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이 1940년에 로빈이라는 어린 사이드킥을 두게 되면서 만화 판매량이 증가했다. 어린 독자들의 성원 덕분이었다. 로빈이 성공하면서 출판사를 가리지 않고 (캡틴 아메리카의) 버키나 (원더우먼의) 원더걸처럼 슈퍼히어로 곁엔 어린 사이드킥들이 붙어 있게 되었다. 로빈은 배트맨의 수제자답게 또래 히어로들 사이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로빈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로빈 후드’에서 복장과 이름을 따왔다는 것과 새의 한 종류인 아메리칸 로빈에서 가져왔다는 두 가지가 있는데, 작가들이 직접 한 이야기이므로 둘 다 맞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나 로빈이 장성하면서 어른이 되면 새로운 로빈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지금까지의 주요 로빈들은 차례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등장하고 있는데, 어떤 작품에서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로빈들의 맏형 딕 그레이슨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의 딕 그레이슨

최초의 로빈은 부모와 함께 공중곡예를 하던 서커스 소년 딕 그레이슨이다. 깡패의 소행으로 곡예 중 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일어나 부모를 잃은 딕은 연민을 느낀 브루스 웨인에게 거둬졌고, 그 타고난 몸놀림 덕분에 파트너가 되었다. 최초의 실사 로빈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반일정서를 담아 만든 <배트맨> 영화 시리즈에서 모습을 보였다. 배트맨과 로빈의 모험이 담긴 짧은 내용들을 차례차례 연속으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방식으로, 여기서 더글라스 크로프트는 16세의 나이로 로빈을 연기했다. 1949년 영화인 <배트맨과 로빈>에선 20대인 조니 던컨이 로빈을 맡았다. 1966년에는 버트 워드가 배트맨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딕 그레이슨을 연기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버트 워드는 이후, 애로우버스 세계관의 DC 드라마에서도 노년의 딕 그레이슨 역할을 맡았다.

왼쪽이 버트 워드의 로빈

<DC 타이탄>의 딕 그레이슨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 영화 시리즈에서는 배우 크리스 오도넬이 로빈이었다. <배트맨 포에버>에서 첫 등장한 뒤, <배트맨과 로빈>에서는 무모한 행동으로 배트맨과의 갈등을 겪다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빈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계획되고 있었지만, <배트맨과 로빈>의 흥행 실패 후 폐기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삼부작은 청년 배트맨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로빈의 출연은 공식적으로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을 돕는 젊은 형사 존 블레이크의 미들 네임이 “로빈”이며 배트맨의 후계자가 된다는 암시를 그리며 로빈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일종의 깜짝 선물 같은 순간을 전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DC 타이탄> 시리즈에서는 브렌튼 스웨이츠가 딕 그레이슨을 연기했다. 배트맨으로부터 독립해 경찰이 된 딕은 가출소녀 레이븐을 지키기 위해 다시 로빈이 되었고, 이후 나이트윙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항아 제이슨 토드

<DC 타이탄>의 제이슨 토드

딕 그레이슨이 독립한 뒤에 배트맨은 배트모빌의 타이어를 훔치려던 소년 제이슨 토드를 영입한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거친 성격으로 자라난 제이슨은 과격한 면모를 보이며 종종 배트맨의 지시를 어겼다. 이런 모습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인기가 떨어지자 결국엔 독자들의 투표를 통해 죽음을 맞는 결말을 맞아야만 했다(이 과정이 「배트맨: 패밀리의 죽음」으로 출간됐다). 조커에 의해 죽은 제이슨은 오랜 세월이 지나 부활했으며, 원한을 품고 레드 후드가 되어 배트맨을 괴롭혔다. 역설적이게도 인기가 없어 사망 선고 받은 캐릭터가 히어로에 맞서는 빌런이 돼 인기가 급상승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영화에서 파손된 로빈 의상을 배트맨이 보관하고 있는 장면이 언뜻 지나간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공식 설정으로는 이것이 제이슨 토드의 옷이었다고 하지만, 이후 잭 스나이더 감독은 원래 딕 그레이슨의 것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감독인 데이비드 에이어는 조커가 로빈을 죽인 단독범인 것으로 의도했지만, 당시 총괄 프로듀서인 제프 존스가 할리 퀸을 공범으로 추가했다고 한다. <DC 타이탄스>에서는 커랜 월터스가 자신감 넘치고 무모한 제이슨 토드 역을 맡았으며, 이후 레드 후드가 되어 배신감과 후회를 느끼는 연기를 펼쳤다.


