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요즘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좋은 소식이든, 안 좋은 소식이든 들려오는 가운데 바다 건너 할리우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AI 도입 금지, OTT 관련 처우 개선 등을 새로운 표준 계약 조항으로 내세운 미국 작가 협회(WGA) 파업이 한 달 가량 지속되고 있다. 작가들의 움직임에 동료 영화인들도 힘을 실고 있어 파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그렇기에 많은 영화/드라마 제작진이 담당 작품의 작업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한 사람의 관객 입장에선 이 작품들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영화계 인근에서 일하는 일원으로선 작가들의 목소리가 수용되길 응원하게 된다. 근래 파업 관련하여 잠정 중단을 선택한 작품들을 모았다.
OTT 플랫폼의 킬러 콘텐츠
<기묘한 이야기> 시즌 5
<만달로리안> 시즌 4
<세브란스> 시즌 2
이전에 발행한 '할리우드 소식'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먼저 간단하게 다시 짚겠다. 이번 WGA 파업은 'OTT 플랫폼 작업시 처우 개선'이 주요 안건인 만큼 OTT 관련 작품들이 가장 먼저 중단됐다. 일단 넷플릭스 성장의 일등공신이자 80년대 노스탤지어의 정수 <기묘한 이야기>가 중단됐다. <기묘한 이야기>는 인디애나주 호킨스에서 벌어지는 실종과 초능력, 비밀 실험 등을 그린 드라마다. 미스터리와 하이틴 장르를 섞어 어른에겐 향수를, 아이에겐 호기심을 자극했고 우정을 발판 삼아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 5는 시리즈의 종장으로 알려져 많은 시청자들이 기다렸는데, 아쉽게도 제작이 중단됐으니 2024년 공개 예정은 기대하면 안 될 듯하다.
디즈니플러스의 콘텐츠이자 (시퀄 삼부작의 몰락으로) 죽어가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살렸다는 평가받는 <만달로리안>의 새로운 시즌도 멈췄다. 만달로어인(만달로리안)과 '베이비 요다' 그로구의 모험을 그린 해당 시리즈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클래시컬함과 서부극의 황량한 분위기, 그리고 삶에 지친 한 사람이 유약한 아이의 보호자가 돼 새로운 희망을 엿본다는 구성의 정서를 혼합해 호평받았다. 다만 시즌 3의 반응은 영 신통찮았는데, 시리즈의 기존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은 시즌 3 이후 과연 제작진이 어떻게 시즌 4를 구성할지 당분간은 그 호기심을 잊고 사는 게 좋을 듯하다.
애플TV+의 킬러 콘텐츠 <세브란스: 단절>도 시즌 2의 엑셀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일상생활과 회사 생활의 기억을 완전히 분리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세브란스: 단절>은 기상천외한 설정과 서슬 퍼런 전개로 '역대급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았다. 사실 시즌 1 방영 후 거의 바로 시즌 2 제작에 착수했기에 촬영까지 거의 마쳤지만, 파업의 영향으로 방영 시기를 미룬다고 밝혔다. 아무리 빨리 파업이 정리된다 해도 2024년은 돼야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마블의 신작들
<썬더볼츠>
<스파이더맨 4>
<블레이드>
최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성공으로 다시 한번 물살을 타야 할 마블 스튜디오도 어쩔 수 없이 숨 돌리게 됐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유기적인 세계관을 구성하는 마블 스튜디오 입장에서 작가들의 파업은 그 누구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현재 작가 파업으로 화두에 오른 마블 신작은 <썬더볼츠>, <블레이드>, <스파이더맨 4>(가제)다. <썬더볼츠>는 <블랙 위도우>에 등장한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 태스크마스터 등과 기존 마블 영화/드라마에 등장한 U.S. 에이전트(와이엇 러셀), 고스트(해나 존케이먼),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 등이 발렌티나 폰테인의 지시를 받고 한 팀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DC 영화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20세기 폭스의 <데드풀>처럼 선역이라기엔 나쁜 캐릭터들이 모이는 팀업 무비다. 본래 6월 중 촬영 예정이었으나 촬영 일정을 통째로 미뤘다.
