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는 이름이다. 잊지 않고 계속 부르기 위해 누군가 붙인 호칭이다. ‘비단에 새긴 수’라는 아름다운 이 명칭은 전북 군산에 위치한 어촌 ‘수라마을’에서 따온 것이다. 온갖 조개와 생물이 넘쳐나고 금빛 모래가 반짝이던 마을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오랜 몸살을 앓았다. 어업은 붕괴했고 땅은 윤기를 잃었다. 2000년대 중반 국내 환경운동의 주요한 거점이었던 새만금 갯벌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격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폭력적인 대응과 강제 물막이 공사로 말라붙은 땅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수라>는 갯벌을 잊지 않은 사람들을 따라 여전히 생명이 약동하는 땅의 모습을 담는다. 2003년 결성된 이래 20여 년간 활동을 이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씨는 바닷물이 막혀 척박해진 땅에 수라라고 이름 붙이고 그곳을 갯벌이라 불러왔다. 사람들이 다 끝났다고, 다 죽었다고 말하는 마른 땅이라도 갯벌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다면 언젠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건 단지 기약할 수 없는 훗날을 향한 말이 아니다. 조사단의 활동은 새만금 갯벌에 여전히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와 같은 법정 보호종이 50종 이상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들의 눈높이에서 촬영한 수라 갯벌의 눈부신 풍경이 먼저 시선을 끌지만 <수라>는 황윤 감독의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 관계 맺는 인간들의 마음에도 오래 머문다. 동물원 뒤편의 모습을 담아냈던 <작별>(2001)은 사육사와 자원봉사자, 야생동물 구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고민할 자리를 열어두었다. 2014년에 공개된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변화한 감독의 삶에서 시작한 다큐멘터리다. 양육자가 되면서 좋은 먹거리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 감독은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직접 확인하고 가능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야생동물을 찾아 중국 연변, 두만강 유역으로 떠났던 <침묵의 숲>(2004)이나 국내 로드킬 실태를 담은 <어느날 그 길에서>(2006) 등 ‘환경 다큐멘터리’, ‘동물 다큐멘터리’로 불릴만한 작업을 줄곧 해왔지만 황윤 감독의 영화는 항상 생태 문제와 개인의 삶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고 논리 대 논리의 싸움보다 너른 지평을 바라보게 했다. <수라>의 뼈대를 이루는 건 감독의 이야기다. 연출자의 사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잡식가족의 딜레마>와 유사하지만 <수라>에 응축된 세월은 훨씬 길다.
“내 카메라에는 수라의 시간들이 쌓여갔다.” 담담한 내레이션을 따라 영화는 감독이 2014년에 군산의 주민이 되고, 우연히 조사단을 만나 수라 갯벌의 여러 생명과 조우하는 7년간의 과정을 훑는다. 그런데 그 사이로 오래된 푸티지들이 끼어든다. “2006년 이후 나는 갯벌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다. 황윤 감독과 새만금의 인연은 2003년 4명의 성직자가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에서 출발해 서울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했던 시기로 거슬러 간다. 2006년 시민들이 추진한 새만금 간척사업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기각 판결이 나자 황윤 감독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갯벌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새만금으로 향했다. <수라>엔 당시 감독이 기록한 영상들과 함께 “10년 동안 그곳에 살며 어민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이강길 감독의 <살기 위하여>(2006)의 장면들이 들어있다. <수라>에서 시간은 단절되고 다시 연결된다. 여기엔 이제 세상에 없는 두 사람의 이름이 관계한다. 방조제 공사로 바다에서 세상을 떠난 여성 어민 류기화 씨와 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강길 감독. 황윤 감독은 두 이름을 떠올리며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갯벌에서 다시 기록을 시작한 자신의 운명을 곱씹는다.
운명을 받아들인 이는 또 있다. 20년간 갯벌과 새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조사단장 오동필 씨다. 행동의 이유로 거창한 대의나 신념을 말할 수도 있으련만 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목격자의 운명을 말한다. 먼 길을 여행하는 도요새가 중간 기착지인 한반도의 갯벌에서 보여준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군무에 관한 것이다. 듣기만 해도 황홀한 이야기는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 마른 갯벌에 놓인 죽은 새들의 모습과 가슴 아프게 겹친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경험한” 오동필 씨는 기쁨의 기억과 함께 괴로움과 슬픔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처음 목격한 사람은 그 전율을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 아름다운 걸 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그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있더라고요.” 카메라는 지난날 그 장관을 목도했을 오동필 씨의 눈과 이제는 직접 볼 수 없어 상상하는 방법만 남았다고 여기는 감독의 눈을 번갈아 비춘다. 갯벌을 지키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해낸 저마다의 활동은 모두 큰 의미를 지닐 테지만, 영화는 그 의미를 조명하는 것을 넘어 개인이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정돈되지 않을 감정의 무게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수라>에 담긴 갯벌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어미를 기다리는 보송보송한 새끼 쇠제비갈매기,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검은머리물떼새, 땅을 뒤덮고 붉은색으로 빛나는 칠면초처럼 바라보고만 있어도 경이로운 생명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영화엔 최근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해수 유통 결정으로 점점 더 생명력을 회복해 가고 있는 수라의 모습까지 담겼다. 물론 정부는 여전히 새만금을 보호 가치가 없는 땅으로 여기며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그러한 논리에 맞서 수라의 보호 가치를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법정 보호종이 서식한다는 증거를 촬영과 녹음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모아내는 것이다. 그중 오동필 단장의 아들인 승준 씨의 행보는 조사단 활동의 의미를 미래로 확장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갯벌의 생명을 만나왔고 이제는 멸종위기 2급인 쇠검은머리쑥새의 노랫소리를 찾아 나선 청년. “어른들이 봤던” 것을 볼 수 없는 다음 세대의 당사자인 그는 아직 갯벌 속에 웅크리고 있는 펄떡이는 미래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의 말미, 이듬해 봄을 기약하는 감독의 목소리에 희망이 깃들어 있는 건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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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