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3>의 흥행 속도가 무섭다. 개봉 첫날에만 74만 관객을 동원했고, 개봉 4일 째인 6월 3일 하루에만 무려 116만 관객이 극장을 찾으며 개봉 6일 만에 5백만 관객을 돌파했다(현재 6백만을 넘었다). 한국 극장가의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굉장한 카운터 펀치 한 방이 등장한 셈이다.
마동석 배우가 지금껏 차곡차곡 쌓아온 경력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 형사는 그야말로 통쾌한 매력을 선사한다. 이전 두 편의 영화에서는 주로 깡패, 살인범 잡는 강력반에서 활약하더니 이제는 마약사범 때려잡는 광수대(광역수사대) 에이스로 돌아왔다. 마석도 형사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한국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다. 지금의 마석도를 있게 한 수많은 선배 경찰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한국 영화 속 대표 경찰 캐릭터들의 면면을 함께 살펴보면서 마석도의 매력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자.
<범죄도시> 마석도
소속 / 前 서울 금천서 강력1반, 現 광역수사대
특기 / 원펀치
주적 / 흑룡파 장첸, 살인마 강해상, 마약사범 주성철, 그 외 이상한 낌새 풍기는 모든 범죄자
약점 / 5대5 비율 계산 같은 숫자에 약함
배우 / 마동석
히스토리
2004년 금천서 강력1반에서 근무하던 마석도 형사는 신흥 범죄세력 흑룡파의 보스 장첸(윤계상) 이하 조직원을 일망타진한다. 그로부터 4년 후, 베트남을 거점으로 한 여행객 납치 살인사건의 냄새를 맡고 어마무시한 본인의 물리적 존재감을 해외로 수출하는 데 성공한다. 3편에서는 광수대로 소속이 바뀌어서 광역 단위의 범죄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마침 그의 눈에 띈 것이 마약 범죄다. 하이퍼라 불리는 신종 마약과 관련한 조직적 범죄 행위를 뿌리뽑으려 한다. 마석도는 화장실이나 버스 안 등 밀폐된 공간에서 일대일 대결 및 제압에 상당한 재능을 보여 왔는데 3편에서는 사무실 결투가 등장한다. 1편에서는 룸살롱 출입 등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행동을 조금 보이기도 했는데, 2편부터는 유흥을 즐기는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고 나쁜 놈 때려잡는 일에만 집중한다. 범죄자들이 절로 실토하게 만드는 진실의 방 컨셉이 나날이 진화해가는 중이다. 체구가 워낙 커서 날렵하진 않지만 일단 그와 대면하면 피할 길은 없다.
참고사항
마석도 형사가 영화에 첫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베테랑>에서 팬시점 사장님으로 카메오 출연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마석도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사실상 <부산행>의 상화에서부터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 그 덕분인지 할리우드까지 진출에 성공했다. 마동석 배우는 종종 자신의 위압적인 체격을 앞세운 매력을 ‘악역’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사례가 바로 <악인전>이나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같은 작품들이다. 어쨌든 악이 악을 물리친다는 설정을 만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관객이 악인을 응원하는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캐릭터 설계에 신경 쓴다. 마동석의 날렵한 리즈 시절의 형사 캐릭터는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에 담겨 있다.
히스토리
중고차 불법 매매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불철주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서도철 형사는 드라마에 자문을 해준 덕분에 해당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주선한 축하 파티에 간다. 그 자리에서 대주주 자격으로 황제 놀이에 열중하던 조태오(유아인)를 만나고, 그가 훌쩍거리던 모습을 보며 수상쩍다 여겨 수사를 시작한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재벌 3세가 돈을 물 쓰듯 하는 모습과 전세 대출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서도철의 대비가 천만 관객을 굉장히 화나게 만들었다. 명동 한복판을 무대로 끈질긴 추격전을 벌인 끝에 조태오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전시하듯 알림과 동시에 검거까지 하는 성과를 얻는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경찰영화의 캐릭터가 뒤이어 소개할 <공공의 적> 강철중이 대표했다면 2010년대 이후 한국 경찰영화의 대표 캐릭터는 <베테랑>의 서도철이라 할 만하다.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들이받는 쾌남형 강력반 형사는 확실히 마석도보다 더 연륜이 느껴진다.
