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1989)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나온다.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독일 고고학자 엘사 슈나이더 박사(앨리슨 두디)에게 속아서 아버지 헨리 존스 박사(숀 코너리)의 평생의 연구가 담긴 수첩을 빼앗긴다. 함께 성배를 찾던 슈나이더 박사가 나치와 협력 중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나치 일당의 소굴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존스 부자, 하지만 아버지 헨리는 나치의 본거지인 베를린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틀러와 나치가 절실하게 찾고 있는 성배의 위치를 알려줄 단서는 자신의 수첩에 적혀 있으니, 나치보다 먼저 성배를 찾기 위해선 반드시 그 수첩을 챙겨 가야 한다는 것이다.
헨리와 인디아나가 슈나이더 박사를 쫓아 베를린으로 도착했을 때, 그곳에선 한참 나치 전당대회가 열리는 중이다. 히틀러와 괴벨스, 괴링 등 나치 독일의 주요 인사들이 스와스티카 깃발 아래 근엄하게 서 있는 와중에, 한편에선 청년들이 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는 잭 무덤에 불을 지른다. 영화의 배경은 1938년이고 베를린 분서 사건은 1933년에 일어났지만, 시점을 제외하고는 크게 틀린 묘사는 아니다. 베를린 분서 당시 나치는 ‘비독일적’인 서적을 공개적으로 불살랐고, 유대계 작가의 책, 세계주의 서적, 사회주의 서적들이 불태워졌다.
그런데, 나치와 손잡고 존스 부자를 속인 슈나이더 박사는 그 광경을 보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책을 집어 활활 타는 불속으로 던져 넣는 야만의 광경을 바라보는 슈나이더 박사의 눈은 눈물로 그렁그렁하다. 더는 그 광경을 지켜보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슈나이더 박사의 뒤를, 나치 장교복을 훔쳐 입고 잠입한 인디아나가 조심스레 쫓아간다.
“안녕하신가, 박사? 수첩은 어딨소?”
“어떻게 왔어요?”
“어디 있소? 내놓으시오!”
목숨을 걸고 베를린에 잠입했을 인디아나가 고작 수첩 하나만 챙기는 광경을 본 슈나이더 박사는 의아하다는 듯한 말투로 묻는다.
“고작 이것 때문에 왔어요? 왜요?”
“우리 아버지가 이 수첩이 불태워지는 건 원치 않았거든.”
그러자 슈나이더 박사는 모욕적이라는 듯한 말투로 대꾸한다.
“나를 고작 그렇게밖에 안 봤어요? 나는 성배를 믿지, 스와스티카를 믿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성배를 얻기 위해서라면 나치와 손을 잡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슈나이더 박사조차도 책을 불태우는 족속이라고 취급 당하는 것만큼은 참지 못했던 것이다. 대체 나를 어떻게 봤길래 책을 불태우는 데 동참할 거라고 생각했느냐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슈나이더 박사의 목소리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하다. 슈나이더 박사는 비록 빌런이지만, 책을 불태우는 일이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지 알고 있는 지식인인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1938년이면 아무리 나이브한 지식인이라 해도 이미 나치가 제정신이 아닌 집단이라는 것쯤은 파악했을 법한 시기다. 1935년에는 뉘렌베르크 인종법이 통과되어 ‘독일민족 또는 관련 혈통’으로 구성된 ‘순수혈통 독일인’만이 독일 시민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유대인들은 시민권은 물론 참정권까지 박탈당했다. 유대인과 독일인 사이의 ‘인종 혼합’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물론이었다. 1938년엔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경제 법안이 통과되면서 유대인 재산 몰수가 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꼴을 다 보고도 나치와 손을 잡았을 슈나이더 박사의 ‘스위치’는, 책을 불태우는 자들과 동급으로 취급 당할 때 눌린다.
2.
책과 관련된 건 모두 없앨 참인가. 마포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22년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취임한 이후, 마포구청은 관내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바꿔 운영하려고 시도했다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발이 심하자 마포구청은 정책을 철회했다. 그때만 해도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2023년 5월에는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이 파면당했다. 구청의 도서관 관련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게 이유였다. 송 관장은 예산의 30%를 삭감할 것, 위・수탁 협약 체결이 다 끝난 작은도서관들을 독서실로 전환해서 운영하라고 상부에서 지시한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구청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마포구청 인사위원회가 밝힌 징계 사유는 “불신과 오해”를 조장했다는 것이었다. 사실관계가 다른 내용을 게시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마포구청장의 작은도서관 운영 검토 방향에 대해 불신과 오해가 생기도록 했다는 거였는데,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바꿔 운영하려고 시도했던 구청장이었다. 이번이라고 뭐가 달랐을까.
