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대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감독 웨스 앤더슨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색감과 화면 구도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과 CG에 기대지 않고 공간을 확장해나가는 집요한 미장센 구성 등 형식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도약을 증명하고 있다. 올해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내놓은 바 있는 앤더슨은 로알드 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4개의 단편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쥐잡이 사내> <독>까지 공개하면서 식을 줄 모르는 창작력을 자랑했다. 앤더슨이 지난 30년간 발표한 11편의 장편영화 외에 자잘한 소품들을 모아서 소개한다.

<바틀 로켓>
Bottle Rocket, 1994

데뷔작 <바틀 로켓>(1996) 개봉 두 해 전인 1994년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단편 <바틀 로켓>은 13분 길이의 흑백 영화다. 1992년에 촬영된 영화는 연기 경험이 없던 오웬/루크 윌슨 형제와 로버트 머스그레이브가 주연을 맡았고, 웨스 앤더슨과 오웬 윌슨이 함께 각본을 썼다. 선댄스에서 이 단편을 본 <애정의 조건>(1983)의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이 제작비를 대면서 장편 <바틀 로켓>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어딘가 살짝 어설픈 세 친구가 도둑이 되기로 결심한다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이후 앤더슨의 모든 실사 영화의 카메라를 관장하게 되는 로버트 요먼이 참여한 장편은 컬러로 촬영됐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
<마이 라이프, 마이 카드>
My Life, My Card, 2004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첫 광고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마이 라이프, 마이 카드’ 캠페인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로버트 드니로를, 로저 미첼 감독은 케이트 윈슬렛을 주연으로 이 캠페인 광고를 찍은 바 있다. 앤더슨 버전은 주인공은 앤더슨이다. (2007년 작 <다즐링 주식회사>의 두 배우) 제이슨 슈왈츠먼과 와리스 알루왈리아가 출연하는 어떤 영화 촬영현장에서 앤더슨이 감독으로서 자잘한 결정을 내리는 걸 특유의 수평 이동을 통해 보여주고, 로버트 요먼 옆에 앉은 앤더슨이 “제 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제 카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입니다”라고 말한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아메리카의 밤>(1973)에 대한 오마주가 엿보인다.
<호텔 슈발리에>
Hotel Chevalier, 2007

<바틀 로켓> 이후 13년 만에 만든 단편 <호텔 슈발리에>는 웨스 앤더슨의 다섯 번째 장편 <다즐링 주식회사>의 프롤로그로서 제작된 작품이다. 잭(제이슨 슈워츠먼)이 파리의 호텔에서 영화를 틀어 놓은 채 신문을 읽다가 전 여자친구 렛(나탈리 포트먼)으로부터 방 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화를 받고, 재회한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한 시간을 보내다 사랑을 나눈다. 잭의 방에서 울리는 피터 사르쉬테트의 노래 ‘Where Do You Go To (My Lovely)?’가 <다즐링 주식회사>와의 접점을 환기시킨다. 마크 제이콥스가 디자인 한 루이비통 수트케이스가 오브제로 쓰이긴 했지만, <호텔 슈발리에>는 앤더슨이 자비를 들여 제작한 소품, 15명의 스탭들과 함께 이틀 만에 촬영을 마쳤다. <다즐링 주식회사>와 함께 2007년 9월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같은 달 아이튠즈 스토어에 한 달간 무료 공개돼 50만 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소프트뱅크’ 광고
Softbank, 2008

<호텔 슈발리에>가 웨스 앤더슨이 나탈리 포트먼과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라면, 일본의 통신사 ‘소프트뱅크’의 광고는 앤더슨과 브래드 피트의 유일한 협업작이다. 소프트뱅크는 2000년대 후반 브래드 피트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왕가위, 스파이크 존즈, 타셈 싱 등의 감독들과 일련의 광고 시리즈를 만들었고 앤더슨의 작품 역시 그 일환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가 <아메리카의 밤>에 대한 오마주였다면, 피트가 연기한 샛노란 옷을 남자가 프랑스 휴양지에서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걸 찍은 소프트뱅크의 두 광고는 자크 타티 감독의 <윌로 씨의 휴가>(1953)에 존경을 바쳤다.
‘프라다’ 광고
<캔디>
Candy, 2013

