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2006)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양윤서, 임수정 등의 훌륭한 선수로 인해 그 존재가 많이 알려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여자 씨름 리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여자 씨름 대회 자체는 1991년부터 있었음에도, 구색을 갖춘 씨름단이 생기기 시작한 건 2011년 전남 구례군이 반달곰씨름단을 만든 게 최초였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씨름의 주된 이미지는 이만기와 강호동으로 대표되는, 마초들의 테스토스테론 가득한 승부였다. 남자의 강력한 힘, 힘을 줄 때마다 울끈불끈 맥동하는 등줄기와 팔뚝의 근육, 잔뜩 성이 난 채로 상대의 무게를 버티고 서있는 허벅지 같은 것에 대중은 열광했다. 씨름은 아주 오랫동안 남자의 스포츠였다.
그러니까 남자의 몸에 갇힌 채 살아가는 고등학생 동구(류덕환)는 씨름 같은 건 큰 관심이 없었다. 트랜지션(성별확정수술)을 받을 날만 기다리며 돈을 모으던 동구에게 ‘남자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리가 있나. 씨름부 코치(백윤식)가 동구의 덩치와 튼실한 장딴지를 보고 씨름부 입단을 추천할 때도, 동구는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붉은 치파오 안에 예쁘게 들어갈 몸매를 만들고 싶은 거지, 지금의 비만 체형과 장딴지를 이용해서 씨름을 할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며 춤을 추고 싶은 거지, 들배지기로 상대를 모래판에 꽂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주정뱅이 아버지 용택(김윤석)이 사람을 때리고 돌아온 탓에, 트랜지션을 위해 동구가 모아뒀던 돈의 상당 부분은 합의금으로 지출되고 만다.
가까워지는가 싶으면 또 한 발 멀어지는 트랜지션의 꿈 앞에서 크게 상심하던 동구의 귀에, 친구 종만(박영서)이 무심코 던진 말이 날아와 꽂힌다. “씨름? 그거 관뒀어. 에이 씨, 씨름대회 나가서 장학금 타면 노트북 사려고 했는데. 오토바이랑.” 우승상금이 500만 원이라는 소리에 동구의 눈빛은 돌변한다. 그 돈이면 부족한 액수를 메울 수 있다. 트랜지션을 받을 수 있다. 세상 앞에 여자로 당당하게 설 수 있다. 더는 밤에 혼자 서럽게 몽정한 속옷을 빨면서 자신이 남자의 몸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깟 씨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동구는 보다 더 진실한 자신이 되기 위해, 그저 자신으로 살 수 있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이 바라던 삶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씨름의 세계로 투신한다.
하지만 샅바의 붉은빛에 이끌려 샅바를 사리처럼 두르고 예쁜 포즈를 취해 보이던 동구에게 씨름부는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씨름부 주장 준우(이언)는 매섭게 잘라 말한다. “재밌냐? 놀 거면 딴 데 가서 놀아, 이 새끼야. 여기 너처럼 기집애 같은 새끼들 재밌으려고 있는 데 아니야. 두 번 말 안 한다. 당장 꺼져.” 씨름이 남성성과 맞닿아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건 동구를 못마땅해하는 주장만이 아니다. 동구를 씨름부로 데리고 온 코치 또한, 샅바를 매는 법을 알려주며 이것이 남자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게 뭐라고?”
“샅바요.”
“그래, 샅바. 샅이라는 건 여길 말하는 거야. 샅바라는 게 여기다 매는 줄이라는 뜻이거든. 그럼 여긴 뭐가 있느냐. 불알이 있다. 이거야.”
“아, 네…”
“자고로 남자의 힘은 불알. 응? 옛날엔 이 샅바에 천하장사의 정기가 있다고 믿어서, 아낙네들이 죄다 그걸 속곳으로 만들어 입었어. 아들을 보려고. 왜? 힘의 원천이었거든, 이게.”
‘기집애 같은 새끼’라는 말은 편견에 가득 차 있고 폭력적인 말이지만, 동시에 일정 부분은 동구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말이다. 샅바를 매어주는 코치의 손길은 자상하지만, 씨름에 필요한 힘이 불알에서 나온다는 그의 말은 동구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동구를 쫓아내고 싶어 하는 주장은 얼떨결에 동구의 본질을 간파하고, 동구를 영입하고 싶어 하는 코치는 트랜지션으로 제거하고 싶은 장기를 자꾸만 강조하는 한계에 갇혀있는 이 아이러니.
하지만 씨름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고, 재능은 성별과 무관하게 온다. 젖꼭지를 보여주는 게 창피해서 밴드를 붙여야 간신히 모래판에 서는 동구는, 같은 씨름부 선배들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척척 모래판에 꽂아버린다. 씨름대회에 나가 만만찮은 상대들과 붙어 착착 이겨낸다. 씨름이 남성적인 스포츠라는 편견을 전복함으로써, 세상 만물을 젠더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려는 시각을 뒤집는다. 무엇보다, 술 먹고 가족들을 때리는 것 말고는 다른 소통 방식을 모르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뒤집기로 넘겨버린다. 아버지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아버지를 넘긴 뒤 동구는 당당하게 서서 말한다. “이게, 뒤집기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동구는 “가드 올리고, 상대 주시하고”라는 아버지의 조언도, “상대의 움직임에서 내 중심을 찾”으라던 주장의 조언도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승리한다. 상대를 주시하긴커녕 두 눈을 감고,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게 아니라 온전히 상대에게 제 몸을 맡긴 채로. 어쩌면 그건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지 않았을까. 엄마(이상아)의 말처럼 트랜지션 이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구는 그 싸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낼 것이다. “가드 올리고, 상대 주시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방식 말고, “상대의 움직임에서 내 중심을 찾”는 주장의 방식 말고. 온전한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동구만의 방식으로.
6월은 프라이드 먼쓰(Pride Month)다. 성소수자들이 사회의 일원이자 대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투쟁해 온 역사를 되돌아보며, 성소수자들은 제 정체성에 대한 자긍을 되찾고, 비(非)성소수자들은 보다 더 다양한 존재들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달. 그 6월의 시작에, 나는 〈천하장사 마돈나〉(2006)를 다시 꺼내 본다.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 같은 말로 트랜스젠더의 외모를 규정하는 편견을 쓰러뜨리고, 씨름은 남성적인 스포츠라는 편견을 되치기하고, 젠더 이분법으로 만물을 바라보는 한계를 뒤집었던 이 용감한 영화를.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며 춤을 추고 웃어 보이는 동구는 참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프라이드 먼쓰에 딱 어울리는 웃음이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