뛰어난 탐정 팀 드레이크

<DC 타이탄>의 팀 드레이크

영리한 소년 팀 드레이크는 단독 조사 끝에 배트맨과 나이트윙의 정체를 파악하는 엄청난 추리력을 지녔다. 제이슨 사망 후에 배트맨이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깨닫고 딕 그레이슨을 찾아가 그에게 새로운 로빈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기까지 했는데, 결국엔 자신이 3대 로빈이 되어버렸다. 탐정 기술이 가장 뛰어나며 격투기 실력 또한 엄청난 잠재력을 인정받는다. (뒤에 소개할) 데미안 웨인이 새로운 로빈이 된 후에 레드 로빈으로 거듭나며, 최근에 양성애자라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DC 타이탄스>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시아계의 혈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며, 제이 라이커고가 연기한다. 인종뿐 아니라 배경 설정도 원작과 완전히 달라졌다.


로빈이자 배트걸, 스테파니 브라운

<고담 나이츠>의 스테파니 브라운

스테파니 브라운은 슈퍼빌런인 클루마스터의 딸로, 아버지의 범행을 막기 위해 스스로 ‘스포일러’라는 이름의 자경단이 되었다. 팀 드레이크와 가까워지면서 배트맨 패밀리의 일원이 되었고, 한때 4대 로빈으로 발탁되기까지 했다.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로빈이며 중요한 순간마다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는 배트걸로서 활약하고 있다. <DC 타이탄>에서는 제이슨 토드가 죽은 후에 배트컴퓨터에서 잠재적 다음 로빈 후보로서 사진이 나오는 정도로만 등장했지만, CW 방송사를 통해 새로 방영하고 있는 <고담 나이츠>에서는 브루스 웨인의 양아들의 친구로 나와서 살해된 배트맨의 진범을 밝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배우는 애나 로어.


배트맨의 아들 데미안 웨인

라스 알 굴의 딸이자 세계 최고의 암살 집단을 거느린 탈리아 알 굴과 배트맨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안은 어려서부터 살인 기술을 익혀왔지만,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길을 따르기로 택하면서 히어로가 된다. 배트맨의 친아들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방진 꼬마였지만, 점점 사회성을 기르며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제임스 건과 피터 사프란이 새롭게 만들어 갈 DC 유니버스 영화 속에서는 데미안이 배트맨의 새 영화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에 로빈으로서 등장하게 될 예정이다. 제임스 건은 그랜트 모리슨이 썼던 배트맨 코믹스 시리즈에 기반을 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캐리 켈리

<고담 나이츠>의 캐리 켈리

캐리 켈리는 노년의 배트맨을 그린 프랭크 밀러의 작품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로빈이다. 배트맨의 목숨을 구한 후 로빈이 된 캐리는 종종 배트맨과 의견 충돌을 보이면서도 그와 부녀지간 같은 사이가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배트우먼이 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자신이 DCEU를 계속 맡았더라면 캐리를 새로운 로빈으로 삼고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할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나비아 로빈슨이 연기하는 <고담 나이츠>에서의 캐리 켈리는 현재 로빈이자 스테파니 브라운의 학교 동급생으로 설정되어, 배트맨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고 고담을 수호하는 일을 계속 해나간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