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석(전재형)은 서럽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의용군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복무한 것이 전부다. 전쟁터에서 졸병으로 싸운 것도, 지금 국군들에게 포위되어 총부리 앞에 선 것도, 그 어떤 것도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서서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용석이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함께 구두를 닦던, 든든한 동네 형 진태(장동건)다.

진태, 진석과 같은 동네에서 자란 용석은 인민군로 형제와 재회한다.

“교전 중에 전원 사살한 거로 해. 데리고 가봐야 짐이야.”

“진태 형, 저 용석이에요! 용석이!”

“딱새 용석이는 알아도 양민학살하는 빨갱이 새끼는 아는 놈 없어.”

자기는 빨갱이가 아니라고, 양민학살을 한 적이 없다고 아무리 빌어도 진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투항하는 포로를 마구잡이로 죽인다면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빨갱이와 다를 게 없다고 핏대를 세워가며 열변을 토한 진석(원빈)이 아니었다면, 용석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물론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다른 포로가 벌인 인질극에 휘말려 죽어버렸지만 말이다.

애꿎은 일이다. 함께 구두를 닦으며 웃을 때만 해도 진태의 총에 용석이 죽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생각해보면 진태도, 진석도, 용석도, 그 누구도 자의로 전쟁터에 온 게 아니다. 진태와 진석은 피난을 떠나려던 길에, 용석은 서울에 있다가 강제로 징집당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누구에게 징집 당했느냐 정도의 차이랄까. 그 차이 하나가 진태와 용석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2.

영원히.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삶을 영원히 바꿨다. 해방과 동시에 북위 38선 이북에 살고 있던 이들은 제 의지와 상관 없이 소련 군정 하에 들었다. 북위 38선 이남에 살고 있던 이들이 제 의지와 상관 없이 미 군정 하에 들었던 것처럼.

확신에 찬 이들은 38선을 넘었다.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엘리트들은 이북으로 넘어갔고, 제 재산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고 싶었던 이들은 재산을 처분해 이남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이념과 무관하게 나고 자란 땅을 떠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리고 그 차이가 그들의 삶을 영원히 바꿔버렸다. 살던 곳에서 살다 보니,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자연스레 38선 이북에 있던 이들은 인민군에, 38선 이남에 있던 이들은 국군에 징집이 되었다.

확신 같은 것 없이 그저 살던 곳에서 살았을 뿐인, 영문도 모르고 징집되어 온 이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진태는 자신을 잃고 적의를 얻었다. 국가는 진태에게 어린 동생 진석을 살려보내기 위해서라도 무공훈장을 따라고 명한다. 진태는 오직 진석을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전쟁기계가 된다. 그런 진태에게, 애지중지하던 용석을 보살필 여유 따위는 없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전쟁기계가 되었지만, 가족을 지킬 수는 없었다. 진태는 애인 영신(이은주)이 보도연맹 가입자로 사살당하는 걸 눈앞에서 보았고, 동생 진석도 죽은 줄로만 알았다. 가족마저 잃은 자리에 남은 건 오로지 맹목적인 적의로 작동하는 전쟁기계 뿐이다. 진태는, 죄 없는 민간인 영신을 죽이고 동생을 전역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국군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인민군 부대의 소좌가 된다.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애초에 이념 때문에 국군에 입대한 게 아니었으니, 인민군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맹목적인 적의로 상대를 죽이라는 명령만 수행하면 되는 전쟁기계에게 이념 따위가 뭐가 중요하랴. 아니, 애초에 이 전쟁이 이념에 따라 수행되는 전쟁이긴 했던 걸까?

〈태극기 휘날리며〉가 국방부의 촬영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국방부로서는 시나리오에 묘사된 강제 징집, 보도연맹 사건, 전쟁 포로 학대 및 사살 같은 치부가 드러나는 게 싫었을 것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인권이랄지 사상의 자유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격렬하게 부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3.

호국 보훈의 달. 매년 6월이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심란하다. 전쟁의 포화 속에 살던 이들에게, 충성을 다 바쳐 지킬 만한 가치를 지닌 조국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끊어진 한강철교 앞에서 수많은 서울 시민들의 피난길이 막혔다. 인공 치하의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던 이들은,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에는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이유로 처단당했다. 조국이 ‘반공’이라는 핑계로 보도연맹 사건 등의 양민학살을 자행하는 꼴을 보면서, 남쪽의 엘리트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북쪽의 사회주의자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주의 낙원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엘리트들은, 양민학살과 독재자 우상 숭배, 정파 숙청의 과정을 거치며 조국이 이념을 적극적으로 배반하는 꼴을 봐야 했다. 그나마 그 꼴을 다 지켜볼 수 있었던 이는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품은 티가 났던 엘리트들은 반동이라고 숙청당했으니까

한때 빛났던 이념과 확신은 전쟁의 광기 속에서 휴지 조각이 되었다. 나라는 강제로 젊은이들을 징집해 전쟁터로 내몰았고, 자주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지킬 만한 것을 찾아보려 애썼을 젊은이들을 상상하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그 전쟁터에서 젊은이들이 충성을 다 바쳐 지키고 싶었던 ‘국가’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내 가족, 내 친구였겠지.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가 마땅치 않았겠지. 그런데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다보면, 지키고자 했던 이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게 되는 경우도 생겼겠지. 용석을 외면하고 버리고 가려 했던 진태가 그랬던 것처럼.

6월 6일 현충일, 국가는 변죽 좋게 ‘호국영령들’을 호명했고, 시민들은 어김없이 아침 10시 사이렌에 맞춰 묵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와 진석, 그리고 용석을 떠올렸다. 충성을 바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전장을 헤매며 국군으로, 또 인민군으로 싸워야 했던 진태, 서서히 미쳐가던 형을 보며 가슴 아파하던 진석, 그리고 그저 의용군에게 징집 당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죽어버린 용석을. 나로서는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살아냈을지 짐작할 수 없다. 그들에게, 조국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