프라다의 향수 ‘캔디’ 광고는 절친 진(피터 가디오)과 줄리우스(로돌프 폴리)가 캔디(레아 세두)를 두고 귀여운 신경전을 벌이는 3개 이야기로 이뤄졌다. 패닝과 수평 이동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1분 남짓한 시간에 카페와 극장, 아파트, 미용실에서 펼쳐지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보여준다. <문라이즈 킹덤>(2012) 등 웨스 앤더슨과 몇몇 작품의 시나리오를 같이 쓴 로만 코폴라와 공동 연출한 <캔디>는 첫 번째 편만 봐도 매 에피소드가 끝날 즈음 나오는 자크 뒤트롱의 노래 'L’idole'에 사로잡힐 만큼 매력이 대단하다. 웨스 앤더슨의 촬영 파트너 로버트 요먼이 아닌 <세븐>(1995)의 다리우스 콘지가 촬영감독을 맡았다. 이 광고로 처음 앤더슨과 작업한 세두는 이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프렌치 디스패치>(2021)에도 출연했다.
<카스텔로 카발칸티>
Castello Cavalcanti, 2013

웨스 앤더슨의 2000년대 소품들이 프랑스를 향한 편애(앤더슨은 2005년 뉴욕에서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를 드러낸 것과 달리, 프라다가 제작한 단편영화 <카스텔로 카발칸티>의 초점은 이탈리아에 맞춰져 있다. 1955년 이탈리아의 어느 한적한 마을, 이탈리아계 미국인 포뮬러 1 선수 제드 카발칸티(제이슨 슈워츠먼)는 예수상을 들이받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이곳이 가문의 고향인 카스텔로 카발칸티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 <캔디>에 이어 <카스텔로 카발칸티> 역시 다리우스 콘지의 유려한 촬영이 단출하지만 입체적인 세계를 돋보이게 한다. 앤더슨은 <카스텔로 카발칸티> 속 카페 공간 디자인을 응용해 밀라노에 위치한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카페 '바 루체'(Bar Luce)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H&M’ 광고
<컴 투게더>
Come Together, 2016

<컴 투게더>는 웨스 앤더슨이 스웨덴 SPA 브랜드 H&M과 작업한 패션 필름이다. <다즐링 주식회사>(2007) <판타스틱 Mr. 폭스>(2009)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등에 출연한 앤더슨의 단골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한 열차장이 도착 시간이 지연될 거라는 소식을 전하며 홀로 열차에 탄 승객들을 불러 모아 다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과정이 4분 남짓한 러닝타임 아래 펼쳐진다. 코엔 형제의 근작들에 참여한 촬영감독 브루노 델보넬이 찍은 <컴 투게더>는 종으로 횡으로 움직이며 열차 칸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승객들을 차례차례 비추는 한편, 가만히 고정된 이미지에 조명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훌쩍 19분이 흘렀음을 눙치는 기지를 발휘한다. 마지막에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Happy Xmas'가 흐르는 걸로 보아 제목 'Come Together' 역시 비틀즈의 노래에서 따온 게 유력하다.
자비스 코커
"Aline" 뮤직비디오
2021

웨스 앤더슨의 10번째 장편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를 위해 녹음된 'Aline'은 프랑스 가수 크리스토프가 1965년 발표한 노래를 <판타스틱 Mr. 폭스>에 목소리 출연으로 참여한 바 있는 가수 자비스 코커가 리메이크 한 트랙이다. '선언문 개정' 파트 속,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와 줄리엣(리나 쿠드리)이 쥬크박스로 듣는 노래가 바로 이것. <프렌치 디스패치> 프로모션 차원으로 만든 'Aline' 뮤직비디오는 영화 포스터의 일러스트를 담당한 하비 아즈나레즈의 그림으로, 자비스 코커의 캐릭터 '팁탑'(Tip-Top)이 영화 속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캐릭터와 해당 배우를 소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복습용으로 즐기기에 좋다. 영화 개봉과 맞물려 자비스 코커는 팁탑 명의로 프랑스 가요 12곡을 리메이크 한 앨범 <Chansons d'Ennui Tip-Top>을 발표한 바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