참고사항
황정민은 여러 차례 다양한 성격을 지닌 경찰 캐릭터를 연기했다. <부당거래>의 광수대 에이스 최철기 형사는 윗선에 의해 꼬리 자르기 용도로 쓰이고 버림받는 비운의 캐릭터였다. <베테랑>의 서도철 형사보다 훨씬 악다구니처럼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최철기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 배우가 연기하는 주양 검사와 악연으로 엮이게 되는데 사실 두 배우의 인연은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생결단>에서 두 사람은 부산 지역 마약반 형사와 정보원으로 만나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신세계>의 상징과도 같은 황정민과 선글라스의 조합도 실은 <사생결단>이 원조라고 봐야 옳다.
<공조> 림철령
소속 / 인민보안부 평양 12지구 수사대 특수과
특기 / 두루마리, 파리채 등 일상 소재를 흉기로 활용
주적 / 차기성과 장명준, 북한 고위 엘리트 군인 출신 범죄자들
약점 / 아내를 잃은 분노
배우 / 현빈
히스토리
림철령은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아내를 죽이고 자신과 조국을 배신한 원수를 잡기 위해서 남한으로 내려온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형사가 탈북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공조수사를 벌인다는 명목이지만 양국 모두 꿍꿍이가 다르다. 림철령은 현재 북한이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는 인민군 출신 국제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동시에 아내의 복수까지 하고 싶어 한다. 그는 1편에서는 차기성을 잡아야 하고 2편에서는 그의 선배 격인 장명준을 잡기 위해 또 한 번 남한을 찾는다. 그러면서 광역수사대 소속 강진태 형사와 우정을 넘어 단단한 연대의식을 느끼게 된다. 여러 생존 스킬 면에서 철령의 카리스마가 남한의 진태를 압도한다. 진태를 비롯해 그 가족들의 따스한(?) 환대 앞에서도 쉽사리 녹지 않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심장을 가졌고 2편에서는 공조수사의 규모를 키워 FBI까지 가세하지만 (국제 분쟁 영역인데 왜 CIA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역시나 FBI의 존재감도 철령의 매력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전체적으로 마석도나 다른 대표 경찰 캐릭터와는 다른 접근으로 사랑받는 인기형 캐릭터인 셈이다.
참고사항
남북공조수사라는,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또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닐 것도 같은 명분 좋은 이벤트의 최고 수혜자는 바로 현빈이다. 현빈은 제대 이후 <역린> 이후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와이어 줄 하나에 의존한 채로 다소 위험해 보이는 카체이스 액션도 직접 소화하는 등 터프한 액션스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림철령의 스핀오프(?) 격인 캐릭터로 <사랑의 불시착>의 리정혁이 있다. 유해진이 연기한 강진태 형사 대신 철령을 이 리스트에 포함시킨 이유는 <공조>에서 현빈이 보여준 파급력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와일드카드> 방제수
소속 /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3반
특기 / 달리는 범인들 뒤에서 쫓아가기
주적 / 속칭 퍽치기 일당
약점 / 짝사랑 상대이자 과학수사대 감식반원 강나나
배우 / 양동근
히스토리
공무원 순직 1위에 빛나는(?) 강력계 형사 방제수에게는 든든한 선배들이 있다. “칼은 나눠 먹는 거야”라고 외치는 반장님(기주봉)을 비롯해서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오영달 형사(정진영)와 함께 범죄자 소탕에 매진하는 중. 방제수의 가장 큰 고민은 나날이 진화하고 악랄해지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지켜야 할 룰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왜 선배 형사들이 소위 말하는 칼침 앞에서 벌벌 떠는가. 방제수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강력반 막내지만 지나치게 빡빡한 총기 사용 허가와 잘못 사용이라도 했다가는 평생 내사 받고 살아야 하는 답답한 경찰 공무원 세계를 못 견뎌하기도 한다. 22구경은 파워가 약해서 38구경을 가지고 다닌다는 설정도 등장하지만 결국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격발하지 못하고 총을 집어 던지는, 한국영화 속 경찰 캐릭터의 페이소스를 보여주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강력계 형사 캐릭터가 너무 진지하고 무겁지 않게 보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한국 영화 속 형사는 대개 일상에 찌든 ‘애물단지 남편’ 쪽에 가까워지지만 이 영화의 방제수는 참 드물게도 연애에도 관심을 보이는 젊은 형사 축에 속한다.
