 일하며 음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키운 셰프 외제니의 로맨스를 그렸다. 안 홍은 수상 소감 중 “요리라는 예술을 소재로 삼아 사랑 이야기를 접목하면서 후각, 미각, 촉각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 여우주연상 *

메르베 디즈다르

<마른 풀들에 대하여>

Kuru Otlar Üstüne

About Dry Grasses

튀르키예의 시네아스트 누리 빌게 제일란 역시 칸 영화제의 편애를 받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다. 2003년 <우작>부터 지난 20년간 발표한 7편의 작품이 모두 칸 경쟁 부문에 초청돼, 황금종려상(<윈터 슬립>)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상을 차지했다. 이번 신작 <마른 풀들에 대하여>(어바웃 드라이 그래시스)는 배우 메르베 디즈다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작은 마을에서 의무 근무를 마치고 이스탄불로 발령받기만을 고대하는 젊은 교사가 여학생으로부터 성적 학대 혐의로 기소 당하고 절망에 빠지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미래에 대한 전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느릿느릿(러닝타임이 197분이다) 전개하는 영화에서 디즈다르는 앙카라에서 폭발로 다리를 잃은 동료를 연기했다. 제일란과는 처음 작업하는 디즈다르는 튀르키예 내에선 극장, 연극, TV, OTT 등 다방면에서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늘려가고 있는 배우다.


* 남우주연상 *

야쿠쇼 코지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남우주연상은 2년 연속 아시아 배우가 가져가게 됐다. <브로커>(2022)의 송강호에 이어, 올해는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일본/독일 합작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야쿠쇼 코지가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 배우가 이 상을 받은 건 <아무도 모른다>(2014)의 야기라 유야가 최연소 수상 기록을 세우고 19년 만의 일.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가 묵묵하고 성실하게 제 업무를 다하고, 벤치에 앉아 점심 식사 중 나무를 바라보다 그걸 카메라에 담고, 분주한 국수 가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일상을 따라간다. 그동안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1997),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2000),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2006) 등 칸 경쟁작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겨온 야쿠쇼가 한껏 힘을 덜어낸 채 소박한 하루하루를 지나며 삶을 가치를 깨달아가는 평범한 중년 남성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심사위원상 *

아키 카우리스마키

<낙엽들>

Kuolleet lehdet

Fallen Leaves

심사위원상은 지난 3년 연속 공동 수상했는데, 올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낙엽들>(폴른 리브즈) 한 작품이 받았다. 카우리스마키는 올해 의례 따위에 개의치 않고 레드카펫을 지나가는 태도로 화제를 모았는데, 수상 소감과 포토콜 자리에도 주연 배우 알마 포이스티와 주시 바타넨이 대신 섰다. 전작 <희망의 건너편>(2017)을 내놓으며 밝힌 은퇴를 번복하며 발표한 새 영화 <낙엽들>은 카우리스마키가 1980년대 중후반에 만든 '프롤레타리아' 시리즈의 일환으로 계획됐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오게 됐다. 비정규직으로 많은 일을 하는 안사가 알코올중독자인 홀라파를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로맨스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모습이 눈에 선한 이야기인데, 쓸쓸함이 묻어나는 제목과 달리 봄의 정취가 느껴지는 영화라고 한다. 한편, 인물들이 종종 듣는 라디오 뉴스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 나온다는 설정은 명백히 당대에 대한 카우리스마키의 목소리일 것이다.


* 각본상 *

사카모토 유지

<괴물>

怪物

Monster

2010년 이창동의 <시>가 수상한 각본상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몬스터>가 받았다. 여느 때였다면 데뷔작 <환상의 빛>(1995)부터 직접 시나리오를 써온 고레에다가 받았을 테지만, 이례적으로 고레에다가 연출만 맡은 <몬스터>는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몫이 됐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사카모토의 작품으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한국에도 리메이크 된 드라마) <마더>(2010),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 등이 있다. 어릴 적 같은 학교를 다녔던 고레에다와 사카모토는 서로의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한 바 있다. <몬스터>는 싱글맘 사오리(고레에다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을 장악한 안도 사쿠라가 연기했다)가 아들 미나토가 점차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학교에 찾아가 그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이 엄마, 교사, 아들의 시점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