마포구청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를 손보겠다는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플랫폼P는 첫 발걸음을 내딛는 작은 출판사와 출판 생태계의 다양한 작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포구에서 설립한 창작 공간으로, 창업 초기의 출판사뿐만 아니라 작가와 번역가, 저작권 에이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출판 관련 스타트업 창업자들까지 모여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나,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각종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마포구 출판문화의 새로운 핵심으로 부상하던 공간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취임한 이후, 마포구청은 플랫폼P를 집요하게 건드렸다. 위탁운영사와 쪼개기 계약을 하는가 하면, 4기 신규 입주자를 뽑지 말라고 지시했고, 입주자 조건을 ‘마포구 1년 이상 거주자’로 제한했다. 출판과 상관 없는 청년일자리사업 참가자 15명이 플랫폼P에 입주하기도 했다. 박강수 구청장은 “입주 구성원 중 마포구민은 28%에 불과한데 연간 10억 원이 넘는 운영비가 구비로 투입되고 있다”면서 “마포구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일자리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창업지원센터로 운영하고, 일부는 마포 지역의 출판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플랫폼P가 왜 생겼는지 잘 모르는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출판사들이 많이 입주해 있던 마포구는, 디자인·출판진흥지구 지정 이후 오히려 부동산 급등으로 인해 출판사들이 떠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플랫폼P는 출판산업을 키우고 관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워진 거점공간으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마포구 외부의 출판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마포구민이 28%라는 의미는, 오히려 72%의 외지인들이 출판 업무를 보기 위해 마포구를 찾았다는 의미다.
솔직히 ‘마포구민이 28%에 불과해서’라는 것도 핑계가 아니었을까? 전국 최초 책을 테마로 한 거리로 조성된 경의선 책거리는,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취임한 이후 1년 만에 모든 부스 운영자들을 퇴거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경의선 책거리 내 부스 운영을 담당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비엠’은, 2023년 2월 28일 마포구청으로부터 경의선 책거리 부스 운영 협약 만료 통보를 받은 뒤 약 3개월이 지난 5월 25일 경의선 책거리 부스 운영자들에게 공문을 보낸다. 6월 30일자로 협약이 만료되며 계약 연장은 불가능하니 부스를 비우라고. 책거리 부스를 들러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책거리를 일상적으로 산책하는 마포구민들이었다. 부스 폐쇄를 통해 마포구민이 얻게 될 이득은 대체 무엇인가?
3.
마포구청의 일련의 정책은 상당히 일관된 방향성을 지닌다.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도서관 공간을 스터디카페나 독서실로 전환하고, 도서관에 주어지는 예산을 삭감하고, 출판문화진흥센터를 창업센터 용도로 전환하고, 입주한 출판관계자들을 내보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부터 책을 만들 수 있는 공간,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모두 줄이는 방향이 그것이다. 글쎄, 나는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어떤 의도로 이런 정책을 펼치는지 알 수 없다. 그의 마음 속을 들어갔다 나올 수도 없고, 그렇다면 부득이하게 방향성에 의거해 추정해보는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것도 만드는 것도 죄다 꼴 보기 싫은가 보다”라고 말이다.
나는 마포구에서 넘어오는 흉흉한 소식들을 접하며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속 슈나이더 박사를 떠올렸다. 성배를 위해서라면 유대인을 탄압하는 나치와 손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는 빌런인 주제에, 책을 불태우는 치들과 동급으로 취급 당하는 것만큼은 몸서리치면서 싫어했던 사람. 그건 책이야말로 인류의 지혜를 모아둔 정수이며, 책에의 접근을 막는 것은 반지성주의의 극한임을 알고 있는 지식인의 마지막 허세 같은 것이었으리라. 내가, 몰락해도 그렇게까지 몰락할 수는 없다는 마지막 몸부림. “나를 고작 그렇게밖에 안 봤어요?”라던 분노 어린 질문. 빌런조차도 그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마포구청이 하는 짓이 나치 수준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포구청이 나서서 책을 불사른 적도 없거니와, 전쟁범죄나 인종청소를 자행한 것도 아니니까. 다만 그런 생각은 해보는 것이다. 이처럼 기를 쓰고 책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치는 대중이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비독일적’인 불온한 책들을 불태웠더랬다. 마포구청의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승한 TV저널리스트