참고사항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면 2020년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최근의 경찰영화들과 달리 낭만적인 면이 있다. 범죄자들과 형사들 간의 관계 묘사 때문이다. 나쁜 놈 잡기 위해 그들과 점점 닮아가는 경찰의 고충을 다룬 작품들도 있지만 (대표적으로 <사생결단>이 그렇다.) <와일드카드>에서처럼 더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적당히(?) 나쁜 놈들을 이용하는 강력계 형사들의 모습이야말로 2000년대 한국 영화 속 대표적인 강력계 형사들의 모습이었다. 이도경 배우가 연기하는 성매매 업소 사장 도상춘이나 신정근 배우가 연기하는 또 다른 건달 넙치 등 건달들의 모습에서도 20여 년 전 한국영화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참고로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경찰관들의 총기 사용에 대한 이슈는 2023년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공공의 적> 강철중
소속 / 서울 강동경찰서 강력2반
특기 / 일단 물면 절대 안 놔줌
주적 / 희대의 패륜아 조규환
약점 / 은근히 비리 경찰
배우 / 설경구
히스토리
한국 영화에서 캐릭터의 이름 석 자가 제목이나 줄거리보다 먼저 귀에 박히는 사례는 드물다. 이른바 캐릭터의 대단한 매력을 보여준 전무후무한 성과를 보여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대표적인 한국 경찰영화의 캐릭터 강철중이다. 한국 경찰 영화의 레전드격인 <투캅스> 시리즈를 만든 강우석 감독이 또 한 번 탄생시킨 강철중은 비리 경찰이다. 강철중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선택을 했으며 직업윤리도 빵점이다. 그럼에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그보다 더 악한 패륜아 조규환을 잡고 말겠다는 필사의 의지를 드러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강철중은 지금 다시 봐도 기가 막힌 신의 한수인 조연 캐릭터들의 등장, 예를 들면 조폭 똘마니로 등장하는 마약상 대길(성지루)과 이안수(이문식), 칼잡이 이용만(유해진) 등을 앞세워 살인사건의 실체에 다가서려 노력한다. 그 과정이 두루뭉술, 뒤죽박죽, 일단잡어의 느낌으로 진행된다. 나쁜 놈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기 눈에 띄게 만들겠다는 본능적인 촉을 지녔고 전투력이 상당한데 마석도 같은 인물과 맞붙어도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을 악바리 근성을 지닌 형사다.
참고사항
시리즈가 이어져 2편이 더 만들어졌다. 강철중이 들이받는 적들의 사이즈가 점점 커진 반면, 재미는 반감된다. 그것이 이 시리즈의 실패 요인이다. 단순한 경찰 영화의 오락성보다는 정치 영화로서의 야심이 컸던 2편에서는 강철중이란 이름만 유지하고 검사 신분으로 바꾸어 사학비리에 맞서게 했다. 3편에서는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란 이름으로 리부트 속편을 만들었으나 1편과 같은 날 것의 매력은 선보이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 배우 정재영이 연기한 깡패 이원술은 이제는 한국영화에서 씨가 말라 사라진 소위 ‘조폭’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