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테넌바움(진 핵크만)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고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영화의 출발 지점을 보자. 아이들이 아직 10대 초반이었던 어느 날, 로얄은 아이들을 불러앉히고는 아내 에슬린(안젤리카 휴스턴)과 별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자신은 아직 엄마를 많이 사랑하지만, 엄마가 이혼을 원하니 그걸 존중하려 한다고. “우리 잘못이야?” 입양한 딸 마고(기네스 팰트로)의 물음에 로얄은 이렇게 답한다. “아냐, 물론 아이를 가지게 된 결과로 우리가 희생한 것들이 좀 있지만, 너희 잘못은 아니야.” 세상 어떤 부모가 이혼 소식을 전할 때 “너희가 생겨서 우리가 희생을 한 게 있다”는 소리를 하는가.

로얄의 고약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로얄은 일찌감치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아들 채즈(벤 스틸러)와 법정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극작가의 재능을 꽃피운 마고의 작품을 우스꽝스럽다고 일축한다. 마고를 데리고 다닐 때마다 꼭 “입양한 딸, 마고입니다”라고 소개해 마고가 그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기에 쓸데없는 사치벽은 또 얼마나 심한지. 로얄은 가족과의 불화와 배반으로 인해 22년 동안 호텔 스위트룸에서 살았는데, 더는 호텔비를 지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로얄이 선택한 방안이라는 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거짓말을 앞세워 에슬린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걸 빌미로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최근엔 사고로 아내마저 잃어 상처에 갇힌 채 살아가는 채즈도, 끝없는 정체성 혼란 때문에 좌충우돌하며 살아왔고 최근 몇 년 간은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한 작품도 쓰지 못한 마고도, 그런 로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가족은 어딘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뒤틀려 있는 사람들의 조합이고, 그들이 마침내 화해와 치유에 도달하는 과정 또한 흔히 생각할 법한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로얄이 에슬린에게 사과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재결합이 아니라 22년째 별거를 하며 차일피일 미루던 이혼서류를 완성해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혼 후 자신의 세무사인 헨리(대니 글로버)와 재혼하고 싶어 했던 에슬린을 위해, 형편 없고 고약한 인간인 자신이 물러나 주는 것. 로얄에게 이혼은 쓰디쓴 실패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우리 이혼한 거야?” 얼떨떨해하며 묻는 에슬린에게 로얄은 웃으며 답한다. “거의! 공증인이 서류만 꾸미면 끝나. 사랑해, 여보!”

이렇듯 이 영화 안에서 가족들이 겪어온 고난이나, 그 고난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뭐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뉘앙스로 가득하다. 합쳐져야 마땅할 것 같은 가족은 떨어짐으로 인해 더 애틋해지고, 이뤄지면 안 될 것 같은 사랑은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은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뒤틀린 채로, 이 가족은 어떻게든 기능하며 살아간다. 이걸 누가 뭐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며, 누구라고 이 긴 사연을 몇 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 마치 〈로얄 테넌바움〉의 핵심 카피처럼. “‘가족’은 단어가 아니다… 문장이다.”(Family isn’t a word… It’s a sentence.)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이혼, 형제간의 불화와 소통 단절, 형제의 자살 등을 겪은 아이치고는 제법 얌전한 학생이었다. 고2 때 담배를 배운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비행이라고 할 만한 것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얌전하고 평온한 건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을 뿐이고, 나의 내면은 어쩔 수 없는 불안과 혼란과 억울함과 분노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왜 나만 이런 일들을 겪는 거지? 왜 우리 가족들은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를 미워하고, 그 마음을 막내인 나에게 토로하고 있는 거지? 가족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겠으나, 한창 사춘기를 통과하던 내게 그걸 살필 여유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가족들을 은밀하게 미워했다.

그러다가 만난 작품이 바로 〈로얄 테넌바움〉이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할 뿐, 상처가 깊어 속으로 곪은 콩가루 집안 구성원들이 서로를 지긋지긋하게 미워하다가 아주 기괴한 방식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영화. 이런 방식도 있구나. 서로 거리를 두고 살 때 더 애틋해지는 가족, 법적으로 분리되어 있을 때 비로소 서로를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가족, 억지로 서로를 붙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놔둘 때 더 건강해지는 가족도 있는 법이구나. 나는 몇 번이고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난 뒤,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가족을 대할 수 있었다. 가족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라는 카피를 속으로 곱씹으면서. 그래, 우리 가족에게도 다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각자의 사연이 있지.

내 이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무렵 내게 볼 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가 〈로얄 테넌바움〉을 추천받은 학원 선생은 영화를 다 본 뒤 볼멘소리를 했다. “야, 이거 완전 콩가루 집안 이야기더만? 너는 이런 게 뭐가 좋은 영화라고 추천을 하고 그러니?”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세상에는 그런 가족도 있다는 거, 꼭 그림처럼 화목한 가족만이 가족인 건 아니라는 거, 망가지면 망가진 채로, 헤어지면 헤어진 채로 살아가는 가족도 있다는 거를 모르는 사람의 말이었으니까.

요즘도 종종 친구들이 내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부모님이 황혼 이혼을 하시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몰라 헤매는 친구, 자신의 결혼 생활이 이래저래 복잡해서 끓는 속을 어찌 달래야 할지 막막해 하는 친구, 온갖 가족사로 지치고 닳아버린 친구… 친구들보다 앞서서 그런 일을 겪다보니 본의 아니게 ‘가정불화 상담 전문’ 친구의 포지션을 점하게 되어버린 나는,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미에 꼭 한 마디를 덧붙이곤 한다. “그리고 이건 중요한 건 아닌데, 시간이 되거든 〈로얄 테넌바움〉이라는 영화를 한번 보렴.” 심각한 가정사 상담을 하다가 뜬금없이 영화 추천을 받는 친구들의 표정은 다들 의아함으로 멍해지지만,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일을 멈출 생각이 없다. 가족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고 세상 모두의 문장이 저마다 다르듯이 가족 또한 저마다 다 다른 법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