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은 모순형용의 귀재다. 그는 권위가 있는데 없고, 매력이 없는데 있으며, 보기 싫은 비호감인데 왠지 계속 보고 싶다.
씨네21 기사 ‘[기획] 잘 작동된 연기의 매력, ‘닥터 차정숙’ 배우 김병철’ 중
빌런부터 찌질한 역할까지, 코믹한 감초 연기부터 웃음기 싹 뺀 냉철한 연기까지, 신 스틸러부터 주연까지. 배우 김병철은 최근 종영한 <닥터 차정숙>을 비롯해 숱한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에게 진한 인상을 남겨왔다. 그야말로 어떤 배역, 어떤 비중으로 등장하건 간에 묘하게 계속 보고 싶은 매력을 자랑하는 배우. 그에 관한 소소(小小)한 사실부터 대대(大大)한 사실까지 정리했다.
“김병철에게 별명이 생기면 그 드라마는 뜬다”
‘하남자’, ‘파국이’, ‘차파국’…
김병철은 그의 이름보다도 별명이 더 유명한 배우다.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에서 권위가 추락하는 남편을 연기하며 ‘하남자’(상남자의 반대)라는 별명이, <도깨비>에서 메인 빌런으로 활약하며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라는 대사로 ‘파국이’라는 별명이, 이어 출연한 <SKY 캐슬>(스카이 캐슬)에서 가부장적인 아빠 차민혁을 연기하며 ‘차파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병철에게 별명이 생기면 그 드라마는 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포상 휴가 전문 배우”
배우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이 흥행에 성공하며 이번에도 역시 포상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출연했던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SKY 캐슬> 역시 큰 인기를 얻어 포상 휴가를 갔다 온 바. 배우 김병철은 소위 대박인 드라마에 여럿 출연한 ‘포상 휴가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닥터 차정숙>에서 ‘로이킴’ 역을 맡은 배우 민우혁은 “포상 휴가가 결정됐을 때 이건 다 김병철의 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라며 농담을 하기도.
여담으로, 김병철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에 모두 출연해 “김은숙의 최애가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하남자? 실제로는 중남자”
<닥터 차정숙>에서 ‘차정숙’(엄정화)를 두고 바람피우는 남편 ‘서인호’ 역을 맡은 김병철. 김병철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봤다면서 “‘하남자’라는 별명이 인상 깊었다, 단어 자체가 재밌고 ‘하’라는 것이 ‘상’과 반대다, 아래쪽 방향인데 내가 어디까지 내려갈지 궁금하다, 지하일지 핵층일지”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김병철은 실제로는 상남자와 하남자 중 어떤 쪽이냐는 질문에 김병철은 “저는 중남자다. 생각해 봤는데 저는 중남자인 것 같다. '중남자 특'(중남자 특징)이라고 하면 눈에 잘 안 띈다”라고 털어놓았다.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은 배우… 2016년 <태양의 후예>로 본격적으로 얼굴 알려
김병철은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다. 김병철은 2003년, 영화 <황산벌>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꾸준히 활약해왔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해가 단 한 해도 없을 정도.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품은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였다. 그는 작품에서 ‘유시진’(송중기)의 직속상관 역할로, 밉상스러운 모습과 인간미 있는 모습이 공존하는 군인의 모습을 연기했다. 극중 ‘강모연’(송혜교)이 그를 “우럭 닮은 아저씨”라고 지칭해, 김병철은 한동안 시청자들 사이에서 ‘우럭 아저씨’로 불리기도 했다.
2010년,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의 코너 ‘불친절한 병철씨’ 고정 출연
<닥터 차정숙>에서 선보인 찌질한 연기,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의 코믹 연기, <미스터 션샤인>에서의 감초 연기 이전에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에서의 ‘불친절한 병철씨’가 있었다.
2010년, 당시 그는 브라운관보다는 스크린에서, 영화 <알 포인트>(2004), <펀치 레이디>(2007) 등의 작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던 배우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tvN 개그 프로그램의 한 축을 담당한다니, 당시로서도, 지금 다시 봐도 파격적인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김병철은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에 고정 출연했던 이유로 “코미디 연기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최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옛날부터 코미디 영화나 시트콤을 좋아했다”라며, “<핑크 팬더> 시리즈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 작가들의 작품들, 김병욱 PD의 시트콤들을 재밌게 봤다. <오피스>에서 레인 윌슨이 연기한 드와이트,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의 이순재 선생님, <서울의 달>에서 백윤식 선생님이 연기했던 미술 선생님 캐릭터를 좋아했고, 나도 저런 작품에 참여해 저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추후에는 그가 출연하는 본격적인 시트콤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의외로 결혼한 적 없는 배우.. “로맨틱 코미디에도 욕심 있어”
<SKY 캐슬>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차민혁’, <닥터 차정숙>의 바람난 남편 ‘인호’가 시청자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긴 덕분인지, 김병철은 왠지 당연히 가정을 꾸리고 있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 대표적인 배우다.
하지만 김병철은 결혼 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하게도 불륜 역시(?) 경험해 본 적이 없을 터. 그럼에도 김병철은 유난히 아버지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그는 연기를 할 때 "간접 경험이나 경험담을 통해서, 또는 상상력으로 보완하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의 서인호 역을 두고 “로코 불모지 같은 캐릭터에서 귀여움을 느끼게 했다는 점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장르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라고 말하며 중년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욕심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하남자’로 추락하지 않는 절대적인 빌런 역할을 한 적도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에서는 정숙에게는 분명 못된 남편이지만 점차 권위가 추락하며 어딘가 코믹하고 찌질하게 변해가는 인물을 연기했고, <SKY 캐슬>에서는 가부장적이지만 점차 인간적으로 변하는 아버지를 연기했다. 그는 분명히 극중 악역 포지션이지만, 입체적인 캐릭터이기에 마냥 일방적으로 미워하기는 힘든 인물을 여러 번 맡았던 터.
그런 그도 추락하지 않는 권위를 지닌 절대적인 빌런 역할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의 첫 드라마 주연작 KBS2 <닥터 프리즈너>(2019)에서 그는 서서울 교도소의 의료과장 ‘선민식’ 역을 맡아 교도소에 전임의로 부임한 ‘나이제’(남궁민)와의 팽팽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이 드라마에서 김병철이 맡은 선민식 캐릭터는 기존의 악인들이 자신의 악행에 대한 반성과 각성을 통해 변화하는 것과는 달리, 최종회까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다. 이 때문에 김병철은 마지막까지 극에 쫀쫀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드라마가 ‘웰메이드 장르물’이라는 칭호를 얻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에서는 세계관의 핵심 축인 절대악, ‘시그마’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김병철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극의 텐션을 '하드캐리'하며 책임졌다는 점은 모두가 이견이 없었다. 무표정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시그마의 얼굴을 보면, 코믹한 연기를 하던 배우 김병철의 모습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