<블레이드>는 어쩐지 옆 동네 <플래시>나 <블랙 아담>의 길을 따라 걷는 듯하다. 블레이드 역에 마허샬라 알리가 발탁된 게 2020년인데 개발 단계에서 각본가도 바뀌고 감독도 바뀌고 하여튼 지지부진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최초 발표 때만 해도 지금쯤 개봉 소식이 왔어야 정상인데, 개봉은커녕 촬영도 시작하지 못하고 중단 상황에 접어들었다. 블레이드는 인간과 흡혈귀의 혼혈로 태어난 흡혈귀 사냥꾼 캐릭터로 과거 웨슬리 스나입스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어느새 마허샬라 알리도 반백살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미뤄지면 장기적인 플랜에도 영향이 가지 않을는지 걱정이 든다.
만인이 기다리는 <스파이더맨 4> 역시 당분간은 보기 어려워보인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결말로 스파이더맨의 MCU 잔류 여부가 걱정됐으나, 마블 스튜디오와 소니는 이미 새로운 삼부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초부터 각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고, 5월 말 톰 홀랜드가 마블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며 복귀를 암시했다. 하지만 역시 파업 때문에 모든 진행 과정이 중단됐기에 현재로선 '제작은 한다' 정도일 뿐,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얻을 때까진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더 배트맨 월드
<더 배트맨 - 파트 II>
<더 펭귄>
마블 스튜디오처럼 DC 스튜디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제임스 건을 중심으로 한 리부트야 아예 초반 작업이니 티가 안 나는데, 문제는 <더 배트맨>의 속편과 스핀오프다. 로버틴 패틴슨이 배트맨으로 활동한지 몇 년 안 된 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더 배트맨>은 현실적인 배경에 배트맨의 고뇌와 수사극을 녹여내 호평을 받았다. 제작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속편 역시 파업으로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 적어도 6개월 정도 일정이 밀렸다고. 처음부터 2025년 개봉이라는 다소 여유로운 제작 일정이었기에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기다리는 관객들 입장에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것이다. 해당 세계관에서 '펭귄' 오스왈드 코블팟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더 펭귄>도 촬영을 마치고 부지런히 후반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피켓 시위로 촬영이 중단되는 등 쉽지 않은 일정을 보내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99>
애초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것 없는 프로젝트인데, 미뤄졌다고 하니까 평생 못 볼까 겁나는 작품도 있다.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속편이자 드라마 <블레이드 러너 2099>다. 2017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로부터 50년이 지난 세계를 배경으로 리플리컨트의 이야기가 이어질 이번 드라마는 리들리 스콧이 각본 겸 제작으로 참여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뤄져도 크게 달라질 건 없긴 한데, 1편에서 2편까지 35년이나 걸렸던 시리즈 역사 때문에 이러다 못 보는 거 아닌가 괜스레 걱정부터 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세도 있고. <블레이드 러너 2099>는 프라임 비디오로 공개될 예정이다.
<커뮤니티> 극장판
'6개 시즌, 영화 한 편'라는 표어를 남기고 종영한 드라마 <커뮤니티>가 진짜 극장판을 촬영하기 직전, 파업으로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그린데일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의 일상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 <커뮤니티>는 댄 하몬(이후 <릭 앤 모티>를 만들었다), 루소 형제 등이 참여한 작품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수 활동명 '차일디쉬 감비노'로 유명한 도널드 글로버가 시즌 초기 주역을 활약하기도. '피자 배달 왔는데 불난리 난 장면' 등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제작비가 축소되는 와중에도 2015년 시즌 6까지 무사히 마쳤지만, 극장판은 소식이 없어서 팬들에게 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2022년 마침내 극장판 제작을 발표했고, 이번 2023년 5월 촬영하려는 찰나 파업이 시작되면서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